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앞두고 '논의 원점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도입은 선거철마다 나온 '단골 공약'이다. 차이가 있다면 민선5·6·7기에서는 '행정체제 개편' 차원에서 "도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논의했다면 민선8기 오영훈 도정은 법인격의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전제로 임기 말까지 추진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오 도정은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고 도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 선거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오영훈 지사가 '제주형'을 강조하며 의회 기능과 집행부 기능을 통합한 '기관통합형' 모델과, 5~6개 행정구역 구획안을 언급해 '가이드라인 제시' 논란이 나오면서부터 논의가 후퇴하는 양상이다.
앞서 제주도의회는 추경 심사 시 도가 사업비 15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용역을 두고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제주도는 당초 계획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공론화 추진' 용역을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을 위한 공론화 추진'이란 이름으로 바꿔 진행하고 있다.
도가 결론을 정해놓고 기초자치단체 도입 관련 용역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제주도가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빼고 한발짝 물러선 것.
최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열린 '제주 기초자치단체 부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제주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상범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지난 20일 열린 토론회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여부 자체에 대한 논의까지 열어두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기초자치단체 부활'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 '현행체제 유지'란 선택지를 제시하던 과거 논의 방식으로 오영훈 도정이 제시한 공약의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
지난 16년간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주장하던 측은 이번에 추진하는 용역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확정하고, 도민 공론화를 본격화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과업지시서의 핵심은 기초자치단체도입을 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제주도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초자치단체 모형을 도민과 함께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임기범 전국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장은 26일 제주투데이 통화에서 논의 원점화를 우려하며 "이번 용역은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전제로 도민 의견을 논의 과정에서 수렴할 수 있도록 과업지시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오영훈 도정이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지난 16년간 이뤄졌다는 전제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정책과제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조상범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논의를 원점화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용역이 법인격의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전제로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상범 국장은 "해당 용역을 통해 기관 구성 모형 대안과 행정 구역 개편 '대안'까지 제시하지는 않고 단층제 변화 이후 특별자치도에 대한 성과 분석과 지방자치단체 계층과 구역을 분석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의회 제동으로 당초 약속한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제주도가 소극적인 자세로 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도의회 관계자는 "행정이 철학이 부재하니까 흔들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강철남 위원장은 오영훈 지사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가이드라인 용역'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한 것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도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추진에 속도를 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강철남 위원장은 "행정이 뚜렷한 철학을 갖고 추진한다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철학이 부재하니까 중심을 못잡는 것"이라면서 "오영훈 도정의 1호 공약인 만큼 도지사가 직을 건다는 마음으로 강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에 강봉수 제주대 교수는 이 모든 논의가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기초자치단체 모형의 장단점을 용역을 통해 분석할 때 "중앙정부 설득 여부까지 평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봉수 교수는 "그 결과를 토대로 제주에 맞는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실상 15억원을 들여 이번 용역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면서 무엇보다 "도지사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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