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두 장의 음반 녹음과 프로듀싱으로 정신없이 바빴고 음반 모니터링과 믹싱작업을 하는 동안 귀와 정신은 혹사당했다.  눈 깜짝 할 사이 일년이 지나가 버렸다. 지난해 만큼 음악을 특히, 재즈를 덜 들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얼마전 느닷없는 폭설에 예정된 스케줄은 모두 취소돼 이틀 동한 휴식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 거리는 한산했고 창밖은 온통 눈이었다. 작업을 멈추고 흩날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음악속에 푹 빠져들었다.

지난 한해에 발매된 재즈앨범 중 인상적인 몇 장의 음반들을 정리해 본다.

Fred Hersch & Esperanza Spalding [Alive at the Village Vanguard 2023]

2018년에 빌리지 뱅가드에서 가졌던 라이브 실황 앨범이다. ‘무결점의 피아니스트’라 불리우는 학구적이면서 진중한 Fred의 피아노와 함께 베이스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인 Esperanza는 (악기를 놓고) 감춰두었던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맘껏 드러낸다.

첫곡 But not for me부터 앨범의 색깔을 명확히 느낄 수 있는데 보컬은 마치 독백하듯 자유롭게 노래하고 프레드의 피아노는 사려깊게 조율된 음들을 풀어 나간다. 유니크한 피아노현을 뮤트한 리프 위로 스캣 인트로가 인상적인 little suede shoes도 빼놓을 수 없다. 싱글노트를 이용한 카운터 포인트,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코드사운드 등 화려한 피아노 사운드가 숨을 멈추게 한다.

Gretchen Parlato & Lionel Loueke [Lean In]

그레첸 팔라토는 일반적인 재즈 보컬의 형식을 뛰어넘는 자기만의 독특한 화성을 펼치며 현대적인 사운드와 파격으로 무장한 보컬리스트다. 리오넬 루에케의 기타 역시 정통적인 재즈를 넘어서 아프로 음악의 특유의 박자를 넘나드는 복잡한 리듬과 현란한 연주로(카피조차 불가능하다) 이미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연주자다. 음반은 역시나! 하는 감탄이 들만큼 기타와 보컬을 중심으로 완벽한 인터플레이를 들려준다. 음반엔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소박한 연주의 곡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스캣화음으로 시작되는 첫 곡 를 필두로 감미로운 리오넬의 신비로운 화성과 엠비언트 기타가 조화를 이루는 등 저마다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하다.

Cécile McLorin Salvant [Mélusine]

이제는 정말이지 믿고 듣게 되는 세실 맥로린 살반트의 새 앨범이다. 레이블을 이적한 후 발표한 첫 앨범인데 (토요일마다 반쪽이 뱀으로 변하는 여성인) 멜뤼진 신화를 테마로 샹송과 재즈 그리고 그의 뿌리인 아프로 음악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아버지 사이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을 그는 2007년 어머니의 모국인 프랑스 음악학교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던 중 몽크 재즈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시작했다. 그 이후로 세 개의 앨범이 그래미 재즈 보컬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이 인정하는 재즈 디바로 우뚝 섰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무려 4개의 언어로 노래하며 음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레오 페레의 는 반복되는 피아노 프레이즈와 두터운 콘트라 베이스의 리프위에 절절한 목소리가 더해지며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원초적 느낌의 북소리와 보컬의 이중주 편성의 상당히 독특한 컨셉의 와 그의 오리지널 곡인등 유니크한 사운드가 펼쳐진다.

앨범 전체에 공간감이 상당하고 각 악기마다 진한 감정이 담겨 있다.

Ben Wendel [All One]

독일 출신의 색소포니스트 Ben Wendel의 연주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먼저 접했다.

Julian Lage(G)Johnathan Blake(D),Linda My Han Oh(B)등 악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주자들과의 듀오로 실험적이면서도 실내악적인 정갈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 앨범 역시 Bill Frisell, Cecile McLorin Salvant,Jose James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연하며 곡마다 색다른 질감을 창조해 냈다.

테너 섹소폰과 바순등의 관악기를 중심으로 레이어를 중첩하여 쌓아올린 사운드에 보컬과 기타,트럼펫,피아노등이 자유롭게 노닌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일렉트로닉 적인 파격적인 편곡임에도 연주자들의 관록있는 연주가 오히려 돋보인다. 벤 웬델이 직접 프로듀싱과 레코딩까지 해냈다.

Louis Cole [Quality Over Opinion]

나레이션이 들어가는 곡들에 병적인 애착을 갖는 편이다. 이 앨범의 첫곡은 스트링 사운드과 빠른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시작하자 마자 훅 빠져 들었다. 앨범의 수록된 20개의 곡들 모두가 정말이지 기발하고 유쾌하며 정교하고 치밀한 소리들의 집합이다.

드럼, 기타, 키보드,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등 갖가지 악기들을 홀로 연주하며 겹겹이 쌓아올린 사운드는 재지하면서도 펑키하고 팝적이면서도 상당히 힙하다. 홈레코딩으로 혼자 곡을 쓰고 연주하고 프로듀싱과 믹싱까지 직접해낸 온갖 장르들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잘 정리 된 요상한 매력의 음반이다.

Ambrose Akinmusire [Owl Song]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꿈꿔 왔던 소리들이 음악으로 들려질 때가 있다. 이 앨범이 머릿속에서 들려지는 음악과 상당히 유사해 깜짝 놀랐다. Bill Frisell(G)과 Herlin Riley(D)의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된 곡들은 회화적이고 정적이며 시를 읽는 듯 함축적이다.

Bill Frisell의 절제되고 감각적인 기타 연주와 섬세하게 붓칠하듯 리듬을 만들어내는 드럼 위로 트럼펫 사운드는 짙은 안개처럼 부유하기 시작한다. 세 개의 악기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색깔과 호흡을 들려주는 기타와 듀오로 연주한 에서의 생동하는 트럼펫 사운드, Herlin Riley의 다양한 리듬터치가 곡을 주도해나가는 등 앨범의 모든 곡들 각각이 개성적이며 아주 깊은 여운을 남긴다.

George Freeman [The good life]

1927년생 노장 기타리스트의 연주가 담긴 경이로운 음반이다.

세월이 묻어나는 스토리텔링과 노련한 프레이즈와 감정은 무척이나 깊다. 할로바디 기타에서 우러나오는 선율은 Christian McBride의 베이스와 Joey Defrancesco의 오르간,Lewis Nash의 호쾌한 드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기타 트리오의 기본구성에 곡마다 베이스와 오르간이 번갈아가며 바뀌는데 그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감상포인트! 타이틀곡인 와 등에서 콘트라 베이스의 탄탄한 워킹에 맞춰 진득히 펼쳐지는 선율은 가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소울풀하게 공간을 감싸는 오르간 연주가 담긴 등의 곡에선 블루지함이 한없이 짙어진다.

그외 추천 음반들

Gery Allen & Kurt Rosenwinkel

피아노와 기타 듀오의 내밀한 연주가 가득하다.

Wolfgang Muthspiel

한창 재즈기타를 연주할 때 엄청 들었던 나의 울피. 이제는 기타로 글을 쓰듯이 사색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Chris Potter

얼음처럼 단단하고 냉철한 색소폰과 그의 앙상블.

James Brandon Lewis’ Red Lily Quintet

가스펠의 여왕 마할리아 잭슨의 소울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음악속에 담아냈다.

Johnathan Blake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탄탄하고 견고한 사운드의 향연.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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