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1. 제주에서 열린 국제포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주제로 하는 세션에 현직 해녀들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해녀들은 사회자로부터 제주어를 사용하고 바다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도록 요청받는다.

#2. TV 방송 시사토론회

해루질의 문제를 지적하고 레저동호회와 해녀들의 갈등을 함께 다룬 토론회였지만 정작 패널에는 해녀를 찾아볼 수 없다. 해녀들의 경험은 어촌계를 대표하는 남성에 의해 대변된다.      

#3. 월정리 해녀 투쟁 현장

며칠 전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를 위해 해녀들이 투쟁을 이어나가는 현장에 여러 남성들이 찾아와 악담과 고성을 퍼붓는다.

해녀에게도 대표성이 필요하다

제주해녀들은 바쁘다. 생업뿐만 아니라 환경지킴이의 역할까지 1분 1초를 쪼개가며 일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마을과 지역의 개발과 환경파괴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는 배제된다.

제주지역에는 총 102개의 어촌계가 있다. 어촌계원 다수는 여성이다. 해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표하는 어촌계장은 소수인 남성이 대부분이다. 제주지역 어촌계장의 여성 비율은 23.5%(2019년 기준)로 타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여성 어촌계원이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촌계의 여성들은 과소대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주는 여성이 많고 여성들이 일도 많이 하여 ‘삼다도’라 하였지만, 여성의 정치 대표성은 매우 낮은 곳이다. 제주는 지난 총선 역사에서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한 지역이다. 도지사는 말할 것도 없다. 제주 여성의 과소대표성 자체가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들의 대표성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월정리 해녀들의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중단 촉구 집회. (사진=박소희 기자)
월정리 해녀들의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중단 촉구 집회. (사진=박소희 기자)

해녀는 공유지를 돌보는 어업인이자 생태전문가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해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인들의 일상적 삶, 생활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해녀는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제주를 알리는 ‘관광상품’이었다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해녀는 이에 더 나아가 제주어를 구사하며 외지인들에게 제주의 전통문화와 자연을 매개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의 역할까지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해녀문화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위해서는 관광상품 및 문화재와 같이 원형 그대로를 보전하고자 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녀들의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삶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녀들은 다년간 환경친화적인 나잠어로 방식을 유지하면서 바다 공유지의 생태계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생산·지속해 왔다. 해녀들의 노동과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공유지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방안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의 지속가능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해녀들은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공짜처럼 여기며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막아서는 어업인이자 생태전문가이다.

해녀들은 오랫동안 어머니에서 딸로 그리고 며느리로 물질을 전수하면서 바다와 물질에 대한 체화된 지식을 축적해왔다. 해녀만큼 연안바다에 대한 지식과 변화를 잘 아는 집단은 없다. 그렇다면 연안바다의 전문가는 누구인가? 우리는 제주섬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자연과 인간 간의 그리고 인간들 간에 발생하는 문제와 해법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해녀가 도지사가 된다면

If. 만약에... 영어에서 가정법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조건 하에서의 가정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만약에 해녀(여성)가 도지사가 된다면’의 경우는 이 둘을 모두 포함한다.

여성 도지사가 탄생하는 일이, 중학교 영어에서 달달 외운 ‘내가 새라면 훨훨 날아 갈텐데...’ 처럼 지금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이는 시기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해녀가 도지사가 된다면, 도정의 방향과 공약은 기존의 시장과 성장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돌봄과 공존, 공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제2공항과 같은 과도한 개발에 대한 지양과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오늘날 전지구적인 생태 위기와 팬데믹 시대에 적합한 지역사회 리더는 ‘성찰할 줄 아는’ 해녀와 여성들 그리고 이에 공감과 실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월정리뿐만 아니라 제주 곳곳에서 해녀들은 개발로부터, 기후위기로부터,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환경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다. 이 ‘해녀 투쟁’은 생업의 터전이 황폐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해녀만의 투쟁이 아니라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강경숙.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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