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전 오른쪽 어깨에 갑자기 통증이 일었다.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 으레 겪는 직업병이 있다. 그중 하나인가 했는데 왠걸 일명 ’오십견’이라 불리우는 유착성 관절낭염이었다.  정말이지 딱 50살이 되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녀석이 찾아온 거다. 생활하기엔 그리 불편하진 않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조금만 뒤척여도 통증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자는 게 오랜 습관인데 녀석이 찾아온 후론 신경이 예민해졌나 보다. 선율이나 리듬이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잠에서 깨버리기 일쑤였다.  어쩔 수 없이 평소 듣던 음악 말고 다른 종류의 수면유도용 음악들을 찾아봤다.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에는 엄청난 양의 수면용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그 중 몇 개를 선택해 틀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플레이리스트들은 곡마다 볼륨이 일정치가 않아 놀라서 깨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날은 너무 형편없는 기타 연주곡들이 나왔고 그래서인지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렇게 고통스런 밤들을 보내던 와중에 불현듯 막스 리히처Max Richter의 음반 하나가 떠올랐다. 2015년에 나온 < Sleep> 음반 말이다.

이 음반은 현대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이라 불린다. 여러 수면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을 위한 음악이 담겨져 있었다.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도 당시 불면증을 앓고 있던 카이저 링크 백작의 수면을 돕기위한 자장가였다.)    

 "Sleep은 열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한 저의 개인적인 자장가 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잠의 과정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막스 리히처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결합한 엠비언스 사운드로 유명한 그가 <Sleep> 앨범에서는 조금은 색다른 시도를 한다. 미니멀하게 반복되는 경구는 여전한데 고음역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듯한 음향이 인상적이다. 

막스 리히처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과 함께  뇌와 수면 사이클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잠의 메커니즘과 음악의 상호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는 잠들어서 깨기까지의 평균 수면시간에 맞추어 무려 8시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앨범 <Sleep>을 발매한 것이다.(잠들기 전 감상용 음반인 <From Sleep>이 따로 발매되기도 했다.)

2015년 영국 런던의 박물관 웰컴 컬렉션에서 여덟 시간동안 쉬지 않고 녹음되었다. 그리하여 단일 작품중에서는 가장 긴 길이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듬해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가졌다. 150여명의 관객들이 의자가 아닌 침대에 누워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긴 시간을 감상했다고 한다.    

앨범은 꿈Dream, 오솔길Path, 우주Space 세 가지 주제로 각기 연결되어 있다. 주요테마는 Dream이 맡고 나머지 주제인 Path와 Space는 환기와 집중을 통해 상호보완한다. 곡이 시작되면 중저음의 피아노가 신비로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차가운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감싸안는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미니멀한 선율사이로 엠비언스 사운드가 거대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Path’에선 청초한 여성의 구음이 거대한 전자음악 사운드와 함께 펼쳐지는데 꿈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 몽롱하고 아련하다.

그럼 나는 이 음반을 들으면서 잠을 잘 자게 되었을까? 굳이 답하자면 ‘그렇다’이다. 통증 때문에 몇 차례 깰 수 밖에 없었지만 음악이 주는 광활한 세계를 경험하다 보면 어느덧 잠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쉬이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번 쯤 이 음반을 들어보기 바란다. 한 작곡가의 사려깊은 음악이 지친 당신을 다독거려 줄 것임이 분명하니까.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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