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에서 한태호 뱅디 자연농원 대표가 ‘제주 농업, 내일의 길을 묻다’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에서 한태호 뱅디 자연농원 대표가 ‘제주 농업, 내일의 길을 묻다’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토론회에 갔는데 거기 한 공무원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수출용 컨테이너에 양배추를 가득 실으면 얼만 줄 아냐고요. 6000만원이래요. 그런데 그 컨테이너에 양배추 대신에 반도체를 채워서 수출하면 230억원치래요. 농업은 돈이 안 된다는 거죠.”

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여섯 번째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강연은 한태호 뱅디 자연농원 대표가 ‘제주 농업, 내일의 길을 묻다’ 주제로 진행했다. 

강연에 들어서며 한 대표는 우리 사회가 농업을 이야기할 때 소위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때 농업 분야에 희망과 미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농민 수는 지난 1980년 1082만6508명으로 전체 인구의 28.9%를 차지했지만 현재 2020년 12월 기준 약 231만7000명으로 약 4.5%에 그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식량 자급률은 꾸준히 하락해 지난 2019년 기준 45.8%에 머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총생산(GNP)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20년 기준 1.8%에 불과하다. 

‘절망적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할 대안은 존재할까. 한 대표는 그 답을 찾기 위해선 지금까지 농업 전반에 씌워진 프레임을 깨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 농업 사례를 중심으로 대안에 접근해 나갔다. 

지난 3월 대파값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오르자 이를 다루는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사진=KBS1 뉴스 영상 갈무리)
지난 3월 대파값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오르자 이를 다루는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사진=KBS1 뉴스 영상 갈무리)

#“‘농업은 저임금저곡가’ 논리 벗어나야”

“대파값이 오르면 왜 ‘금파’라고 뉴스에 나옵니까. 농민이 돈 좀 더 벌면 안 되나요? 우리 사회는 단 한 번도 ‘농업은 저임금저곡가’라는 논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농업을 먹거리로만 바라보는 거죠.”

한 대표는 가장 먼저 깨야 하는 프레임으로 ‘농업=먹거리’를 꼽았다. 우리 사회는 농업을 먹고 소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모두 생산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관점에선 농민도, 농촌도, 농업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장만 존재한다. 국내산 대파가 비싸면 값싼 대파를 수입하면 된다는 논리가 통하는 사회가 된다. 

이는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등으로 수입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본격화했다. 경쟁력과 생산성 위주의 농업 정책을 공고히 했다. 마트에선 1500원짜리 국내 농산물과 1000원짜리 수입 농산물이 함께 진열대에 올라 소비자의 선택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선 농촌은 그저 도시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지에 지나지 않는다. 농촌이 고령화가 되든, 학교가 없어지든, 병원이 없든,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농촌과 도시가 철저히 구분됐기 때문이다. 교통이 발달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둘을 연결하는 관계는 무너졌다.  

#제주에서만 귀농 인구 늘어난 이유는?

농촌을 생산 수단으로만 바라보게 되니 전국의 농촌 인구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돈이 안 되는 농업’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농촌 인구 수가 늘어난 곳이 있었다. 바로 제주도. 저비용항공이 취항하면서 제주로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귀농 열풍이 시작됐다. 

육지부 농촌 지역은 인구 소멸 상황까지 생길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상반된 현상이었다. 제주지역 귀농 지원 정책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월등히 나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제주 농촌으로 왔을까. 

한 대표는 그 배경을 “제주를 수익 모델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농촌 지역에선 육지부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있다. 돌담과 바다 그리고 오름. 이 자연 자원이 곧 경쟁력이었다. 공동체 구성원이 되기 위해 농촌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사업성을 따져 귀농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농촌의 자연 자원을 사적으로 소유화해서 상품화하고 있어요. 월정리가 대표적인 경우죠. 거기 가면 원래 살던 농민들이 트랙터로 다니질 못해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니까 불법 주정차하는 차들이 길을 막고 있잖아요. 정착민과 농민의 갈등이 이런 데서 다 나오는 거예요.”

농촌 공동체가 지금까지 지켜온 자연 자원을 한순간에 개발로 훼손하고 사유화하는 것도 같은 인식에서 비롯했다. 자연 자원은 지켜야 할 자산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벌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한 대표는 이러한 문제점은 정착민만의 잘못이 아닌 생산성 위주의 농업정책에서 비롯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월정리 해변에 즐비한 상업시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월정리 해변에 즐비한 상업시설. (사진=제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제주 귀농인, 역이주 선택하다

실제로 제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온 귀농민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 대표는 2015년이 분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주민이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기 위해선 땅이 필요하다. 땅이 없는 농민은 대출을 받아 땅을 사야 한다. 2015년 즈음부터 농지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원금은커녕 대출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자 버티지 못한 귀농인들은 다시 '역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농촌에서 한 가구가 먹고 살려면 최소한 3000만원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보통 농지가 3000평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농지를 대출 받아서 산다고 하면 지금 평당 농지 가격이 30만원이니까 9억원을 빌려야 해요. 계산을 해보면 매년 이자만 2700만원을 내야하는 거죠.”

한 대표에 따르면 제주지역 농지 가격은 한 평당 6~7만원 선에서 2015년이 지나면서 10만원을 넘어섰고 지금은 30만원 수준이다. 9억원을 대출 받아 농지 3000평을 산 농민은 매년 2700만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밭작물 농가 소득이 연간 평당 1만원이라고 하면 이 농민에게 남는 소득은 300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원금 거치 기간이 끝나 이자와 함께 원금까지 상환해야 하는 때가 오면 이 농민은 농업 소득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우리나라 농촌이 처한 현실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지만 지속가능한 농촌이나 농사와 관련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한 대표는 “농과대학교에서 매년 나오는 박사 논문 주제를 살펴보면 농사나 농업 경영 부문은 없고 가공이나 유통 부문이 대부분”이라며 “학계에서 조차 65세 이상 고령자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촌을 디자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지금 현실에서 전망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시로부터 가치 소비 이끌어내야”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재고가 존재할 수 없다. 완전히 소비되지 않으면 썩는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농산물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소비를 이루기 위해선 농산물에, 농업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친환경이라는 점을 앞세워 국내산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유기농 농산물 시장이 가장 잘 발달됐다고 하는 독일에서도 (유기농 농산물 소비는)전체의 20%밖에 안 된다”며 “친환경이냐 유기농이냐로 도시 소비자를 설득하는 건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업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관계, 공존의 가치라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끊어진 도시와 농촌 간 사회적 관계가 이어지면 도시의 소비자들의 가치 소비(자신이 부여한 가치를 우선으로 소비하는 성향)로 이어진다. 

농촌을 값싸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시장의 논리가 아닌 생태적이며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소비자들이 1000원짜리 수입산 농산물이 아닌 1500원짜리 국내 농산물을 고르며 ‘생태적인 가치와 방식을 지키려는 농민을 위해 이걸 사야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농업의 문제는 농민이 풀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생태의 가치, 공존의 가치에서 농업을 새롭게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전백패해요. 제주지역 농업에서 제주의 미래를 물을 수 있어야 해요.”

지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한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사진=문화방송 영상 갈무리)
지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한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사진=문화방송 영상 갈무리)

#'농맹', 도시와 농촌 간 관계가 끊어지다

“예전엔 일요일 오전만 되면 드라마 전원일기를 방송했어요. 그 드라마를 보고 우리 농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죠. 그런데 22년에 걸쳐 방영된 최장수 방송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리즈가 끝이 나고 그 이후에 농촌 모습 볼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6시 내고향’이 유일합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주말 안방극장에선 우리네 농촌 모습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거기엔 점방을 운영하는 아주머니, 4대가 함께 사는 가족, 이웃 간 불화가 생기더라도 금세 찐감자를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누는 공동체 모습, 농촌 미혼 남성의 결혼 문제, 대출을 갚기 위해 막노동 일과 붕어빵 장사를 하는 가구, 농촌 도박 문제 등 농촌 그 자체로서의 문제점을 현실감 있게 다뤄 호응을 얻었다.

이런 방송 프로그램은 도시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점에선 도시와 농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이주결혼여성의 정착 문제, 농촌 도박 문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유출 문제 등 어두운 점도 보여줘 농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데 기여했다. 도시와 농촌 간 관계가 이어져 있어 연결된 사회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심어줬다. 

반면 지금은 ‘농맹(農盲)’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농촌과 농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도시와 농촌 간 관계를 끊어놓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지금 도시민들에게 농촌은 그저 우리집 앞마트에서 내 선택을 기다리기 위해 가격표를 붙이고 보기 좋게 소분된 상품에 불과하다. 진열대 너머로 '복길이'와 '영남이'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은 노고는 보이지 않고, 이장님 댁에 함께 사는 4대 가족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하며 한 지붕 밑에 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양촌리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 구성원인 '노마 아빠'를 돕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다니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농맹을 깨치지 못하면 도시는 농촌을 이해할 수 없다. 도시 사람들이 농산물을 먹으면서도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을 소비와 나를 중심으로만 보게 된다. 농민과 농촌, 농업은 사라진다. 

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에서 한태호 뱅디 자연농원 대표가  ‘제주 농업, 내일의 길을 묻다’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에서 한태호 뱅디 자연농원 대표가 ‘제주 농업, 내일의 길을 묻다’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농민 유입하려면 농지·마을 융합 문제 개선 필요” 

농촌으로 농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귀농인에 대한 지원 정책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 대표는 대표적으로 농지 문제와 마을 공동체와의 융합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로 지가 상승으로 인한 과도한 대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도유지를 임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경관보전지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하게 돼 있는데 이 지역 일부를 귀농인에게 우선적으로 일정 기간 농지로 배정해주면 된다”며 “귀농인이 최소 3년이라도 먹고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읍면지역의 빈집을 귀농인의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현재 제주도는 빈집을 사들여서 청년주택 같은 임대사업 위주로 하고 있는데 읍면별로 ‘귀농의 집’ 같은 장소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마을과 협약해 마을 노인회장이나 이장이 강사로 나서 마을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마을과 융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귀농인을 인큐베이팅하는 장소로 쓰인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촌은 돌봄과 교육, 의료 등의 문제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시처럼 세분화된 행정 지원 기구는 농촌에 부적합하다. 한 대표는 “우리나라 농업 관련 정책 사업은 필요 이상으로 쪼개져 있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업인에게 한 번에 지원금을 지급해서 각자에게 맞게 쓸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재 사는 데 얼마, 비료 사는 데 얼마 이렇게 쪼개서 지원하다 보니 농민들이 서류 내다가 지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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