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매체가 티브이와 라디오가 전부였던 때가 떠오른다. 방송을 듣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하던 시절. 한 곡 한 곡 꾹꾹 눌러 담곤 했다. 디제이의 멘트가 들어가고 후주가 잘리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데크가 두 개인 카세트 플레이어가 나오면서부터는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담을 수가 있었다. 앞 뒷면을 꽉 채우고 노래 제목을 꼼꼼히 적어 나만의 노래 모음집(Mix-Tape)을 만들었다. 내게 없는 음반은 친구들에게 빌렸고 서로 음반을 공유하기도 했다. 

나의 취향과 마음을 은밀하게 담은 모음집을 친구나 연인에게 선물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때의 테이프 몇 개는 아직도 책장 귀퉁이에 꽂혀 있다. 따스하고 나른한 가을 오후. 햇볕이 소담하게 드는 작업실에서 포크 스타일의 곡을 쓰다가 그때처럼 나만의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따로또같이 - 조용히 들어요>

이 곡을 28년 전인 스무살, 이 노래를 듣고 싶었다.

한창 방황했었고 무언가 다른 세계를 보고 싶어 했던 때. 당시 가장 친했던 보컬 형은 술이 취하면 늘 이 노래를 불렀다.

심야 라디오에서 전곡을 틀어줬는데 듣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며 최고의 밴드라고 극찬을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음반을 구할 순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나는 형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조용히 들어요'는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초석을 다진 밴드 따로또같이의 1집 음반 수록곡이다.

전인권, 강인원, 나동민, 이주원 네 명의 멤버로 시작한 이 팀은 포크의 따스한 정서와 락의 거칠은 외향을 잘 조화시킨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동민의 수수한 목소리와 가사가 매력적인데 듣다 보면 풋풋했던 소년 시절이 떠오른다.

<Silvio Rodrigez - Unicornio>

파블로 밀라네스와 더불어 쿠바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음유시인으로 불리우는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곡 '유니콘'.

정부를 비판한 한 시인을 탄압하는 쿠바 정부에 대한 회의와 환멸이 계기가 돼 작곡한 이 곡은 유니콘에 빗대어 혁명의 순수성과 자유를 노래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위로 담담하게 낭송하듯이 흐르는 실비오의 목소리는 맑고 경건하다.

나의 푸른 유니콘을 어제 잃어버렸어요

풀을 뜯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누가 알려주면 후사하겠습니다.

꽃들은 보았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동물원 - 잊혀지는 것>

내 음악의 고향은 중학교 시절 친구집에서 들었던 '유재하'와 '동물원' 이었다.

그 친구의 방엔 암갈색 목조 책상이 있었다.그 옆 책장엔 두꺼운 백과사전과 카세트 플레이어,많은 수의 카세트 테이프가 꽂혀 있었다.

온기 가득한 그 방에서 친구는 여러 음악을 들려주었고 함께 백과사전을 읽었다.

서울로 전학 간 그 친구가 그리울 때마다 동물원과 유재하의 앨범을 들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고 아스라히 사라지는 감정에 대해 홀로 아파했다.

<Caetano Veloso - Moca>

내가 그다지도 사랑하던 그대여…

내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나 혼자서는 꾸준히 생각하리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까에따노 벨로쥬의 음반을 듣다 고등학교 시절에 외우고 다니던 이상의 <이런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Moca(모싸)는 ’소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의 목소리와 선율 속에는 성스럽고 아련한 감정들이 가득하다. 현악기와 나일론 기타 두 대의 악기가 서로 교차하며 감정을 조절한다. 카에따노 벨로쥬의 목소리는 선하고 단아하다.

<Lonnie Johnson - I Found a Dream>

10여년 전 무대에서 연주하던 도중 갑자기 재즈뮤지션으로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느꼈던 적이 있다. 머릿속이 칠흑처럼 깜깜했다. 손가락은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연주했다. 그날 이후 기타를 내려 놓았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내 음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음반을 만났다. 콘트라 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연주된 이 음반은 꼭 어렵고 복잡한 연주만이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듯 했다.

부드러운 로니의 목소리와 노래하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오블리가토, 콘트라 베이스의 두터운 저음이 어우러져 낭만적이고 포근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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