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목이 닦은 길 위에 모래를 날려 보냈을 화순 금모래해수욕장. (사진=여연)
고성목이 닦은 길 위에 모래를 날려 보냈을 화순 금모래해수욕장. (사진=여연)

옛날 고성목이 동과원과 서과원에 과일나무를 심어서 과일이 열리면 제주목사한테 바치곤 하였다. 그러던 중 제주목사가 이곳으로 출두를 하게 되었으니 길을 닦으라는 명이 떨어졌다. 며칠 내로 길을 닦으라는 명령도 심상치 않은데, 이런 저런 까다로운 조건까지 붙여놓았다.  

“길을 닦되 다섯 자 넓이에 석자 높이로 하여라. 그 위에 담배씨로 덮어놓아야 한다.”

고성목은 부랴부랴 길을 닦기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 닦기에 몰두하여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바닷가 백모래가 날아와 길을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제주목사가 출행을 하고 보니 담배씨가 아니라 백모래만 길에 가득하였다. 목사는 잘 되었다고 무릎을 치면서 이를 핑계 삼아 고성목을 죽이기로 하였다.

고성목은 과수원 안 움막에 문을 잡아 걸고 누웠다가 군졸이 잡으러 온다는 소식에 밖으로 달아났다. 고성목이 내달아 산방산에 오르더니 그만 갈 곳이 없이 인간 세상과 이별하였다. 군졸들이 고성목을 찾아 산방산 구석구석 다 뒤져도 시체를 찾지 못했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고성목당은 실제로 살았던 조상을 신으로 모신 당이다. 그런데 고성목은 신화뿐만 아니라 ‘산방덕 전설’에도 등장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옛날 산방산 아랫마을 화순리에 고성목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때는 산방산은 물론, 화순리 일대가 숲으로 덮이고 산돼지가 우글대던 시절이었다. 고성목은 천민이었으나 화순리의 ‘큰 터’라는 곳에 살면서 일약 부자가 되었다. 큰 터 바로 옆 몽동이터에 종놈들을 기거하게 하고 또 그 옆 불림터에 집을 지어 지나가는 과객이 묵도록 했다. 

고성목은 산방덕이라는 미모의 여인을 첩으로 삼아 곤물이라는 샘물 옆에 큰 과수원을 만들고 그곳에 산방덕을 기거하게 했다. 고성목은 산방덕이 있는 집으로 매일같이 나들이했는데, 장마철에는 비가 거세게 내리쳐 출입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고성목이 산돼지 수백 마리를 잡아다가 그 가죽으로 장막을 쳐놓고 집을 오갔다. 

고성목이 호화롭게 산다는 소문이 퍼져 관아에까지 들어갔다. 목사가 관원을 시켜 고성목이 사는 형편이며 주변 지형을 조사해보았다. 목사는 고성목이 사는 집터가 워낙 명당자리여서 부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성목이 워낙 출중해서 장차 위험한 인물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산방덕이 인간 세상에 보기 힘든 절세미인이라 고성목을 죽이고 차지해야겠다는 계략도 숨어 있었다. 

우선 어려운 과제를 주어 고성목을 곤경에 빠뜨리기로 하였다. 고성목에게 목사가 순력하게 되었으니 담배씨를 모아다 석 자 두께로 길을 덮어 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고성목이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해내는 게 아닌가. 

이에 놀라 다시 명령을 내렸다. 목사가 순력할 때 관속들이 쓸 갓이며 망건을 하루 저녁에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고성목이 명령한 대로 척척해내었다. 목사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고성목이 정말로 무서운 놈이라는 걸 깨닫고는 급히 잡아들였다. 

산방덕은 고성목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자기도 곧 잡혀 가게 될 신세임을 알았다. 그래서 산방산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었다.

“주이주이 산방덕이 날아가 주이다.”

주문을 외자마자 산방덕이 한 마리 새로 변하였고, 푸드득 날아서 산방굴사로 들어가 버렸다. 

산방덕은 본래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산방덕은 고성목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도와주러 첩으로 들어갔다가 위험을 감지하고는 날아가 버린 것이다. 고성목이 죽은 후 그가 살던 집은 관아에서 다 불태워버렸고, 집터도 파헤쳐놓았다. 

(‘현용준, 『제주도 전설』 ,서문당’의 채록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고성목당 근처 정자목. (사진=여연)
고성목당 근처 정자목. (사진=여연)

고성목은 어떤 인물이었기에 신화뿐만 아니라 전설 속에도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자료를 종합해보면, 고성목은 실제 과원을 관리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원진의 『탐라지』(1653년)에는 화순 곤물동네에 과원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 고성목이 살았던 집터는 곤물동의 과수원 자리이다. 

고성목은 벼슬은 하고 있지 않으나 능력이 뛰어나 부자로 호화롭게 살면서 미모의 여인을 첩으로 두었던 모양이다. 이는 벼슬아치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관원들은 온갖 핑계로 그를 괴롭히다 결국 목숨까지 빼앗고 말았다. 

워낙에 고성목이 뛰어난 인물인데다가 죽은 사연도 평범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전설로도 전승되었으리라.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은 고성목이 살던 집터에 당을 짓고 신으로 모셨다. ‘화순리 곤물동 본향 고성목 하르방당’은 과수원 안, 고성목이 살았던 집터에 위치하고 있다. 

고성목의 발자취를 찾아 안덕면 화순리 곤물동으로 답사를 나갔다. 유서 깊은 마을의 상징처럼 팽나무 정자목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 앞으로 감귤 과수원이 널찍하게 잘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과 제단은 가시덤불에 뒤덮여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담구멍에 박힌 술병과 사금파리로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서면서 덧없는 세월에 조금은 씁쓸하였다.    

가시덤불 우거진 고성목당 울타리. (사진=여연)
가시덤불 우거진 고성목당 울타리. (사진=여연)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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