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4·3융합전공운영위원회 제공)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4·3융합전공운영위원회 제공)

“발빠르게 변해가는 4·3의 시간표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최근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위원장 한권)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4·3의 정명(正名)’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018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주4·3인식조사 이후 인식의 변화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였다. 

5년 전 실시한 조사에선 없었던 ‘정명’이라는 표현이 전면에 나서게 된 데에는 이제 4·3의 성격에 맞는 ‘이름’을 붙일 때가 됐다는 인식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도의회는 인식조사 결과보고 자료를 통해 “추가진상조사 자료집 등 4·3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 확립을 위한 근거가 마련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평가에 가까운 의미로서)‘해결’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4·3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렸다. 제주대학교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이 공동 주최했으며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주임교수 이소영)이 주관했다. 

#“‘해결 선포’ 이후 사라질 질문들, 집요하게 캐물어야”

이날 네 번째 발제자로 나선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해결 전야에 4·3연구가 던져야 할 질문들’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고성만 교수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입법 운동의 형태를 띤 4·3운동이 특별법을 제정하고, 갱신하고 고도화시키 위해 총력을 모으고 있고 그 결과 행정부와 사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오늘날 국내외 많은 분들이 이 운동에 호응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새롭게 정비된 4·3특별법이 4·3 문제 해결에 양적인, 질적인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는 기대는 조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대표적으로 보상금, 재심, 가족관계 등과 같은, 다른 과거사 해결 과정에서도 시도하기 어려웠던 혁신적인 조항이 보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들이 생겨나고 ‘해결’이라는 말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쳐 운동해오며 ‘해결의 시대’가 오기를 바랐던 선배 연구자나 희생자 입장에선 가슴 들뜬 말일 것”이라며 “머지않아 ‘해결 선포식’ 같은 이벤트를 상상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전망했다. 

다만 고 교수는 “4·3특별법의 제1조인 목적이 달성될 때 ‘해결’이라 할 수 있을까, ‘해결’이라는 합의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그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라며 ‘해결’의 성립 요건들에 대해 질문했다. 

이어 “‘정명’을 비롯한 ‘4·3 시간표’들이 굉장히 빨리 진행되는 상태에서 긴 시간을 두고 차분히 답을 모색해야 하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 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재촉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라고 우려했다. 

또 “‘4·3연구’는 ‘해결 선포’ 이후 없어지게 될 질문들 속에서 더 집요하게 캐물어야 할 질문은 어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 영역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생존자와 유족들의 생활 세계 가까이에서 어떤 자세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4·3을 현대 사회문제와 접합시키고 경험과 기억, 유산이 어떤 지점에서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적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해결 선포’가 가시화되는 현재의 법과 제도, 정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동시에 체험자와 시민들의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다면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이 또 우리들과 소통을 시도하면서 우리의 빈 칸을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마무리했다. 

#“사료 발굴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고 교수 발제에 앞서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정치학 박사)는 ‘4·3연구의 지평 확대를 위한 모색-4·3의 비교정치와 사료에 대하여’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허호준 선임기자는 “4·3연구 주제가 진상조사보고서의 발간을 기점으로 다양화하고 있으면서도 보고서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 미진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진 않았다”며 “그동안 발굴된 새로운 사료들이 4.3의 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지만 보고서를 뛰어넘는 ‘실체 연구’는 확대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4.3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이 16편(2023년 기준)인데 문학, 평화공원, 평화기행(다크투어리즘) 등에 쏠려 있고 실체 연구는 단 두 편”이라며 “4.3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담론과 문학, 기억 등의 여러 가지 연구 분야가 같이 가는 건데 어느 한 쪽만 가선 안 된다. 연구 주제의 다양화를 위해서라도 ‘실체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제 연구에선 지역사를 넘어 세계사 속에서 '4·3을 국제적인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보편성과 특수성을 찾으려 했다”며 “그리스 내전과 4·3을 두고 국가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군사적 동원과 민간인 학살의 측면에서 일치하는 점과 차이점을 비교했다”고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설명했다. 

또 4·3 당시 미 24군단 참모회의 내용과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보고서를 소개하며 새로운 사료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48년 4월23일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미 24군단 참모회의록에선 “'현재 남한에서 최대의 관심 지역은 제주도'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참모회의는 미군정과는 다른 것이다. 미군정 위에 24군단 사령부가 있는데 하지 사령관이 주재한 참모회의가 있고 나서 딘 군정장관이 4월29일에 제주도로 오게 된다”고 당시 미군이 파악하고 있던 한반도 정세 동향을 통해 딘 군정장관이 제주를 찾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1949년 1월8일 일본 동경에 주둔한 GHQ가 소련 잠수함을 목격했다는 (추후 허위로 판명된) 보고를 받고 미 24군단에 연락해 확인 작업을 하는 내용이 담긴 정보 보고서를 공개했다. 허 선임기자는 “이런 식의 보고들이 미 국무성까지 가게 된다. 이건 당시 미소 대결의 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일본으로 밀항한 조선인 기록, 밀항 기점과 도착지, GHQ 우편 검열 보고서를 통한 당시 도항의 기록 등을 소개하며 “이런 사료를 발굴하고 분석하는 것은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연구”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지역 저항의 전통,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유산은 4·3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4·3 당시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4·3이 지역정치와 국내 정치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또 미군정과 워싱턴의 4·3 및 제주도에 대한 인식은 어땠는지, 미국의 대한정책과 4·3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등 4·3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4·3연구, 개방적인 자세 필요”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이날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선 4·3연구의 과제와 4·3융합전공 과정을 비롯한 후속 연구세대를 향한 기대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박찬식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역사학자)은 “학문 중에 4·3에 가장 늦게 다가간 게 역사학”이라며 “역사학은 융합이 잘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현대사 (연구)하는 사람이 탐라사를 얘기해야 하고 탐라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현대사를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학에서의 4·3은 새로운 해석의 틀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며 “사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즉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구를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4·3융합전공 과정을 개설한 제주대학교를 향해 ‘개방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박찬식 관장은 “도제 중심의 폐쇄적인 성격을 극복할 수 있어야 융합의 단계가 가능할 것”이라며 “국립대학교인 제주대학교는 교육부 산하기관인데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융합전공 과정을 열었으니 대도민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성과를 배출해야 하고 시민 참여를 넓혀야 이번 융합과정 개설이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박찬식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9일 오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융합전공 제1회 학술대회-학제간 융합연구의 궤적과 미래’에서 박찬식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허상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은 “후손이 존재하지 않는 희생 인사들을 위한 공동체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에 대해 적극적인 학문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피해 유족 가운데에도 일부 보상금을 모아 유족 복지기금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며 ‘보상금을 활용한 기금 조성’ 구상에 대한 연구를 제안했다. 

또 “법률 테두리와 제도화의 틀 속에 갇혀 ‘4월3일 대사건’과 봉기, 운동 등의 역사와 현재성, 미래 가치와 기억,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에 관한 풍부한 논의와 지평 확대를 제한해선 안 되며 지금부터라도 이중 잣대로 희생자를 선별하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4·3 70주년 당시 기념사업위원회와 범국민위원회가 추진한 4·3정책 10대 요구와 과제들의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이중 △정부 차원의 추가 진상조사 실시 △희생자와 유족, 공동체의 피해회복 제도화 △불법재판 수형인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법제화 △유적지 보존관리 체계화 △희생자 및 유족 신고 상설화 △행방불명인 유해발굴 등 6개 과제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4·3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경우 지난해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분원 설립을 위한 국비 요청안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며 지체되고 있다. 

또 △4·3왜곡방지 및 명예훼손 처벌 법제화 △미국의 책임에 대한 규명과 국제적 해결방안 추진 △4·3의 제 이름 찾기(정명) 등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를 제외한 4·3단체 대부분이 ‘관치재정’ 구조에 머물러 있는”점을 지적하고, 4·3융합전공 과정과 관련해선 “졸업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홍일심 제주도교육청 장학관은 교육과정에서 4·3 기술 내용의 변화를 통해 교육 분야에서 전개된 4·3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짚었다. 홍 장학관은 “2~3년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4·3을 어디서 배웠느냐’는 질문에 80% 이상이 학교 선생님에게서 배웠다고 답했다”며 “학교 선생님들이야말로 준비된 4·3후세대 연구자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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