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3월 5일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도민 보고대회가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 2021년 3월 5일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도민 보고대회가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20여년 전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이를 근거로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됐다. 2년 전 특별법이 전부개정되면서 이를 근거로 (정부가 인정한)희생자에 대한 재정적 보상과 직권·특별재심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4·3운동의 주요 과제였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큰 진전을 이뤄냈지만 소위 ‘해결’을 향하는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어떤 이는 “완전한 해결”을 외치며 만세를 외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지금까지 4·3 분야에서 얻어낸 성과를 두고 세계적인 과거사 해결 모범사례라며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한다. 

어떤 이는 특별법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된 역사를 강조하고, 또 어떤 이는 제도권 내에서 확장이 가능한 부분을 탐색한다. 어떤 이는 특별법 자체가 왜곡됐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렇듯 4·3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목표가 달라진 것이다. 4·3연구는 어떨까. 

현재 시민사회, 행정, 교육, 문화, 언론,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구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4·3연구의 오늘날 위치와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를 개최했다. 제주대학교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이 공동 주최했으며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주임교수 이소영)이 주관했다. 

#“기존 박사 학위 논문 뛰어넘기 쉽지 않을 듯”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4·3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사료가 중요한 ‘역사학’에서 새로운 논문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양 실장은 “저는 4·3연구 1호 박사(2005년)”라며 “당시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된 상황에서 4·3이 학살이라는 수난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 항쟁의 기억을 다루고자 했던 고민, 제가 얘기하고자 한 건 딱 이 부분이었다”라고 박사 학위 논문을 소개했다. 

이어 “역사학뿐만 아니라 지금은 4·3연구를 하기 힘들다”며 “왜냐하면 역사학하면 양정심, 정치학하면 허호준, 문학하면 김동현, 사회학하면 고성만, 권귀숙 등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논문을 쓴다는 게 어렵다. 소논문들을 보면 주제가 다양해졌지만 그뿐이다. 이런 것들이 4·3의 어떤 지평을 차지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 “4·3융합과정이 연구자들의 고민 속에서 태동하진 못했다. 갑자기 지원이 오는 상황에서 우리(재단)가 학교 논의 구조에 같이 할 수 없었다”며 “4·3은 진실규명과 쭉 같이 갔기 때문에 각 영역에서 이미 걸출한 박사 논문이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들이) 이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미 4·3융합과정은 개설됐고 선배 연구자로서 말하고 싶은 건 단 하나의 문제의식을 10년을 파고든다면 어느 지점에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며 “4·3연구의 확장 속에서 ‘진상규명 운동’이 아니라 4·3학이라 부를 수 있는 지점에서 같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4·3연구,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재현 아닌 해석으로서의 역사”

이날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운동으로서의 4·3, 문학 연구로서의 4·3을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발표에 앞서 김동현 이사장은 “직전 발표자가 4·3을 가지고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어렵다고 하는데 4·3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며 “접근해야 할 방향성과 관점만 조금 달리 한다면 세계적인 학문 영역으로 올라설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방기와 냉전기 연구자들이 돌고 돌아서 4·3으로 온다. 미국, 일본 연구자들을 만나면 ‘4·3을 경유하지 않으면서 냉전사 연구를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제주에서 4·3을 공부하는 저를 부러워한다”며 양정심 실장의 우려를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4·3의 현재적 의미를 물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4·3은 이만하면 됐다고 한다”며 “최근 제주도의회에서 4·3 정명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4·3은 항쟁이냐, 사건이냐, 폭동이냐라는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2001년 헌법재판소가 4·3 봉기 주체 세력을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는 계기가 된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지금까지 도의회에서 이 차별의 논리들에 대해 개진한 질의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가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1948년 제헌헌법과 1954년 개정헌법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유신헌법에 와서야 등장한 개념으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나누는 적대적 사고의 산물”이라며 “당시 헌재가 규정했던 ‘자유민주적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는 4·3 당시 부존재하는 행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문제 제기를 못한다고 하는 건 4·3이 제도화된 이후로 역사 퇴행의 국면을 맞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가 금기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4·3 진상규명 운동이라는 말에서 ‘운동’을 빼야 한다. 지금 우리가 4·3을 호명하는 이유는 명사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가치가 있고 이는 더 좋은 사회로, 더 좋은 삶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동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김 이사장은 또 문학 연구의 측면에서 “4·3 문학연구의 관심은 4·3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재현했는가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문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현기영 작가의 작품을 사례로 들며 “<순이삼춘>이 억울한 죽음의 신원(伸冤)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던 현기영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이덕구 시신이 내걸린 장면을 통해 ‘관권의 불의에 저항했던 섬 공동체의 신화가 무너져내리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제주도우다>에선 국가 없는 나라, 국가 없는 사회를 꿈꾸는 아나키스트적인 제주적 전통성을 말하고 있다”며 “이게 결국 4·3에 대한 해석”이라고 분석했다. 

제주도우다 1권 표지.
제주도우다 1권 표지.

 

그러면서 “문학에서 4·3연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오늘날 역사적 사실을 두고 벌어지는 해석의 정치를 앞장 서서 바라보고 있었던 문학이 연구의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4·3융합과정 운영에 대한 쓴소리도 덧붙였다. 그는 “4·3융합과정 개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학 바깥에서 4·3연구를 해왔던 이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이라도 청취해본 적이 있느냐”며 “(4·3융합과정이)전임교수들만의 논의가 되어선 안 된다. 4·3의 또다른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4·3을 가르치는 것과 연구 과정과 성과를 공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4·3학은 학문적인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현실에 개입하는 실천적 학문 ‘운동’이다. 그래야 살아있는 4·3이고 우리의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어주는 학문적 성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며 “대학 바깥에서 4·3연구를 오래한 많은 분들을 모셔서 같이 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한편 제주대 일반대학원은 2023학년도 2학기부터 4·3융합전공 과정을 신설·운영하고 있다. 4·3융합전공은 ‘4·3학’의 후속 연구자 양성과 연구 인프라 체계화를 목표로 제주도, 제주도의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협약을 맺고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석·박사 양성과정이다. 현재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일반사회교육학과 △사회학과 △정치외교학과의 참여로 추진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학과의 참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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