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15분도시 자료사진. (출처=paris en commun)
프랑스 파리 15분도시 자료사진. (출처=paris en commun)

‘도시는 누가 만드는가’하는 질문은 ‘어떤 관점에서 도시를 만드는가’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소수의 정책 입안자 및 집행자의 능력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성별, 연령,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사람들의 정책 참여와 요구 반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정책행위자들이 시민들의 다양한 위치와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으로, 이는 무엇보다 정책에서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게 한다. 

한 예로 도시 제설작업을 들어보자.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제설작업의 우선순위는 어디인가? 보통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주요도로에 대한 조치가 먼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경우는 달랐다. 스웨덴의 칼스코가시에서는 눈이 내린 후 도로에서 일어나는 사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동차 사고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보행자와 이륜차 사고 비율이 높고,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더 나아가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 도보와 자전거, 대중교통의 이용 비율이 높은 이동 패턴의 성별 차이를 발견하고, 이를 고려하여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빈도와 위치를 파악하여 유치원, 학교 근처 등을 제설작업 우선 순서에 반영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여성들의 사고 피해를 줄이고 병원비 및 생산성 손실 감소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으며, 여성뿐 아니라 어린이를 포함한 전체 보행자의 안전과 도시 접근성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책 관점을 성인지 관점(性認知, Gender-Sensitive)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를 제주 지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현재 제주도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 사업은 지난해 7월 출범한 민선8기 오영훈 도정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이다. ‘15분 도시’란 거주지에서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근거리에서 주민들이 교육, 의료, 문화, 쇼핑, 여가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고 한다. 2020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고 국내에는 부산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오영훈지사는 ‘15분 도시 제주 기본구상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에서 15분 도시가 “지역 불균형, 인구 과소·과밀 등 현안을 해결하고 주거와 일자리, 복지, 보육, 문화 등 도민 삶과 직결된 전 분야에서 대전환을 일으킬 혁신정책”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현 도정이 추진하는 ‘15분 도시’ 사업은 인구, 지역, 주거, 일자리, 복지, 보육, 문화 등 제주 지역의 정책 전 영역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책이자 제주도민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이 상당하다 하겠다. 특히, 올해 제주도는 15분 도시의 10년 계획을 수립하는 중요한 단계에 있다. 이를 위해 200여명의 도민참여단을 구성하여 각 지역 생활권의 의제 발굴과 주민 수요 파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의견수렴 및 계획 수립 단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먼저, 일상적으로 15분 도시의 핵심인 도보와 자전거, 대중교통을 보다 많이 이용하는 청소년, 여성, 노년층의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애인, 영유아와 그의 동반자, 노년층 등이 휠체어와 유아차, 지팡이 등을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이들의 경험과 의견도 중요하게 파악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의 성별 균형도 중요하다. 

기존 도시 분야의 의사결정 과정이 그러하듯이, 여성 전문가들이 과소 대표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정책을 만들고 주요 안건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자들이 대부분 중산층의 비장애 성인 남성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제주의 도시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제주에는 ‘15분 도시’ 이외에도 여성친화도시, 고령친화도시, 아동친화도시, 범죄예방디자인, 배리어프리 등 도민들의 안전과 편리,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도시 정책들이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 15분 도시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따라서 각 도시 정책들이 서로 연계 하에 제주형 도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시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적어도 다른 도시 정책에 어떤 사업이 있으며 중복되는 사업과 협업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스웨덴의 사례는 기존의 자동차 중심 그리고 자동차를 보다 많이 이용하는 남성 중심 관점에서 벗어나 의문을 제기하고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자 했던 시(市) 당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시를 가꾸는 일은 단지 이동시간의 문제도, 도로를 차도로 만들 것인지 인도로 만들 것이지 등과 같은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정책 결정과 의견수렴 과정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없도록 더욱 세심한 노력과 열린 사고가 요구된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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