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주택가 골목 한 귀퉁이에서 긴 세월 자리를 지켜온 각시당 신목 팽나무. (사진=여연)
주택가 골목 한 귀퉁이에서 긴 세월 자리를 지켜온 각시당 신목 팽나무. (사진=여연)

옥황상제 셋째 딸 별공주아기씨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서 아랫사람을 제대로 챙길 줄 몰랐다. 많은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도 물밥을 주지 않으니 굶어죽는 이들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옥황상제가 보다 못해 셋째 딸을 불러들이고 호령을 하였다. 

“너는 귀한 생명들을 보살피지 못했으니 하늘옥황에 있을 자격이 없느니라.”

별공주아기씨가 눈물로 용서를 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때는 이미 늦었다. 지금 당장 머리를 깎아 송낙을 써라. 베포장삼을 둘러 입고 백팔염주 목에 걸어 인간 세상으로 귀양정배 내려가라.”

별공주아기씨가 머리를 깎아 송낙을 쓰고 백팔염주 목에 걸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남문골 백성들의 인심이 좋을 듯하였다. 별공주아기씨는 남문골 청죽 갈대밭에 불도로 좌정하였다. 

별공주아기씨는 상단골, 중단골, 하단골(신앙민들)의 꿈에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

“나는 옥황상제 셋째 딸로서 궁녀들 천대한 죄로 귀양을 내려왔다. 남문골에 좌정하게 되었으니 나를 각시당이라 부르고 잘 위하도록 하여라.”

단골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각시당을 지어 별공주아기씨를 불도로 모셨다. 쌀을 씻어 밥이며 떡을 짓고 감주에 달걀 안주로 상을 차려 정성으로 제를 올리니, 불도께서 별처럼 예쁜 아기들을 점지해주었다.  

하루는 별공주아기씨가 다시 상단골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성안이 부정하고 부정하다. 그러니 남문 밖 큰 동산 만년 팽나무 아래로 옮겨가겠다.”

그리하여 단골들이 각시당을 남문 밖 팽나무 아래로 옮기고 제를 지내며 정성을 다하니 하는 일마다 만사해결을 시켜주었다. 

(진성기의 「제주도무가 본풀이 사전」을 바탕으로 정리)

옥황상제 셋째 딸이 귀양을 내려오는데, 머리를 깎고 염주를 거는 등 출가한 스님의 행색을 하고 있다. 불도로 좌정했다는 구절까지 있으니 무속의 신이 불가로 출가한 셈이다. 어찌하여 무속의 신이 불도가 되었다고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저간의 사정을 한 번 헤아려보았다. 

불교라는 외래종교가 들어와 자꾸만 세력을 넓혀오니 전통신앙인 무속의 형편이 어려워졌으리라. 물밥을 주지 않아 궁녀들이 굶어죽었다고 할 만큼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옥황상제가 셋째 딸에게 머리를 깎고 백팔염주 목에 걸게 해서 출가를 시켰다.

자꾸만 국토를 넘보는 신흥강대국에 공주를 보내 정략결혼을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공주는 불교로 출가한, 그러니까 시집간 새색시가 되었다. 그래서 이름도 각시당인 것이다.  

일부 복원된 남문 쪽 성벽. (사진=여연)
일부 복원된 남문 쪽 성벽. (사진=여연)

하지만 각시당은 성 밖으로 밀려났다. 목사가 거주하고 있는 성 안은 유교의 통치력이 강하게 미치는 곳이었고, 그런 만큼 무속의 당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각시당의 처지는 외곽으로 밀려나는 비주류의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 별공주아기씨가 성 밖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다.’고 하였는데, ‘아니꼽고 아니꼽다.’는 푸념처럼 들린다. 

현재 남성마을 골목 한 귀퉁이에 남아있는 각시당에는 오랜 세월을 품은 팽나무가 위태롭게 서 있다. 나무가 있는 좁은 땅만 공유지이고, 이곳을 둘러싼 주차장은 개인 소유라서 표지석 하나 세울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시멘트로 지탱하고 있는 신목 팽나무가 더욱 안쓰럽게 보였다. 

탐라국 이래 행정의 중추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 옛 터. (사진=여연)
탐라국 이래 행정의 중추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 옛 터. (사진=여연)

각시당을 밀어낸 성안 마을, 이른바 구도심 역시 각시당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안과 밖을 갈라 통치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밀어냈던 성담은 헐려 대부분 산지항 부두를 만들 때 매립되었다. 제주시 중심지였던 성안은 쇠락의 길을 걸어 구도심 공동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목사또가 호령하던 목관아도 입춘굿 때나 활짝 열려 떠들썩할 뿐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스쳐지나가는 곳이다. 

최근 구도심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자연과 풍속과 예술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도심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본다.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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