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시인은 어찌하여 계절 중 으뜸이라는 봄의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까닭을 찾아보니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한 유럽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봄은 축복과 소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계절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잔인한 봄의 역설로 인해 아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4월은 여러가지 이유로 잔인했다. ‘잔인한 4월’의 아픔을 치유해 줄 특효의 약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4월의 마지막 토요일 제주시청 인근에 있는 라이브클럽 ‘인디’ SNS를 통해 공연 소식을 알게 됐다. ‘잔인한 4월’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치료할 특별한 치료제와 처방전이었다. 

‘인디’의 주인장은 신의(神醫)인 건가? 명약 가득한 처방전이다. 그래 가자 ‘인디’로.

‘인디’ 공연장의 간판, 출입문과 그곳 주인장의 카리스마 가득한 모습. (사진=락하두)
‘인디’ 공연장의 간판, 출입문과 그곳 주인장의 카리스마 가득한 모습. (사진=락하두)

처방 #1 = 젠 얼론(ZEN ALONE)

젠 얼론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젠 얼론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젠 얼론’을 공연장에서 봤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4년 8월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볼캡을 쓴 다부진 체격의 청년이 말 그대로 무대를 뒤집어 놓는 것이다.

그 증거를 아래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노래는 국내에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미국의 컨트리 음악이다. 컨트리 음악을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해체 및 가공한 자작곡을 노래하는데 그 흡입력은 실로 대단했다. 분명 토종 대한민국 제주도민일 것인데 미국 본토인의 감성이 느껴졌다.

실제 영상 속에는 미국인 관객들도 꽤 있었는데 ‘젠 얼론’의 노래와 퍼포먼스에 마치 본토인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반가워하고 열광하고 또 환호했다. ‘젠 얼론’은 처음 보는 사람도 단번에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성의 뮤지션이다.

과거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토크쇼에 나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었는데 미국 메이저리거처럼 되기 위해 치즈와 버터 위주의 식단을 짜고 질리지만 처절하게 버텼다고. ‘젠 얼론’도 그와 비슷한 인내와 감내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

8년 만에 다시 공연장에서 만난 ‘젠 얼론’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건네고 그의 팬이라고 고백했다. 사인을 받을 결심으로 가지고 온 ‘젠 얼론’의 데뷔 1집 CD를 조심스레 내밀었더니 기꺼이 사인을 해준다.

젠 올론 1집 CD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 (사진=락하두)
젠 올론 1집 CD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 (사진=락하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Q : 젠 얼론님이 추구하시는 음악은 컨트리 음악인가요?

A : 저는 과거 ‘99엥거’라는 펑크팀에서 펑크음악을 했습니다. 지금 저의 노래의 근본은 ‘펑크’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에 대한 나의 해석은 ‘펑크’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버전의 ‘컨트리 음악’이다.

젠 얼론의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젠 얼론의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이날 공연에서 ‘젠 얼론’은 밴드의 형식으로 공연했다. 보통 그의 공연은 닉네임처럼 ‘혼자(alone)’인 경우가 다반사인데 밴드의 형태로 공연을 감행하는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에겐 그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그가 언급한 것처럼 시작은 펑크 밴드인 ‘99 엥거’였기 때문에.

이날 공연에서 흥미로운 이슈가 있었는데 건반과 코러스를 담당하는 존재는 다음 서술할 팀인 ‘감귤서리단’의 리더 홍창기님이다. ‘젠 얼론’과 ‘감귤 서리단’의 콜라보를 보게 될 줄이야.

 

 

 

처방 #2 = 감귤서리단(WE STEAL ORANGES)

감귤서리단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앞서 공연한 ‘젠 얼론’에 만큼이나 이날 두 번째 무대의 주인공인 ‘감귤서리단’에 기대는 정말 컸다. 공연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소식통에 의하면 ‘감귤서리단’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MZ 세대들의 ‘감귤서리단’을 향한 팬덤이 상상 이상이라는 전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 무대에서 ‘감귤서리단’이라는 밴드명의 유래를 알 수 있었는데 ‘감귤’은 팬들의 마음이고 ’서리단‘은 팬들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밴드명의 의미가 아주 맹랑하고 발칙하다.

‘감귤서리단’은 리더이자 보컬, 그리고 건반을 담당하는 홍창기님을 비롯하여 메인 래퍼 1명, 건반 겸 서브 래퍼 1명, 리드 기타 1명, 베이스 1명, 드럼 1명, 모두 합쳐 6명으로 멤버 구성으로 밴드로서는 제법 많은 파트별 크루를 거느렸다.

개성 넘치는 멤버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합을 맞추기가 쉽진 않을 텐데 하는 걱정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을 보며 나의 걱정은 바보 같은 기우였다고 반성하게 되더라.

이들의 공연 영상을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그들의 열정 가득한 연주와 보컬, 그리고 퍼포먼스를 품에 안을 만큼의 공연장 무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눈과 귀와 몸의 온 감각들이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반응한다. 그저 “대단하다!”라는 감탄사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흥분된 마음을 추스르고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들의 무기는 힙합, 그리고 랩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귤서리단’의 음악엔 블루스 코드, 라틴음악, 대중가요의 느낌도 있고, 록 스피릿에 재즈풍의 그루브도 결들여져 있다.

혼란스럽다. 이 밴드의 정체는 무언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공연 다음 날 팀의 리더인 홍창기님에게 인스타 DM으로 질문했다.

Q : 어제 공연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블루스적인 코드도 보이고 라틴색도 있고 한국 대중가요적인 느낌도 있고 펑키하고 그루브에 힙합까지 여러 장르적인 특징이 엿보이는데 감귤서리단의 장르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제 공연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언급하셨는데 어떤 주제인지도 궁금합니다.

A : 틀에서 벗어나서 최대한 여러 장르의 음악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저희 생각이구요! 다양한 무드의 음악들을 감귤서리단 만의 독특한 주제와 색깔로 풀어내고자 하는 게 목표입니다. 어제 언급한 프로젝트는 어제 공연의 주제이기도 했는데요. ‘활-기 프로젝트’라고 해서 제주시내 권에 있는 클럽을 활성화 시키고자 한 달에 정기적으로 저희와 다른 팀들이 같이 공연을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라이브 클럽이 활성화가 되면서 우선 클럽 가는 것이 꺼려지지 않아야 하고 편히 노는 분위기가 연출이 되어야할 것 같아서 다음 공연부터는 에프터 파티 등 다양한 컨텐츠들을 준비 중입니다.

감귤서리단의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의 공연 모습. (사진=락하두)

 

‘감귤서리단’의 강점은 바로 ‘젊음’이다. 젊기에 그들 앞에 펼쳐질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그들이 설 수 있는 미지의 무대는 무한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감귤서리단’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신들의 재기발랄한 끼와 넘치는 감성을 품기엔 제주도의 무대는 좁다. 좀 더 큰 무대로 가서, 이를테면 해외에도 나가서 공연도 해보고 밴드 서바이벌 같은 경연프로그램이 있으면 당당히 나가 도전하라!

‘감귤서리단’에게 마음을 서리맞은 중년 삼촌의 마음이란다!

이날 나에게 처방된 ‘젠 얼론’과 ‘감귤서리단’이라는 으뜸 치료 약으로 인해 2023년 나의 잔인한 4월은 치유됐다.

Rock음악을 하두 좋아해서 

락하두라 스스로를 자칭하는 

평범한  중년의 제주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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