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도순 본향 당밧할망당은 옥황상제 셋째 딸을 모시고 있다. (사진=여연)
도순 본향 당밧할망당은 옥황상제 셋째 딸을 모시고 있다. (사진=여연)

제석천황 승려관음 승려선생 여래화주님은 나주영산 금성산에서 솟아났다. 굴송낙(고깔) 둘러쓰고 장삼자락 휘두르며 한라영산에 유람을 왔다가 오백장군 영실에 다다랐다. 바위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만민자손 단골들의 인심이 좋을 듯하였다. 

아래로 내려와 볼래오름에 가니 마침 유람 나온 신전이 있었다. 신전님이 화주님께 인사를 올리며 물었다.

“화주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만민자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신전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산중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신전님과 이별하고 화주님이 아래로 내려와 광대코지(도순리의 지명)로 가 좌정을 했지만 누구 하나 신으로 대접하는 이가 없었다.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제산이오름으로 내려갔으나 역시나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찌하여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단 말이냐?”

다시 길을 떠나 정동모들로 내서서보니, 때 아닌 전쟁으로 아수라장이었다. 동쪽으로 일천 군사, 서쪽으로 백만 군사가 들이닥쳐 백성들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어허, 이대로 놔두면 우리 백성들이 남아나지 않겠구나. 내가 지켜줘야겠다.”

화주님은 한 손으로 천하를 떠받치고 또 한손으로 지하를 내리누르며 소나기 퍼붓듯 활을 쏘아 군사들을 몰아내었다. 

백성들이 구사일생 목숨을 지키게 되었으니, 화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떡을 해서 청감주와 같이 대접했다. 

“하원과 도순은 물도 좋고 인심도 좋습니다. 저희 단골들의 정성을 받으십서.”

화주님이 백성들에게 일렀다.

“나를 찾아올 때는 소주를 가져오지 말라. 머리 갖춘 바닷고기도 제단 아래로 내려놓아라. 심방을 불러다가 뿌리궁(본향당)을 세우고 풍악을 울려라. 노래를 부르고 화락화락 춤도 추어라.”

화주님은 큰당밧으로 좌정하여 도순본향을 세우고 백성들을 보살폈다. 그러다가 천기를 짚어보니 신전님이 올 듯하였다. 연 삼일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과연 신전님이 다가오는데 생피 냄새가 났다. 

“신전님은 어찌하여 생피 냄새가 납니까?”

“머리 있는 바닷고기에 소주를 먹으니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나랑 같이 지내기 어렵겠습니다. 아래로 내려서세요.”

신전님은 아래로 내려 강정 큰당밧으로 좌정하였으니 돌담을 경계로 도순 마을과 강정 마을로 구분하였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성역화한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사진=여연)
성역화한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사진=여연)

가 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던 도순 마을! 그런데 이곳에 전해오는 흥미로운 신화와 만나면서 도순은 나에게 꽃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래화주가 한 손으로 하늘을 떠받들고 한 손으로 대지를 눌러 적을 물리치는 광경은 태초 신들의 천지창조 급 권능을 떠올리게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신의 이름 ‘여래화주’다. ‘중의선생 여래화주’라 하고 있으니 불교 쪽 신이 분명하다. 

불교 쪽 신을 본향신으로 세운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어 설촌 배경이 궁금하였다. 그래서 도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쳤다. 도순은 이래저래 사찰과 관련이 깊은 마을이었다.

도순의 설촌 배경에 옆 마을 하원동의 법화사가 있었다. 『태종실록』(1406년 태종6) 기록에 의하면, 하원동의 법화사가 미타삼존의 동불상을 모시고 있었고, 노비 280명과 함께 비구와 비구니 동자승까지 합쳐 400명 이상이 될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건물 흔적만 남아 있는 법정사 옛터. (사진=여연)
건물 흔적만 남아 있는 법정사 옛터. (사진=여연)

도순마을 쇠태왓에서  발견되는 기왓장은 고려 후기의 것이라고 하는데 법화사에서 쓰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도순은 법화사의 기와를 굽는 가마터 부근에 형성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도순은 제주도 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법정사가 있던 마을이다. 1918년 법정사 승려들의 항일투쟁은 조천만세사건, 해녀항일투쟁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제주 항일투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역주민 400여 명이 합세한 대규모 투쟁으로 진압 과정에서 66명이 투옥되었고, 법정사가 불태워졌다. 이후 축대 등 건물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서귀포시에서 법정사 옛터를 성역화 하였다.  

도순 마을의 본향당은 거대한 노송이 신체여서 ‘소낭당’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미신타파를 명분으로 개신교도와 경찰이 와서 당을 훼손하고 나무를 잘라 없애버렸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나무까지 잘라내 없애다니, 소중한 이정표 하나 잃어버린 듯 가슴이 한 편이 찌르르해진다.

도순동 녹나무 자생지. (사진=여연)
도순동 녹나무 자생지. (사진=여연)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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