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리에 위치한 책방 노란우산 1호점. (사진=노란우산 SNS)
서광리에 위치한 책방 노란우산 1호점. (사진=노란우산 SNS)

공기가 습하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비가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자리에 일어나서 책장을 서성인다. 다분히 의도를 담아 그림책 한 권을 꺼낸다. 책의 앞장을 펼쳐 QR코드를 찍는다. 14개의 피아노곡 목록이 펼쳐진다. 한 곡씩 차례로 듣다 맨 마지막 전곡 재생을 몇 차례 다시 듣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본 구도엔 활짝 펼쳐진 노란색 우산이 보인다. 다음 장에는 파란색 우산이 등장하고 그렇게 둘은 어딘가로 향한다. 다음 페이지. 이번엔 초록 우산과 빨간 우산이 추가로 등장한다. 빨간 우산과 노란 우산은 가까운 사이인 듯 우산이 붙어 있다. 아까까지 가까이 있던 노란 우산과 파란 우산 사이엔 초록 우산이 끼었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서로 다른 색의 우산들이 더 늘어난다. 우산들은 함께 줄을 지어 놀이터의 돌다리를 건너고, 분수대 광장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고 건널목과 골목길을 지난다. 그리고 맨 마지막 페이지. 장화를 신고 색색의 우산을 쓴 아이들이 학교를 향한다. 사이좋게.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그림책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사진=요행)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그림책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사진=요행)

이 책은 류재수 작가가 그리고 신동일 작곡가가 곡을 입힌 그림책 <노란 우산>이다. 2001년에 발표된 이 그림책은 글이 없이 오직 그림과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듬해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뉴욕타임즈가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 10선에 2002년 선정됐다. 수상 행렬은 이제 시작으로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역대 최우수 그림책 40선, 프랑크푸르트 우수 그림책에도 선정됐다. 이 책이 왜 이렇게 사랑을 받는지는 직접 읽어보면 깨닫게 된다. 

다만, 저자의 말을 좀 옮기면 류재수 작가는 ‘오직 투명한 시각적 이미지 자체만을 표현하는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쓸데없이 생각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의문스럽게 물어 올 때면 덧붙인다. “아무 뜻도 없어요. 그냥 색들의 즐거운 리듬을 표현한 것이고, 그것이 이 그림책의 특징이에요.” 쓸데없는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어른인 나는 이 책에서 ‘개개인의 독립성과 그 독립성에 대한 존중 이를 통한 연대’의 따스함을 느꼈다. 

중간에 출판사가 한 번 바뀌면서 이 책은 2007년에 보림출판사를 통해 새로운 1판 1쇄가 발행됐다. 2020년까지 23쇄가 발행되는 등 우리나라 그림책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사랑 받고 있다. 바로 이 책의 이름을 따 온 책방이 이제 소개할 그림책 카페 노란 우산이다. 이 책방의 책방지기는 이진, 김종원 부부다.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책방지기 이진(왼쪽)씨, 김종원씨. (사진=요행)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책방지기 이진(왼쪽)씨, 김종원씨. (사진=요행)

이진, 김종원 책방지기는 지난 2015년 초에 제주로 이주했다. 맞벌이 부부로 대구와 대전 등지에서 살았는데 가족을 위해 눈코뜰새 없이 지냈다. 그런데 이런 삶이 과연 정말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간호사였던 이진씨는 3교대로 근무하며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남편 김종원씨 역시 야근이 일상이라 어린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이게 맞나? 지금 이 모습이 우리 부부가 꿈꿔왔던 미래일까’

‘아니’라는 결론은 쉽게 내려졌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지금보다 단순하게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제주로 왔다.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를 알아보려 제주의 시골 마을 학교들을 두루 다니다 서광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이주의 가장 첫 번째 목적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이를 위해 유연한 일자리가 필요했다. 기존에 해오던 일을 제주에서도 계속한다면 이주를 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터. 부부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카페를 열기로 했다. 

제주의 낡은 옛집을 개조해 카페를 열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여기에 책을 가져놔도 좋겠다, 책방을 겸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이진씨는 책을 좋아했고 그즈음 그림책을 자주 보던 터였다. 

‘이 한적한 마을의 카페까지 찾아오는 거라면 쉼이 필요한 분들일 테니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책을 가져다 놓아야지. 이곳에 머무를 시간만큼이라도 세상의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림책들로.’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이 곳에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그림책도 볼 수 있다(사진=요행)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이 곳에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그림책도 볼 수 있다(사진=요행)

카페가 그림책방으로 재탄생한 것이 지난 2016년 8월이다. 책방 이름은 보림출판사와 연이 닿아 사용하게 됐다. 보림출판사는 2016년 5월 서울 홍대에서 ‘노란 우산’이란 그림책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책방지기 부부가 그림책 이름으로 책방 이름을 하고 싶다고 하니 선뜻 같은 이름으로 서울점, 제주점 하면 좋겠다고 역으로 제안했다. 그렇게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 제1호 서광리 마을 책방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책방을 운영한 지 올해로 7년 차에 접어든다. 그 사이 정말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한 번은 경기도에 위치한 고양외국어고등학교 친구들이 수학여행 차 제주에 왔다 이곳에 들렀다. 이날, 이진씨는 아이들에게 <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을 읽어줬다.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이란 부제가 붙은 그림책은 아이들의 이목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어린이들이나 읽는 것이 그림책이라고 무시하던 아이들은 ‘고래’에 ‘꿈’을 대입해서 들어보라는 말에 이내 집중했고 반응이 대단했다. 울먹이던 친구들, 너무 멋지다며 박수를 치던 친구들. 이 책을 읽고 이곳을 나선 친구들은 좀처럼 감동이 가시지 않았는지 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화답했다. 그 중엔 매우 긴 문자메시지가 있었는데 사연이 이랬다. 

그 친구는 그때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는데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함께 읽으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다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다.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어린이와 어른이 두루 좋아할 만한 그림책들. (사진=요행)
제주관광대에 위치한 노란우산 2호점. 어린이와 어른이 두루 좋아할 만한 그림책들. (사진=요행)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한 부부가 책방에 찾아왔는데 이진씨의 손을 덥썩 잡으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바로 그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학생의 부모였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늘 물에 빠진 솜인형처럼 다녀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대화는 단절됐고 아이는 늘 힘들어 보이는데 그 속을 알 길이 없었는데 제주를 다녀온 후에 책방 이야기를 하더니 아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이 부모의 아이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쫓아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서로 충분히 상의를 했고 부모는 아이를 믿고 앞날을 응원하며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야 아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책 한 권만의 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책에 진심을 담아 읽고 아이들의 눈을 보며 소통한 이진씨가 있었기에 한 아이가 웃음을 되찾았으리라. 그림책방을 운영하는 근간엔 아이들이 자신답게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과 응원하는 마음이 자리해 있다. 

이진씨는 그림책 <노란 우산>의 세계처럼 서로 다른 개인이 서로 존중하며 연대하는 삶을 꿈꾼다. 대상에 대한 존중의 마음은 나이가 어리다고 또는 많다고 다르지 않다. 체격과 나이는 어른에 속하지만 내면에 여전히 어린이가 있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림책방을 내건 이상 부부는 보다 더 전문성을 갖추기로 했다. 이진씨는 16개월에 걸쳐 그림책 작가 양성 과정을 수료했다. 그림책 동호회를 결성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마음을 여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