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가사를 쓰냐는 기자의 질문에 밴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가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중요한건 멜로디죠. 멋진 멜로디만 있다면 어떤 가사를 붙여도 다 어울리니까!”

그렇다. 멜로디의 힘은 강하다. 우리는 가사가 없는 연주 음악들을 때 혹은 낯선 언어의  노래를 들을 때 화성과 멜로디만으로도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본질이고 힘인 듯하다. 하지만 가끔은 멜로디를 잊게 만드는 노랫말들이 있다. 일테면 글만으로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그런 곡들 말이다.

낯선 언어는 불투명한 의미로 인해  폭넓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모국어는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로 명확한 감정을 전한다.

잘리운 가로수는 말을 하였고

무너진 돌담도 말을 하였고

빼앗긴 시인도 말을 했으나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잃어 듣지 못했네

- 잃어버린 말 [김민기]

많은 대중가요(Pop Music)속 노랫말처럼 재즈 스탠다드 역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Stella by Starlight’은 별처럼 빛나는 스텔라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이고 ‘Smoke get in Your Eyes’는 연인의 눈에 어리는 애수에 대해 노래한다. 아름다운 기악 연주에 서정적인 가사가 더해지자 재즈는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서양의 음악이 일본을 통해 실시간으로 우리나라로 전해졌던 1930년대 말, 미국 본토에서 유행하던 스윙음악이  경성의 “모던보이”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1937년 발표된 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은 바로 2년 후인 1939년에 우리말 가사를 입혀  녹음되기도 했다. ‘청춘삘딩' '선술집 풍경’같은 만요풍의 노래 역시  재즈리듬위에 한글가사가 잘 녹아들어있다.

술 한잔 내되 찹쌀 막걸리로 내고

추어탕 선지국 뼈다귀국 기타

있는대로 다 뜨렸다

- 선술집 풍경 [김해송]

이런 토속적인 단어와 독특한 의성어가 질펀하게 뒤섞인 가사들로 인해 재즈는 ‘(서)양풍의 음악’이라 불리 우며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1940년대가 되자 일제는 적군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재즈 관련 방송과 녹음을 금지시켰다. 순식간에 재즈는 사라져버렸다.

그 후, 1978년 재즈전문 클럽 “올댓재즈”와 “야누스”가 문을 열게 된다. 류복성이 라틴 재즈 음반 [혼자 걷는 명동길]을 발표했고 클럽 “야누스”에서 정기적으로 재즈발표회를 열었다. 아쉽게도 일반대중들은 정통재즈 연주를 어려워했고 영어로 부르는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즐기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초, "퓨전재즈"를 표방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GRP레이블의 영향을 받은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빛과소금>등이 그들이다. 정통재즈는 아니었지만  재지한 하모니와 멜로디는 기존의 가요와는 달랐다. 연주곡 사이사이에 젊은 감성이 느껴지는 노래를 넣었고 ‘샴푸의 요정’ ‘춘천가는 기차’등이 꾸준히 라디오 전파를 탔다.

일명 '재즈풍의 가요’라 불리워진 이런 음악의 중심엔 싱어송라이터 김현철과 고찬용이 있었다.

김현철이 1992년에 발표한 2집 [ 32℃의 여름]은 시티팝 스타일의 음반이지만 (당시엔 퓨전재즈라 불리웠다) 수록곡 ‘연습실에서’는 상당히 정통 재즈적인 느낌이다. 세련된 솔로 피아노 인트로와 함께 크루너 보컬을 닮은 김현철의 목소리는 기존의 가요 발라드와는 결이 다른 음악이었다.

난 또 피아노앞에 앉아 하루를 노래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 연습실에서 [김현철]

이라는 쓸쓸한 가사는 블루톤의 색소폰 연주와 맞물려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케니 버렐과 쳇 베이커의 듀오 곡 ‘You’re Mine, You!”를 떠올리게 하는 ‘동야동조(冬夜冬朝) 1996’도 빼어나다.

그대는

겨울날 기나긴 밤이어라

나는 얘기이고

내 몸에 꽃 피워 그대의 지루함 달래 주고파라

-동야동조 [김현철]

스산한 겨울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 일품이다. 바싹 마른 톤의 할로바디 기타가 담백하게 어우러지며 고즈넉하게 울려퍼지는 트럼펫 솔로는 한겨울의 애상을 그대로 전해준다.

한편 <유재하 가요제>에서 ‘거리풍경’이라는 스윙풍의 곡으로 대상을 차지한 고찬용은 <맨하탄 트랜스퍼>류의 보컬재즈 앙상블 [낯선 사람들]을 결성한다.

구름 사이로 피곤한 해가

눈치를 보다 거세게 한숨쉬며

졸린지 하품하며 짜증을 내네

- 해의 고민 <낯선 사람들>

다소 동요적인 가사는 어쿠스틱 기타의 빠른 워킹베이스와  혼성보컬의 멋진 하모니에 실려 재즈의 흥겨움을 느끼게  한다.

이 앨범에서 독보적인 음색을 들려 준 이소라는 이후 솔로로 독립하게 되는데,

그녀의 1집 음반의 프로듀서를 김현철이 맡게 된다.. 이 앨범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재즈풍의 가요를 시도한다. 타이틀 곡 ‘난 행복해’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음반은 밀리언셀러가 되고 재즈Jazz라는 말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이 음반에 첫 곡으로 수록된 김현철 작곡의 ‘고백’은 고급스런 재즈 화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따스한 현악 스트링과 두툼한 톤의 워킹 베이스가 시작되면 주변은 물안개가 끼는 듯 서서히 뿌옇게 변한다.

이 노래가 들리나요 내 마음을 느끼나요

이젠 그대 마음도 떨리는 내 목소리 같아

그녀는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커피향 같은 진한 목소리에 담아 담담히 부른다.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1절의 노래가 끝나면 담담한 남성의 목소리가 낮은 목소리로 읊듯이 노래한다.

"나도 그대가 그립지만 말로 할 수 없군요

그건 말할 순 없지만 내 마음은 온통 그대예요..."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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