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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무너진 비영리의료의 벽...앞으로 남겨진 과제들"공론조사위원회 구속력 없다"는 원 지사...숙의형 민주주의 한계성 보여줘
국내의료법인 우회투자 의혹 등 문제점 여전
전시행정과 정부의 외면 뚜렷
김관모 기자 | 승인 2018.12.05 18:12

대한민국 비영리의료의 벽이 허물어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하기로 했다.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를 결정했다. 앞으로 영리병원 논란이 다시금 거세질 전망이다.@자료사진 제주투데이

찬반 여론이 극심하게 갈리면서 녹지국제병원은 제주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결국 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하 JDC)와 뤼디(녹지)그룹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내세운 이유는 한중 외교문제, 국가신인도 저하,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병원 직원 고용문제 등이었다. 원 지사는 개설 불허 때 발생할 부작용이 개설 허가 때 나타날 부작용보다 더 크다고 봤다. 이번 결정에 자신의 정치적 책임도 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개설 허가 강행으로 나타난 문제점이 적다고만 할 수 없다. 이번 개원 허가 과정에서 살펴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숙의형 민주주의의 퇴행

가장 큰 문제는 최근 한국 정치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거론됐던 숙의형 민주주의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지난 2월 1일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도민운동본부)가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서를 도에 제출하면서, 지난 4월 17일 제주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발족했다. 지자체에서는 최초로 지역사안을 주민이 스스로 숙의형 민주주의 방식으로 문제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론조사위원회는 여론조사와 2차례의 도민참여단 회의를 거치면서 녹지국제병원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검토했다. 지난 10월 4일 최종 회의를 마친 공론조사위원회는 도민참여단 58.9%의 반대 의견을 근거로 개설 불허를 권고안으로 제출했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을 존중하겠다"며 불허 절차를 진행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지난 9월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위원회 도민참여단이 제주오리엔탈호텔 한라홀에서 1차 숙의토론을 하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하지만 오늘 5일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을 뒤집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원 지사는 "도민들도 충분한 정보를 파악하고 전문가 의견과 찬반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듣고 도민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어서 공론화를 받은 것"이라며 "공론조사위원회의 결론이 구속력이 있는게 아니다"고 말했다. 공론조사위원회의 활동 의미를 평가절하한 것이다.

특히 원 지사가 개설 허가를 내세운 이유도 공론조사위원회의 도민참여단 회의 과정에서 논의가 됐던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 위원회는 부대의견으로 비영리병원 활용과 병원 직원의 일자리를 배려한 정책을 조언했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의 부대의견을 견지할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가 노력했다는 논의는 반쪽짜리였다. 도는 이 문제를 뤼디그룹과 JDC, 지역주민들과 논의는 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공론조사를 청구했던 의료시민단체나 다른 전문가들과는 제대로 된 협의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민운동본부가 원 지사를 "국내1호 숙의민주주의 파괴자"라며 원색적으로 힐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묻혀버린 불법 의혹들

이번 공론조사위원회 출범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병원 설립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의료법인 우회투자 의혹이다. 도민운동본부는 지난해 녹지국제병원 설립과정에서 미래의료재단과 헬씨라이프, 보타메디 등 국내의료기관이 연계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공론조사위원회의 도민참여단에서도 이런 법적 문제를 우려하며 개설 반대 의견을 낸 참여자도 많았다. 

이런 우려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녹지국제병원이 논의되던 시절 BK성형외과의 우회투자 논란 이후 거듭되고 있는 문제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도와 정부에 이 의혹을 조사해야한다고 요구했지만, 이는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미래의료재단의 우회투자 의혹을 제기하며 녹지병원 설립 반대집회 당시의 모습@자료사진 제주투데이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는 '내국인 또는 국내법인이 우회투자를 통해 실질적으로 국내법인 또는 국내의료기관이 관여하게 돼 국내 영리법인 허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도가 심사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지적돼왔다. 오상원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은 "도의 보건의료정책심의 과정에서 우회투자 문제를 두고 도에서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심의위원들은 병원의 사업계획서조차 보지 못하고 심사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원 지사는 "향후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하여 조건부 개설허가 취지 및 목적 위반 시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하겠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뤼디그룹의 비협조로 행정에 차질이 많았다고 말하는 도정의 모습을 생각하면, 원 지사의 말이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눈가리고 아옹'하는 전시(展示)행정

이번 허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도가 보여준 행보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도는 이날 발표에 앞서서 '밑밥 깔기'식의 전시행정을 보였다. 지난 3일 도는 "금주 중에 개원 허가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말한 직후, 원 지사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언론에 뿌렸다. 원 지사는 해당 지역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녹지병원을 개설해야 하는 이유만을 주민들에게 돌아가면서 들었다. 이후 녹지병원을 찾아가 직원들을 만나 고용불안의 입장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지난 3일 원희룡 지사가 동홍동, 토평동 마을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언론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이 보도자료가 나가자마자 일부 중앙언론들은 원 지사가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을 따르지 않고, 개설 허가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기사들을 쏟아냈다. 일명 중앙언론의 '지원사격'이 이뤄진 것이다.

누가 봐도 '미리 기획해놓은 언론플레이'라고 보이는 상황. 그러자 분위기를 감지한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고, 지난 이틀 사이에 제주사회는 찬반여론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민단체들은 "앞으로 원희룡 퇴진운동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은 상태다.

원 지사의 행보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고, 전시행정에 의지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이중적 태도

또하나의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절 의료영리화 정책의 저지와 지역거점종합병원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있다.

또한,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제도개선위원회에 제출한 이행계획안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과 자법인 설립을 제한하며, 투자개방형 의료법인과 관련해 의료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영리화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있다. 

하지만 녹지국제병원 건과 관련해서 정부의 태도는 매우 미온적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이미 설립계획을 허가한 사안이라 현 정부가 뒤집을 수 없다. 개설 허가는 제주도지사의 권한"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반면, 국토교통부 소속 공기업인 JDC는 여전히 녹지국제병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결국 정부의 실제 입장은 JDC를 통해 대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4월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모습. 문 대통령은 당시 공약으로 영리의료화 정책 저지를 약속한 바 있다.@자료사진 제주투데이

녹지국제병원은 정부나 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 속에서 방치됐다. 문재인 정부가 영리병원 저지에 사실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윤춘광 도의원은 지난 11월 19일 도정질문에서 원 지사에게 녹지병원 개설을 빨리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피력한 바있다. 여당에서도 영리병원을 저지할 의지가 없었던 것. 

 

국내 1호 영리병원이 제주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실제 녹지국제병원이 제주 의료계와 국내의료보험체계를 망가뜨릴지는 미지수다. "국내 의료체계가 단단하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일어나지 않을 일"라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제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불리우는 영리병원 문제가 국내 경제자유구역으로까지 번져나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국내의 의료 혁신은 뒷전인채 의료관광이 일자리와 경제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장미빛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 

한국 의료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이 화두가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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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모 기자  whitekg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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