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나자 마자 소년은 강둑을 향해 달렸다. 숨을 헐떡 거리며 색소폰을 꺼내곤 쉬지 않고 연주한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오늘도 땀범벅이 된 채 소년은 중얼거린다.

"난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될거야!"



이시즈카 신이치의 작품 만화 <BLUE GIANT>는 평범했던 소년이 재즈에 대한 열망을 안고 프로 연주가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BLUE GIANT>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가게 된 재즈클럽에서 엄청난 에너지의 색소폰 소리에 감동한다. 그 이후로 다이는 재즈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다. 재즈이론도 모르고 악보도 볼 수 없었지만 매일 온 힘을 다해 색소폰을 연습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쿄로 상경하고  라이브 하우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드러머  타마다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한다. 그렇게 결성된 트리오 Jass는 전통의 재즈 클럽 <SO BLUE>의 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부투한다. 이 과정에서 재능에 대한 회의와 갈구를 비롯해 여러 감정들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곡을 쓰기 위해 또 다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하는데...



제목 Blue Giant는 밤하늘에 은은히 빛나는 파란색 별을 의미한다고 한다. 제목과 푸른 색감의 표지는 존 콜트레인의 두 앨범 <Blue Train>과 <Giant Steps>를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도 첫 장을 넘기며 나오는 마일즈 데이비스,찰리파커,빌에반스의 음반에 대해 이야기는 재즈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음악만화의 매력은 가끔 내 몸 어딘가에서 음악이 울린다는 것이다. 종이 위에서 펼쳐지는 그림과 활자로 표현되는 음악들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소리없이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야기 곳곳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은 의미심장할 수 밖에 없다. 우연히 인연이 된 강아지를 생각하며 처음 작곡한 '바넘 러브'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만화는 재즈 마니아들의 엄청난 호응에 힘입어 결국 극장판 애니로 제작돼 올 해 2월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원작에 애정을 가진 독자로서 애니화된다는 소식에 가장 궁금했던 건 음악이었다. 지면위에서만 존재했던 곡들이 어떤식으로 생명력을 얻어 재현될 것인지 걱정반 기대반의 마음이었다.

물론 이런 우려는 쉽게 깨졌다. 개봉 전 예고편에 공개된 짤막한 영상을 통해 들리는 음악은 꽤 훌륭했다. 당연했다. 음악감독이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재즈 뮤지션 우에하라 히로미 Uehara Hiromi였으니까. 불과 16세의 나이로 칙 코리아, 아마드 자말 같은 거장들과 무대에 서고 2003년 <Another Mind>를 발표하며 정교한 악곡과 엄청난 테크닉으로 전 세계를 놀래킨 재즈 피아니스트 아닌가!

그의 음악은 정통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작법을 띈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연주로 유명했다. 트리오 JASS의 연주 역시 거칠고 자유로우며 거대한 음량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것으로 묘사되니 절묘한 캐스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얼마 전 영화 O.S.T가 공개됐다는 소식에 얼른 찾아 들었다. 첫 곡은 역시나 콜트레인 작곡의 스탠다드 'Impressions'.

모달 재즈곡으로 유명한 이 곡은 2분여 정도 짧지만 단단하게 연주된다. 이어지는 'Omelet Rice'는 제목처럼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가 어우러지며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Kawakita Blues'는 드라이브 걸린 기타의 거친 프레이즈와 청명한 피아노의 인터플레이가 인상적이다.

영화와 동명의 제목을 가진 'Blue Giant'는 첼로와 피아노의 담백한 듀오버전과 색소폰이 가세된 피아노 트리오 버전의 강력한 넘버로 수록되어있다.

원작의 독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곡은 뭐니 뭐니 해도  트리오 JASS의 첫 자작곡 'First Note'다. 원작에서의 표현대로 강력한 테너 색소폰 사운드와 드럼의 난타로 시작되는 곡은 트리오 JASS의 뜨거움이 바로 느껴질 만큼 생동감이 있다.

전형적인 포스트 밥 형식의 곡으로 힘있는 도입부에 대비돼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도 한다. 역시나 후반에는 색소폰이 가세해 휘몰아 치듯 열정적인 블로잉을 들려 준다.

전체적으로 원작의 오리지널 곡들이 좋고 영화 곳곳에 쓰였을 듯한 1분여의 짧은 소품들 역시 이미지를 잘 구현한 듯하다. 재즈가 중심이 된 또 한 편의 근사한 O.S.T음반이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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