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이야기》 유리 그림, 김장성 글, 이야기꽃 펴냄
《돼지 이야기》 유리 그림, 김장성 글, 이야기꽃 펴냄

마음이 아파서 읽기 힘든 책이 있다. 2013년에 나온 《돼지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2010년에 일어난 일을 다뤘다. 이 책에는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331만 8천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었다’고 나온다. ‘살처분’은 병에 걸린 가축을 죽여서 없앤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에 걸리지 않은 짐승들도 병에 걸릴 것 같으면 미리 죽인다. 2010년 겨울, 한국에는 돼지가 1,000만 마리쯤 살고 있었다. 그들 중 30% 넘게 생매장 되었다. ‘구제역’이라는 전염성이 매우 높은 병에 걸리면서 생긴 일이다.

나는 이 책 제목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돼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라고. 사실 사람도 그 시대에서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 살처분 당했다. 나치 정권은 제2차세계대전  때 유대인 700만 명을 죽였고, 나치와 같은 민족인 게르만족도 40만 명만 넘게 죽였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보기에 유대인은 벌레와 같은 보잘 것 없는 목숨이었고, 같은 게르만민족 가운데 몸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아서 전쟁에 쓸모없는 사람들도 없어져야 할 목숨이었다.

사람은 동물을 먹는다. 하지만 동물이 살아있을 동안만이라도 자기 새끼를 돌보며 살게 해줄 수 없나.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떠올랐다. “짐승도 제 새끼는 돌본다.” 그만큼 자기가 낳은 아기는 모든 생명들이 돌본다는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돼지는 오로지 사람들에게 먹히기 위해서 살 뿐이다. 태어나서 새끼를 가질 수 없는 수컷을 바로 죽인다. 암퇘지도 새끼를 제대로 날 수 없다면 죽인다. 그들은 ‘가축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에서는 동물들도 좋은 환경에서 살기도 한다. 독일 어느 농가에서는 3,000평 들판에 소를 딱 한 마리만 키울 수 있다. 그들은 마음껏 풀을 뜯어 먹으며 산다. 한국 목축업에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사람들이 고기를 적게 먹는다면 그런 꿈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 그림책을 보자. 책 껍데기를 보면 돼지가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를 생각한다. 위에는 하얀 눈송이가 내린다. 마치 사람이 생각하는 모습과 닮았다. 그는 살면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돼지에게 무슨 꿈이 있겠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사람 눈으로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돼지들끼리 넓은 풀밭에서, 진흙구덩이에서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 색으로 그려졌다. 돼지들은 구제역으로 죽음 현장으로 끌려가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본다. “돼지들에게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다.” 돼지들은 구제역으로 목숨을 달리하고 나서야, 저 세상에서 연둣빛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논다. 노란 나비 한 마리를 쳐다보는 작은 돼지를 보면, 그곳이 하늘나라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을 이젠 어린이 만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다.

나는 그렇게 뛰노는 돼지들이 사람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린이 글을 썼던 권정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몽실 언니’ 같은 슬픈 이야기를 쓰니까, 아이들이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슬픈 이야기만 쓰세요. 좀 재미난 이야기 좀 써 주세요.”라는 말에 권정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항상 기쁘기만 하나요. 이 세상에는 슬픈 이야기 참 많아요. 그럼 그런 슬픈 이야기는 누가 쓰나요.”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돼지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이 그림책이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에 등을 돌리고 귀를 막아야 하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동물 해방이 곧 사람 해방이다. 이 책은 내용이 어둡고 답답하다. 하지만 현실이다. 어른도 아이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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