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로 인한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바다를 삶터로 삼는 해녀들은 행정과의 싸움에 주체로 나섰다. 그들은 도청 앞에서 밤낮을 보내고, 공사 예정지 진입로에서 돌아가며 보초를 서며 포크레인 앞을 막아섰다. 제주바다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이들은 하수처리량을 늘리면 안된다고 5년 넘게 소리쳤다. 이미 충분히 오염됐다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되돌릴 수 없다고.

월정리 막내 해녀 김은아(48)씨는 여러차례 총대를 매고 목소리를 냈다. 앞으로 40년, 50년 계속 고향에서 물질을 하고 싶다고, 해녀들의 목숨값이 보상 하나로 흥정이 되냐고 오영훈 지사 앞에서 호소했다. 제주바다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였다.

이와중에 일본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는 발표까지 났다. 월정리 뿐만 아니라 제주 전체에 직간접적인 피해가 예상됐다. 어민들 뿐만 아니라 주제주총영사관 앞에서 여러차례 시위를 벌였다. 김씨도 군중 속에서 '방류 계획을 철회하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피켓을 연신 치켜들었다. 

그는 방류 저지를 위해 대통령 등을 상대로 한 헌법소원에도 앞장섰다. 어민, 상인, 일반 시민 등 약 4만명의 대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헌법소원심판 청구인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저 없이 청구인 참여 신청서를 냈고, 민변의 제안으로 대표 청구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제주도와 마을회가 타협하면서 공사는 결국 재개됐다. 일본의 계획도 실행돼 현재까지 2만3000t의 오염수가 바다에 뿌려졌다. 오염수는 앞으로 30년간 방류될 예정이다. 증설공사가 끝나면 처리되는 하수량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김씨도 평소대로 바다에 들어갈 것이다. 물질을 위해.

제주투데이는 김은아 해녀를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 29일 오전 제주시내 카페에서 만난 김씨의 얼굴은 까맣게 타있었다. 요즘은 궂은 날씨만 아니면 바다 뿐만 아니라 밭으로도 나서는 그녀다. 당근 수확철이기 때문이다. 해녀는 물질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농사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김씨는 수눌음으로 동네 삼춘들의 밭을 이곳저곳 다니며 다함께 흙을 뒤집어 쓰고 구슬땀을 흘린다. 기자들이 '훈훈하다'고 말하자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게 공동체에요."

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 월정리 막내 해녀다. 비교적 최근에 해녀업에 종사하게 됐다고 들었다.

"2017년부터 해왔으니 7년차다.  이전까지는 제주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어머니의 건강악화로 돌볼 사람이 필요했고, 어머니의 생활리듬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월정리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이웃삼춘들이 해녀이기에 귀동냥으로 배웠다. 바다에서 어느 구역이 위험하다던지, 여기 너머로 나가면 안된다던지 그런 것들. 다른 마을이었다면 막내까지는 아니다(웃음). 법환 해녀학교에서 해녀 양성도 하지 않나. 다만, 얼마 못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더라. 이제는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 월정리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아가면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반대운동을 주도해왔다.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낼 수밖에 없었던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

"나 자신이 물질을 하다보니 바다의 변화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월정리에 오기 전부터 해녀들은 의견을 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녀 뿐만 아니라 마을 내 여성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직접 문제를 파헤쳐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 5년 넘게 싸워왔지만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공사재개에 합의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된 양상이다. 그러나 생채기는 아직도 남아있다.

"겉으로는 갈등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하다. 법적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초반에는 마을회와 함께 움직였지만 건설사 측에서 해녀들을 상대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압력이 가해지니 마을 안에서도 의견이 나뉘더라. 특히 저를 포함한 비대위 위원 4명에게 각 1억9000만원이라는 집행 부여의 소 판결이 나온게 결정적이었다. 집회 1회당 100만원씩 계산이 됐는데 현장에 있던 컨테이너까지 공사방해물로 판단돼 적치일수만큼 계산이 됐더라. 함께 반대 입장을 고수해오던 마을회도 뒤로 빠졌다. 부담이지 않았겠나. 결국 지난 1월 월정리마을회 임시총회에서 비대위 해산안이 의결되고, 마을회 차원에서는 '미래발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협상체제가 꾸려졌다. 행정과의 대화창구는 공사 찬성 측인 미래발전위 뿐이었다. 반대 의견은 배제됐다.

그럼에도 해녀회 단독으로 반대운동은 지속해나갔다. 삼춘들이 교대하면서 컨테이너를 지켰는데 마을회에서 하루아침에 치워버렸다. 읍사무소에서 불법건축물이니 치우라고 했다더라. 우회적으로 '그만 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 같다. 이후 삼춘들이 집회에서 공사차량을 막으니 건설사 측은 경찰에 업무방해죄로 고발했다. 어촌계장님이나 이장님 등이 '이러다가 벌금도 물고 자식들한테까지 피해가 간다'고 회유를 했다. 마을 걱정은 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겠나. 해녀들도 점점 집회에 나타나지 않기 시작하고 행정은 그 틈을 타 마을회와 속전속결로 협상을 진행했다."

3월 30일 월정리 해녀들은 증설 반대를 외치며 제주도청 주차장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사진=제주녹색당)
지난 3월 30일 월정리 해녀들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를 외치며 제주도청 주차장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사진=제주녹색당 제공)

- 당시 오영훈 지사와 월정리 주민들과의 만남 등 제주도는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월정리 주민과 행정이 민주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보여지더라. 하지만 그간 과정에서 바다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해녀들의 목소리는 반영이 안됐다. 특히 마지막까지 반대운동을 벌였던 해녀분들은 오히려 마을 내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까지 왔다. 친구와 가족끼리도 의견이 달라서 다툼을 벌였다.  마을 주민들 사이 감정적 대립, 그로 인한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 제주도는 상생방안으로 벽화마을 조성, 마을회관 신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진정으로 '상생방안'이 맞을지 의문이 든다.

"지원사업이나 금전적 보상도 당연한 권리이긴 하다. 다만, 해녀들이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그런게 아니다. 바다생태계의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의 방식은 어딘가 어긋나있다. 양측간의 논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행정은 답을 정해놓고 바꾸려하지 않는다."

- 갈등해결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장기적으로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면 바다환경을 복원하거나, 마을주민들의 복지를 위한 사업들을 발굴하거나 지원하는 방안 말이다. 그러나 행정은 매번 관광객 유입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월정리에는 관광으로 먹고 사는 주민들이 많지 않다. 지상과 바다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 주민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갈등은 많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월정리는 어떤 점이 달랐나. 

"연대이지 않겠나. 귀향 전부터 삼춘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피켓 시위를 개인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함께 활동하던 여성농민회나 강정 활동가들에게 연대를 요청하고 함께 대응방안을 고민했다."

월정리 주민들이 동부하수종말처리장 증설에 반대 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월정리 주민들이 동부하수종말처리장 증설에 반대 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 리더의 자질이 있는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안할 수가 없어서 하는 것이다. 내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해야하는 역할이기에 한 것 뿐이지 앞에 나서는 일은 원체 체질이 아니다. 일본 원전 오염수 헌법소원 심판 대표 청구인에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지난 11월 제주투데이와 파란이 공동주최한 '제주해양포럼 특별 컨퍼런스'에서 바다의 증인으로 참여하지 않았나. '바보같긴 하지만 물질이 끝나고 오염수가 희석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물을 2리터씩 마신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무의미한 일이긴 하다. 한창 논란일 때 물질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원래 여름에는 '금채기'라 물질을 안하고, 10월부터 슬슬 바다에 들어간다. 그런데 일본이 10월 방류를 예고했다. 행정은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수협 어촌계에서도 해녀들에 보상이 이뤄질 것이고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안심시켰다. 다른 해녀들도 걱정은 하지만 섣불리 드러내지 못하더라. 그렇다고 나만 살자고 바다에 안들어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물질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걱정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그렇다. 

- 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올해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 않나. 그러나 막상 최일선의 해녀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바다 내에 인위적으로 해조류를 심는 '바다숲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바다 자체 온도가 높아지고 육상오염원은 계속해서 늘어가는 상황에서 조성된 바다숲이 유지가 될까. 오히려 쓰레기로 전락했다는 다른 지역 사례도 있다. 해녀문화는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해녀 스스로 주체적으로 활동할 때 의미가 있는 거다. 그러나 바다는 스스로의 자생력을 잃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조금씩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있다. 삼춘들도 '바당은 결국 살아난다'고 얘기하더라."

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제주투데이가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월정리 해녀 김은아씨가 지난 29일 제주시내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 본인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갖나.

"뗄 수 없는 인연? 어릴 적 기억이 선명하다. 5~6월 보리 수확철 농촌에서는 '보리 방학을 하지 않나. 내가 다닌 초등.중학교에서는 '우미 방학'을 했다. 우뭇가사리 채취를 위해 온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북적북적했다. 그만큼 해조류가 풍부했다. 저희 어머니도 농산물보다 바다에서 채취한 것들로 저를 먹여 살렸다. 어린 저한테 바다는 무한한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들에 의해서 너무 많이 변했다. 물질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뭇가사리가 많이 보였는데 해가 갈 수록 줄더니 지금은 아예 없다. 수온도 많이 올랐다. 하수처리장 문제 역시 월정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 전체의 문제, 기후위기와 연결돼 있다."

- 본인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생존이다. 사람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나(웃음).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평생을 월정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는 건 당연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관심을 덜 갖게 되고, 내 가족에 위협이 되면 누구나 목숨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나는 활동가가 아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다."

- 새해 계획은.

"마을회마다 개발위원회가 있는데 이번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제주도와 미래발전위원회의 협상내용을 알게 됐는데, 정식으로 체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목소리는 내봐야 하지 않겠나. 특히 마을회 내 위원회는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돼 있어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계기로도 삼아보려고 한다. 그 외에는 부모님 건강회복에 집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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