이상영 전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전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 전 이장은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했다.선흘2리에 야생동물 사파리를 조성하는 제주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며,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이장으로 선출됐다. 주민들과 함께 전임 이장과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 측의 비위를 밝혀내는 성과를 올렸다. 1973년생인 그는 제주 지역 첫 70년대 생 '육짓것' 이장이다. 3년 동안 이장으로 일하면서 제주 지역 마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의 마지막 '이장일기'다.

 

수고 많으셨습니다.<편집자 주>

오랜 고민 끝에 이장 연임에 도전했다. 미끄러졌다. 아내도 나도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컸나보다. 공약 경쟁은 사라지고 허위흑색선전이 난무했던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니, 일주일 정도는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웃으며 얼굴보던 사람들에게 뒷통수를 맞았다는 배신감으로 부르르 타올랐다가, 아침햇살에 과도한 행복을 느끼는 롤러코스터같은 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3년 내내 함께 하셨던 분들도 큰 충격을 받으셨다. 선거기간 나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분들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사실이 마을에 뿌려졌다. 이에 심각한 우울감으로 고통받는 어르신들도 생겼다. 퍼뜩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아내와 함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어르신들께 매일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억울함과 우울감을 호소하시는 어르신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쯤 멈출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2018년 7월에 교직을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왔으나, 쉴 새 없이 지난 5년간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와 이장일을 하느라 일상이 망가졌다. 이장 초기, 텅빈 마을통장과 서류 하나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은 마을의 기초를 정상화하는 과정부터 만만치 않았다.

개발사업자가 배후인 소송으로 인해 3년 내내 한달에 두세 번은 법원을 정기적으로 들락거리렸다. 민원이라고 칭하기조차 싫은 도를 넘는 욕설과 협박은 삶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게다가 새로운 마을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을가게를 만들어 자립구조를 만들고, 어르신복지사업과 정원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밤낮없이 설쳤으니 보람은 있었지만 몸과 마음에 진즉에 신호가 왔었다.  

지난 3년간 지속되었던 좌충우돌 '육짓것' 이장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지난 2020년 12월 17일 치러진 선흘2리 마을회장 선거에서 당선하며 축하 화분을 들고 있는 이상영 이장.(사진=제주투데이 DB)
지난 2020년 12월 17일 치러진 선흘2리 마을회장 선거에서 당선하며 축하 화분을 들고 있는 이상영 이장.(사진=제주투데이 DB)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돌보고 회복하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따뜻한 봄이 되면 지난해 허가를 받아놓고도 시작도 못한 작은 유리온실을 마당 한구석 짓고 있을 것 같다. 혹은 작은 땅을 일구며 자립을 꿈꾸고 있거나, 곶자왈 나무그늘에 숨어 새들과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또 이웃들과 작당모의해 재미난 일들을 꾸밀지도!

지난 3년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특히 '육짓것 이장'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선뜻 내어준 제주투데이에 감사드린다.

덧붙여.

이 글을 쓰는 동안 아랫마을 이장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황망한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장으로 막 당선되었을 때 ‘무엇보다 자기만의 주관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을 해 주셨던 분. 함덕해수욕장이 난개발로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셨고, 람사르습지도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 망가진 것들을 다시 고치는 건 너무 힘들고 지난한 일이지만, 다시 망가지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이라며 3선을 고민하셨는데…. 이장회의 때마다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맞아주시던 그 미소를 잊지 못할 것 같다.

한명용 함덕 이장님. 이제 평안히 쉬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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