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8기는 임기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고 도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 선거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기관통합형' 모델을 제시해 지금까지의 논의를 원점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투데이>는 강봉수 논설위원이 제기한 '3개의 기초자치단체와 교육권역을 제안한다'를 필두로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둘러싼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정치권이 제안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시민과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하승수 변호사 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 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오영훈 도지사는 6.1 지방선거 당시 새로운 형태의 기초지방자치단체 모델을 확정해서 2024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2026년부터 새로운 기초지방자치를 시행하는 일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행정체제 개편 위원회도 출범을 했다.

우선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발하면서 기초지방자치가 사라진 제주에서 꼭 필요한 논의가 시작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단일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자치권도 없는 2개의 행정시로 이뤄진 기묘한 체제는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이런 모델은 전세계 지방자치를 보더라도 찾아보기 어려운 모델이다.

그러나 기초지방자치 부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과 2017년에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꾸려져서 논의를 했지만, 성과없이 끝났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논의내용도, 절차도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도 돌아봐야 하고, 외국의 사례도 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민사회의 공감대를 높여야 한다.


논의의 제목 


논의의 제목부터 ‘행정체제 개편’이 아니라 ‘기초지방자치 부활’로 잡아야 한다. 논의의 제목이 제대로 잡혀야 논의의 방향도 제대로 잡힐 수 있다.

지금 논의의 핵심은 ‘자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 지방행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차원의 논의가 아닌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본부장 임기범)와 제주주민자치연대(대표 박외순)은 20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대회의장에서 '제주기초자치단체 부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성인 대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본부장 임기범)와 제주주민자치연대(대표 박외순)은 20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대회의장에서 '제주기초자치단체 부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성인 대표)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발하면서 기초지방자치가 폐지된 배경에는, 육지부에서도 자치계층을 단층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도는 좌절된 지 오래다. 자치계층 단층화라는 중앙집권적인 발상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제주도민들만 기초지방자치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셈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원리상, 가까운 정부가 있어야 주민들의 의견도 반영되기 쉽고 주민들의 참여도 용이하다. 그래서 기초지방자치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초지방자치가 폐지되면서 주민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가 어려워졌다. 행정시에 권한이 없다보니 무슨 문제만 생기면, 도청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다. 제주도 내에서도 지역마다 상황이 다른데, 지역 상황에 맞는 지역비전을 수립하고 실행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지금 이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제목부터 ‘기초지방자치 부활’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논의의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기초지방자치 부활의 기본방향 


기초지방자치를 부활하고자 할 때, 단순한 2006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 아니라고 본다. 부활을 한다면, 육지부에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새로운 방안이어야 한다.

그것은 기초지방자치를 ‘시-읍-면 자치’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시는 구 제주시(2006년 이전)와 구 서귀포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읍·면은 현재의 읍·면단위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당한 것이고,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당한 것이다.


제주의 지방자치 역사 


‘시-읍-면 자치’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지방자치가 중단되기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제도였다.

시간을 1960년으로 되돌려보자. 1960년 제주도에서는 최초의 도지사 선거와 함께 도의회 선거,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기초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졌다(그 전까지 제주도지사는 임명직이었는데, 1960년에 최초로 민선 도지사 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등은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 및 지방자치부활 30주년을 맞아 10일 오후 2시 제주 시리우스호텔에서 진행된 ‘자치분권 2.0시대 어떻게 맞을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등은 문재인 정부 출범 4주년 및 지방자치부활 30주년을 맞아 2021년 6월 10일 오후 2시 제주 시리우스호텔에서 진행된 ‘자치분권 2.0시대 어떻게 맞을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그리고 당시에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은 시·읍·면장이었고, 기초지방의회는 시의회, 읍의회, 면의회였다. 그때까지 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시·읍·면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도시지역은 시가 지방자치단체이고, 농촌지역은 읍·면이 지방자치단체였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적절한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시·정·촌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고 있는데, 이 때 정(町)·촌(村)은 우리의 읍·면 정도 규모로 보면 된다. 독일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나 스위스의 코뮌도 농촌지역에서는 우리의 읍·면 정도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농촌지역에서는 주민참여를 제대로 보장하면서 지역특성에 맞는 지방자치를 할 수 있는 규모가 읍·면정도이기도 하다. 1949년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시행될 때부터 대한민국 농촌지역에서 읍·면 자치를 하고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제주주민자치발전포럼은 13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읍면동장 직선제를 19대 대선 정책으로 요구했다.@제주투데이
제주주민자치발전포럼은 2017년 4월 13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읍면동장 직선제를 19대 대선 정책으로 요구했다.@제주투데이

1960년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에서는 총 14명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됐다. 제주시장, 한림읍장, 대정읍장, 서귀읍장, 애월면장, 한경면장, 구좌면장, 조천면장, 추자면장, 안덕면장, 중문면장, 남원면장, 표선면장, 성산면장을 뽑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의원, 읍의원, 면의원도 선출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 이후에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기구였지만, 법률을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법률이었다. 1961년 10월 시행된 이 법률에서는 읍·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군(郡)을 지방자치단체로 했다. 이후 지방자치 자체도 중단시켰다.

자치권을 박탈당한 읍·면들은 제주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아래의 하부행정조직이 되었다. 서귀읍과 중문면이 서귀포시로 되면서 2시(제주시, 서귀포시) 2군(북제주군, 남제주군) 체제가 되었던 것이다.

민주화와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도 읍·면자치권은 박탈된 상태였다. 중앙집권적인 관료집단과 정치세력들이 이런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자치권을 상실한 읍·면은 지역 특성에 맞는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어려워졌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구가 도시지역으로 집중되면서, 도시지역의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전국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초지방자치 부활은 시·읍·면 자치로 


제주도와 흔히 비교되는 오키나와만 하더라도 오키나와현이라는 광역지방자치단체 내에 41개 시·정·촌이 있다(11개시, 30개 정ㆍ촌). 제주특별자치도가 당초에 모델로 삼았던 포르투갈의 마데이라의 경우에도 수십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감탄을 하는 스위스같은 나라는 농촌지역에는 인구 1000명이 안 되는 코뮌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폭넓은 자치권을 누리면서 농촌지역을 잘 가꾸며 지키고 있다. 이런 탄탄한 풀뿌리자치가 오늘의 스위스를 만든 것이다.

독일에서 에너지전환을 이끌고 있는 ‘쇠나우’라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역시 인구 4000명 규모이다. 우리로 치면, 면단위에서 독일의 에너지전환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쇠나우는 주민투표를 통해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만 사용하는 방향을 결정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2017년 7월 27일 제주주민자치포럼(상임대표 김상훈, 이정엽)은 오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읍면동 단위의 법인격과 자치권 부여, 기초자치 부활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제투투데이 DB)
2017년 7월 27일 제주주민자치포럼(상임대표 김상훈, 이정엽)은 오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읍면동 단위의 법인격과 자치권 부여, 기초자치 부활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제투투데이 DB)

또한 농촌지역이 환경적으로 보존되고 삶의 질이 높으면, 인근 도시지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굳이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서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주도의 경우에는 각 읍·면의 인구가 육지부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육지부의 경우에는 2000명대가 무너졌거나 무너질 위기에 있는 면들이 수두룩한 상황이다. 반면에 제주의 경우에는 인구가 2만명이 넘는 읍들이 있는 상황이다. 육지부에서는 인구가 3만명이 안 되는 군(郡)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니, 제주의 몇몇 읍은 육지부의 군 수준에 육박하는 인구규모인 셈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1961년 이전에 존재했던 시·읍·면 체제로 가는 것이 외국의 사례들에 비추어볼 때 보편적인 모델이고, 역사적인 정당성도 존재한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훼손됐던 지방자치제도를 복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참여를 확대하기에도 쉽고, 집중이 아닌 분산에도 유리한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제주시의 동(洞)지역은 제주시로, 서귀포시의 동지역은 서귀포시로 하고, 현재 행정시 아래에 있는 읍·면들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면 된다. 그렇게 할 경우에 제주특별자치도는 2시(제주시, 서귀포시), 12개 읍·면(한경면, 한림읍, 애월읍, 조천읍, 구좌읍, 추자면, 우도면, 대정읍, 안덕면, 남원읍, 표선면, 성산읍)이라는 14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있는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된다.

제주시 전경(사진=김관모 기자)
제주시 전경(사진=제주투데이DB)

한편 동(洞)지역은 그 자체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주민자치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동장선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61년 이전의 지방자치법에서는 동장도 직선으로 뽑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동단위의 자치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시·읍·면 자치모델이 중앙을 설득하는데 불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지방자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읍·면 자치권 부활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하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도 읍·면 자치권 부활이 필요하기도 해서다. 그런 점에서 특별자치를 하는 제주도가 지역 특성에 맞춘 기초지방자치를 하기 위해 읍·면 자치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절차에 대하여


일각에서 거론되는, 제주도를 5~6개 정도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누는 방안은 논리적, 역사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지도에 선 긋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문화, 제주의 특성에 기반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되어야 한다.

물론 본인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진단도 필요하고, 여러 대안들을 놓고 장.단점을 토론하는 것도 필요하다.

흔히 기초자치단체 부활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중앙을 설득할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은 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을수록 중앙정부에 대한 설득력과 협상력이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낮다면 중앙과 협상 과정에서 ‘도민들도 의견이 갈라지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도민들 사이의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도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숙의민주주의 방식’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벤트 형식이 아니라 최소한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모여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토론을 하고, 모든 도민들이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기본조례’도 제정되어 있다. 이런 조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 통해서 기초자치단체 부활방안이 정리되고 좁혀지면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도 용이할 것이다.


관련된 문제


한편 부활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권력구조를 기존의 기관대립형으로 할 것이냐, 기관통합형으로 할 것인지의 논의도 있다.

이것 역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몇가지 권력구조 모델을 제시하고 그 중에 주민들이 주민투표로 선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함께미래로준비위원회(오영훈 제주도지사 당선인 인수위원회) 소위원회 도민정부위원회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미래로 도민공감 정책 아카데미를 6월 15일 오후 2시 웰컴센터에서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다함께미래로준비위원회(오영훈 제주도지사 당선인 인수위원회) 소위원회 도민정부위원회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미래로 도민공감 정책 아카데미를 6월 15일 오후 2시 웰컴센터에서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한편 읍·면 자치를 하게 되면 지역유지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 문제는 사실 선거제도의 문제이다. 지역구 소선거구제로 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하면 이런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경쟁하고 정당(지역정당 포함)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선거를 하면, 지역의 유지 내지 토호들의 영향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의 비전과 정책을 놓고 정치세력간에 활발한 토론과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의 경우에는 특별자치도이기 때문에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숫자, 구역, 권력구조, 선거제도 모두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을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민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도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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