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8기는 임기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고 도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 선거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기관통합형' 모델을 제시해 지금까지의 논의를 원점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투데이>는 강봉수 논설위원이 제기한 '3개의 기초자치단체와 교육권역을 제안한다'를 필두로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둘러싼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정치권이 제안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시민과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안재홍 애월교육협동조합이음 이사장
안재홍 애월교육협동조합이음 이사장

오영훈 도정의 양 행정시장과 정무부지사 등 정무라인의 고위직 인선이 선거 공신으로 채워지면서 보은성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후에 이뤄질 제주도 산하기관 단체장 인선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언론에서는 이제 선거를 매개로 일자리를 챙기는 일이 고착화되었다 평가하기도 한다.

원희룡 도정부터 오영훈 도정까지 선거 공신 채용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선거캠프에 헌신하는 이들이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믿는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시장에 뛰어든 이들은 일종의 도박에 뛰어든 것이기에 베팅에 성공해 성공보수를 바라는 일을 탓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선거 공신 채용 논란은 현행 선거체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선거체계와 별개로 현행 행정시장 임명제도와 행정시의 경계 구분을 두고 오영훈 도정은 손을 보겠다고 공언했다. 풀뿌리 자치 확대와 제왕적 도지사의 권한 분산을 명분으로 행정체제 개편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런 도정의 방침은 대의에서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특별법이 통과된 강원도의 경우 무려 18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거느리고 있지만, 제주도는 하나도 없다.

강원도의 18개 시군 중 태백시, 고성군, 인제군, 양양군 등 무려 11개는 인구 2만-4만 규모의 지방정부다.

제주도의 경우에도 애월군, 한림군, 조천군, 대정군과 같이 지역의 고유성을 살린 자치정부를 만든다면 12~14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거느린 광역자치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 행정체제를 개편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공약에 대해 도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다. 이러한 도민사회의 냉소적 반응은 지금까지 보여온 지방정치의 행태 때문일 것이다.

우선 도민들은 선거 공신들끼리 자리 나눠 먹는 선거가 늘어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결국 행정체제 개편은 3선 이상을 한 도의원들의 자리 만들기 이상이 아닐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초의회를 부활시킬 것인지, 행정시 숫자는 몇 개가 적당할 것인지, 기초자치단체를 내각제로 할 것인지 등은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추첨제 의회 구성'을 소개해 달라는 원고를 부탁받으며 글 쓰는 것을 망설인 이유이기도 하다.

추첨제 의회는 보은할 이유가 없으니 괜찮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엔 행정체제 개편이 도민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다. 그러니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동력은 원고를 부탁한 기자분의 성실함에 어떻게든 응답해야 한다는 인간적 도리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행정체제 '개편방안'보다 행정체제개편 '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고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도민사회 냉소를 해소할 수 있고 도민사회가 시끌벅적할 수 있게 논의하기 위한 하나의 제언이다.


기초도입 논의 과정으로 '추첨제 시민의회' 제안


논의의 방식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의 하나로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시민의회는 선출직 의회가 손대지 못하는 사안들의 안건제시 수단으로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시민의회가 만든 기후 헌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도 그렇지만 헌법 개정은 국민적 총의를 모의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당들은 정파적 입장을 가지기 때문에 단일한 헌법 개정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 개헌논의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지만 실행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프랑스에서는 시민의회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럼 시민의회는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시민의회를 주창해온 이지문 선생은 시민의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시민의회의 3대 요소는 바로 구성은 추첨, 작동은 숙의, 그리고 기능은 일정 권한 부여이다. 추첨으로 구성하고 일정 기간 숙의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내린 결정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국민이나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거나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찬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진정한 ‘시민의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회 구성은 어떻게? 


예를 들면 만일 100명으로 된 시민의회를 구성한다면 나이 성별 지역별 특성 등을 고려하여 랜덤하게 선발하게 된다.

시민의원으로 추첨 된 이들 중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이들을 제외하고 동의하는 이들로 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활동 기간은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 정도로 넉넉하게 보장하는 것이 좋다.

활동한 날들에는 행정에서 활동비를 지급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할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직장에서는 이들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기간 시민의회는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다양한 안들을 검토하고 학습하고 논의하게 된다.

시민의회 활동은 선출직 의회처럼 도민사회에 늘 공개된다. 이들이 보수적인 사람으로 구성될지 진보적인 사람들로 구성될지는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랜덤하게 구성하게 되므로 가장 보통의 사람들로 구성될 것이다. 이렇게 시민의회에서 마련된 안을 도민들에게 설명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이 안의 채택 여부를 최종결정하게 된다.


시민의회 강점은 '숙의 민주주의'


시민의회의 가장 큰 강점은 여론조사와 비교할 때 참여자 선발방식은 유사하지만, 사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대변한다고 인식하지만, 여론조사는 여론을 호도하기 좋은 조사방식이다.

시민의회는 그야말로 제대로 알고 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시민의원들은 정치적 빚을 지지 않았고 로비에서 비교적 자유롭기에 가장 합리적인 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행정체제개편은 합리적인 대안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관건이다.

몇 명의 전문가나 형식적인 위원회가 아니라 과정 전체를 도민들에게 맡겨보자.

조금 느리고 힘들어 보이더라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합의해 추첨제 시민의회를 통해 안을 마련해 본다면 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적의 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오영훈 도정이 약속한 권한을 도민에게 돌려주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과정이 정의로워야 결과에 수긍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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