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소의 모습.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소의 모습. (사진=김재훈 기자)

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선거의 해’이다. 유럽연합을 포함한 64개 국가에서 전국 단위의 선거(national election)가 치러진다. 이들 국가의 인구수를 모두 더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에 이를 정도다. 지난 1월의 대만 총통 선거에 이어, 2월에는 파키스탄에서 총선이 실시됐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대선과 총선이 진행될 예정이다. 3월에는 전쟁 중이라 불확실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4월에는 한국을 비롯해 인도에서도 총선이 실시된다. 유럽연합에서는 6월 유럽의회 선거, 일본에서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미국에서는 11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그밖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알제리, 세네갈 등 국가에서 대선이 치러지면서 2024년은 매달 지구촌 곳곳에서 전국 단위 주요 선거가 이어지는 한해가 될 것이다.

올해 선거가 유독 주목되는 이유는 기후위기 대응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4년은 ‘기후정치’에 있어 중요한 해이다. 특히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 2023년에 이어 올해 2024년은 더 더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작년에 있었던 COP28에서 합의했던 사항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부족한 내용이긴 하지만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합의했고, 기후손실과 피해기금을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해야 하는 해이므로 각국 정부의 기후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어떠하냐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의 폭과 수준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럽의회 선거와 미국의 대선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더 주목받고 있는 선거이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고, 미국은 가장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 국가로서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시절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아마존 삼림 벌채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으로 바뀌고 1년 만에 50% 가까이 감소했다. 이 사실을 보더라도 각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과 자연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러나 최근 유럽은 경기 불안, 에너지 위기 등으로 정치 지형이 우경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2년 10월의 이탈리아 선거에서 극우 정당 출신의 총리가 취임한 데 이어 핀란드, 스위스, 독일 등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2023년 11월의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극우정당이 제1당으로 부상하였다. 

우파성향의 정당들은 대체로 기후위기 대응에 부정적인 태도와 입장을 보이고 화석연료 퇴출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올해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정치세력이 크게 부상하면, 기후위기 대응정책도 후퇴하거나 더욱 소극적인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일러스트. (사진=픽사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일러스트. (사진=픽사베이)

미국 대선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공화당의 트럼프와 현직 대통령인 민주당 바이든의 기후정책은 가장 대립되는 정책으로 부각되고 있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기후정책은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트럼프는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화석연료 사용을 확대할 것을 공언해 왔으며, 집권 이후에는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해왔던 기후정책을 철폐할 계획을 마련해 놓는 중이다. 이에 대응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LNG터미널 건설을 유보시키는 등 대선 경쟁에서 기후정책을 쟁점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브라질의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지구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열대우림이 존재하는 곳이다. 2015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삼림 벌채는 65% 감소했는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지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여론상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인도네시아의 독재자였던 수하르토의 사위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다. 그는 삼림 벌채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폄훼해 왔고, 그가 감독해 왔던 정부프로그램이 추가적인 삼림 벌채를 촉진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치러지는 2024년 총선의 경우는 어떠할까?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책을 살펴보면, ‘원자력발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제외하고는 기후정책 관련해서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발전 확대’를 크게 강조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고 있어 이전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산업계의 이해나 기업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거대 양당의 기후정책의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사업의 전개에 있어서는 양당이 공통적인 입장과 태도를 보인다. 

제주도에서 총선에 출마하려는 양당 후보들이 지금까지 내세우고 있는 내용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제2공항 건설 추진 등 제주의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정책을 내걸고 기후위기대응에 역행하거나, 친기업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제2공항 건설을 내걸었던 정당이나 후보가 일관성이라도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거대 양당의 기후위기 대응정책은 대동소이하다. 

어느 해보다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유권자들의 선택과 한 표가 중요한 시기이다.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조사가 지난 1월에 발표됐다.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시민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인식 조사가 그것이다. 조사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전국 17개 광역시·도 1000명씩, 모두 1만7000명을 대상으로 172개 문항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숭례문과 시청 사이 세종대로에서 923 기후정의행진이 열리고 있다.  (사진=923 기후정의행진 홈페이지)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숭례문과 시청 사이 세종대로에서 923 기후정의행진이 열리고 있다.  (사진=923 기후정의행진 홈페이지)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인구위기’(58.3%)에 이어 ‘기후위기’(20.0%)가 앞으로 다가올 사회적 도전 과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꼽았다. 그리고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잘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못하고 있다’(63.5%), ‘잘하고 있다’(17%)라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 3명 중 2명 정도(62.3%)는 오는 4월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관심을 둘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든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이거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의견이 각각 60.5%, 62.5%로 높게 나타났다. 정책의제로는 차량 수 규제(찬성 56.6%), 휘발유차 경유차 신규판매중단(찬성 63.8%) 등에 대해서도 높은 찬성률을 보이는 결과가 두드러졌다.

위와 같은 내용을 보면 한국의 정치에 가장 큰 영향과 결정권을 가진 양대 정당은 기후위기 대응에 소홀하거나 역행하는 정치를 펼치는 반면, 이들 정당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유권자들은 기후위기에 민감하고 관심도 크며, 여기에 대응하는 정책에 대한 찬성도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지형과 유권자들의 의식이 일치하지 않는 엇박자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쟁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앞에서 소개한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다가올 총선에서 가장 관심이 큰 분야로 경제 활성화가 87.6%를 선택했다. 그 뒤로는 복지 강화(62.4%) 정치개혁(57.1%) 외교·안보(40.3%), 기후위기대응(38.6%) 순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기후위기를 꼽지만 당장 눈앞의 총선에서는 우선 순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대응에 대해서 거대 양당이 왜 무관심하고 소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한국의 정치 지형이 보수적인 양당 독점구조로 점철돼 왔던 관계로 유권자의 선택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녹색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정당이 존재하긴 하지만, 아직 영향력이 미미하고 유권자들의 선택도 많이 받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제도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회운동의 경우 최근 활발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풀뿌리 대중 속으로 깊게 파고들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조사에서 기후정보 인지도와 기후위기 민감도, 기후 투표 성향을 평가한 ‘기후유권자’가 33.5%를 차지할 정도로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볼 때 ‘기후정치’의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정책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세력과 정당이 존재할 경우, 정치 지형의 변화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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