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런 제주도에서 나는 4년 6개월째 살고 있다. 제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많이 부러워한다. 나는 날마다 바다와 숲과 밭과 파란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제주도는 지금 온갖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제주도에서 와서 살아보니 어떠냐고. 나는 몸은 행복한데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처음 살던 곳은 제주 조천읍 선흘2리다. 한라산이 가까이 보이고 세계자연문화유산인 ‘거문오름’이 있고 람사르생태습지마을이다. 그곳에는 40명쯤 되는 아이들이 있는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가 있다. 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에 반해서 그곳에 터를 잡았다.

봄이 오면 제비가 내 집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았다. 아침에 마을길을 걸으면 꿩들이 쌍쌍이 날고, 밤이면 노루 식구들이 줄지어 밭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이런 마을에,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서 동물원을 만들려 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호랑이, 사자, 코끼리 같은 동물 26종 500여 마리를 들여와서 사파리를 만들려 했다. 나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동물원이 들어서면 야생동물 울음소리와 냄새로 마을에 사는 온갖 동물들은 겁에 질려 살 수 없다. 동물원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말했다. 점점 없어지는 동물들을 데려와서 잘 살게 하고, 아이들이 동물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하겠다고. 어떻게 아주 무더운 곳에서 살던 동물들이 습지마을에 와서 잘 살 수 있을까. 또 아이들은 마을길을 걷기만 해도 까투리, 장끼, 노루, 고라니, 사슴, 제비, 까치, 까마귀뿐만 아니라 천연보호종인 두견이, 뻐꾸기, 긴꼬리딱새, 비바리뱀도 볼 수 있다. 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생태공부가 아닐까.

내가 제주도 선흘에 살았을 때 제일 행복한 일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떠돌이 개였던 ‘광복’이를 만난 것이다.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우리 집에 들어와서 이름이 광복이다. 두 살 난 여자아이였다.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올 땐 많이 아팠다. 몸도 삐쩍 말랐고 온 몸에 진드기가 많았다. 나와 아내, 아들은 개를 키우기를 망설였다. 한 번도 강아지와 같이 살아 보지 않았고, 서울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개를 키울 만큼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제주도에 있는 동물보호소에 전화를 했더니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제주도에서만 하루에 버려지는 개가 50마리가 넘고 한 달에 2,000마리나 된다고. 2주 동안 알려서 같이 살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삶을 달리 시킨다 했다. 끔찍했다. 우리 집에 들어온 목숨을 내칠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우리 식구가 되었다. 병원에 가서 아픈 곳을 모두 고쳤다. 진드기도 모두 없애고 개 심장에 모기 균이 들어와서 생기는 심장사상충도 없앴다. 치료비만 150만 원쯤 들었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도 따뜻한 마음을 서로 나누면 눈빛이 맑고 환해진다. 이제 광복이는 우리 집에서 제일 귀중한 보물이다.

점을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아내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을 거라 했다. 광복이는 이제 우리 집 딸이 되었다. 나는 광복이를 만나 참 행복하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아프리카에서 억지로 데려온 동물들이 살았다면 우리 광복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 수 없었다. 동물원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정말 사라지는 동물을 지키고, 아이들에게 동물들과 가까이 지내며 정을 나누기를 바란다면 버려지는 개들이 행복하도록 힘을 써야 한다. 다행히 선흘2리 이장이 새로 뽑히며 동물원을 짓는 것은 막았다.

나는 《침묵의 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더 했다. 1962년에 쓴 책이지만 점점 뜻이 깊다. 우리 마을에 동물원에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을 베고 땅을 파헤쳤을까. 그 나무에 살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풀숲을 없애려고 농약을 얼마나 쳤을까. 그것을 먹고 숲에 살던 새와 동물들은 얼마나 죽었을까. 숲이 없어지고 새가 사라지고 동물들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처음 펼치면 강과 숲과 나무와 새와 동물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평화가 사라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사람들이 먹는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를 죽이려고 농약을 뿌렸다. 그 벌레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벌레를 먹고사는 벌레도 죽고 새도 죽고 동물도 죽었다. 독약이었다. 친 땅에 비가 오면 냇가에 살던 물고기가 죽고 그 물고기를 먹고 사는 새들도 죽었다. 농약이 풀린 냇물은 강으로 흘렀고 강에 살던 물고기도 죽고 그 물고기를 먹은 새와 짐승들도 죽었다.

농약이 든 강이 갯벌과 바다로 흘렀다. 갯벌에 사는 게와 소라가 죽었다. 그것을 먹고 사는 새들도 죽었다. 독이 든 바다에는 바닷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결국 그 물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도 몸이 비틀어지면서 죽어간다. 풀과 벌레를 죽이는 농약은 점점 더 센 것이 있어야 했다. 벌레들이 농약을 이기는 힘이 생겨서다. 사람들은 쓰다 만 농약을 함부로 버리기도 한다. 그 농약으로 인해 자신이 키우던 개가 죽고 자기 아이도 목숨을 달리한다. DDT는 이 책에서 나오는 풀과 벌레를 죽이는 약이다. 그런 약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그 약들이 개천과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땅에는 지렁이가 살지 못하는 사막으로 바뀌고, 나무는 죽고 숲이 사라지면서 강이 마르고, 갯벌이 없어지고, 바다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사람들은 벌레와 풀을 죽이는 약들이 결국 벌레를 모두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땅을 죽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정부기관에 있는 관리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 농사꾼들은 쉽게 벌레와 풀을 죽여서 더 많은 농작물을 얻고 싶어 한다. 어느 정도는 그 뜻을 이루지만 땅은 쓸모없어지고 벌레들은 다시 나타난다.

농작물을 헤치는 벌레들은 또 다른 벌레들과 새들이 먹게 해서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병이 든 나무를 구하겠다면서 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서는 안 된다. 그럼 그 나무만 죽는 것이 아니다. 농약 성분은 바람을 타고 다른 숲에도 가고 강에도 간다. 그곳에 사는 생물들이 모두 죽는다. 검은 숲과 검은 강만 남는다. 사람도 그 땅과 강에 난 먹을거리를 먹다가 죽는다.

나무가 병들었으면 그 나무만 골라 죽이거나 그 나무가 병들게 하는 벌레를 죽이는 다른 벌레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 그런 방법이 돈이 많이 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갯벌만 예를 들어보자. 갯벌을 만들려면 8,000년이 넘게 걸린다. 그 갯벌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산다. 갯벌 하나가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기계 수 백대 일을 한다. 갯벌을 없애서 쌀을 만드는 땅으로 만드는 일이 정말 해야 할 일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나무를 죽이고 숲을 없애서 만드는 개발이 정말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인지 다시 살펴야 한다.

어떤 책을 보면 지구에 사람이 사라지고 100년이 지나면 다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참 슬프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현대인은 정말 슬기롭고 슬기로운 인간일까. 정말 우리는 슬기롭게 살고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 새와 동물과 나무와 산과 바다가 제 목숨대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아닐까. ‘침묵의 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그런 꿈을 꾼다.

선흘2리에 동물원이 만들어지는 것은, 새롭게 마을 이장이 뽑히고 마을 사람들이 뭉쳐서 막아냈다. 3년이 지난, 오는 12월 27일 수요일에 선흘2리 이장 선거가 다시 있다. 아무쪼록 이번에도 자연을 마구 더럽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분이 선흘2리 이장으로 뽑혔으면 좋겠다.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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