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벽에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제2공항 피해지역 주민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도청 벽에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제2공항 피해지역 주민들.(사진=김재훈 기자)

오영훈 제주도정은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를 이르면 올해 말에 추진할 계획이다. 2005년 특별자치도로 변경하는 주민투표 실시 후 약 20년 만에 치러지게 된다.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공약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편, 오 지사는 갈등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는 제2공항 건설사업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국토부에 요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공약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시민사회가 도민 여론을 받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주민투표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계와 문화계, 교육계 원로들도 제2공항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강우일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 이상구 제주기독교교회협의회장, 이문교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현기영 소설가, 김명식 시인, 김정기 전 제주교대 총장,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강요배 화가, 박희수·문대림 전 제주도의회 의장은 지난해 10월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오 지사는 거절했다.

오 지사는 제2공항 건설사업이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제주도가 주민투표를 추진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책사업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사례가 있다. 국책사업(거창구치소·법조타운)으로 주민갈등이 크게 일었던 경남 거창군은 2019년 10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자체와 해당 사업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주민갈등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의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하면서 결국 갈등을 해소해냈다. 거창구치소 개소식에 참석한 당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줬다"며 주민들을 치켜세웠다. 무려 대한민국의 법무부장관이 국책사업 주민투표에 대해 높게 평가한 것이다.

2020년 1월에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도 실시했다. 공항 건설 사업에 대해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사례도 있다. 국토부는 주민투표에 결과에 따라 공항 이전 입지를 확정했다. 국책사업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오영훈 지사의 의지에 달린 문제일 따름이다. 오영훈 도정은 국토부와 주민투표를 위한 협의조차 한 바 없다. 주민투표 논의를 위한 공문 한 장 국토부에 보낸 바 없다.

오 지사는 자신의 공약 추진을 위한 주민투표는 서둘러 추진하려고 한다. 하지만 도민 10명 중 7.6명이 바라고 있는 제2공항 건설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제주의소리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3년 7월 27∼28일 제주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도민 1001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 인터뷰 조사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76.6%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20.7%)는 의견을 압도했다.) 도민이 바라는 주민투표는 거부하는 오영훈 지사가, 자신의 공약 실현을 위해 추진하는 주민투표에 대한 협조 요청을 시민사회에 구할 수 있을까. 시민사회는 제2공항 주민투표를 거부한 오 지사의 행정체제 주민투표에 수긍하고 협조할 수 있을까.

국토부가 제2공항 건설사업을 고시하면 갈등 심화는 불가피하다. 주민투표 거부의사를 표명한 오영훈 지사에 반발하며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 거부 운동도 일어날 수도 있다. 오영훈 도정이 시민사회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행정체제 주민투표의 성공은 마냥 장담하기 어렵다. 행정체제 주민투표 시 유권자 4분의 1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며,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협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정체제 주민투표와 제2공항 주민투표를 동에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두 개의 안건을 주민투표 안건으로 채택하면 주민투표 참여율도 높일 수 있다. 물론,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제주투데이 이학준 자문변호사는 "주민투표 시 하나의 안건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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