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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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필름들 속에는 관덕정이 자주 등장한다. 관덕정과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의 초등‧중학교를 다닌 영향도 있을 것이다.

관덕정은 세종 30년(1448년) 제주목사 신축청에 의해 건립된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지어진 누정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제주도 역사의 타임라인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소다. 관덕정이 목도한 제주의 역사는 주로 치유되지 않는 아픔의 역사였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서 도심의 중심과 번화가는 관덕정이었다. 관덕정 주변으로 식당, 찻집, 극장도 있었고 큰 책방도 있었다. 그대들의 시대에선 관덕정이 제주의 랜드마크였던 것이다.

현재는 도심의 중심과 번화가의 위치가 바뀌었고, 구도시와 신도시로 경계 된 지금에 이르러 관덕정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책장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관덕정이 주는 상징과 의미는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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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에서 공연과 버스킹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 음원작업을을 함께한 임진혁의 SNS에서다. 그는 믹싱‧마스터링 스튜디오 '064사운드'의 대표이자, 엔지니어다. 밴드 '소리께떼에서 퍼커션을 담당하기는 멤버이기도 하다.

궁금했다. 야간의 구도심, 그것도 관덕정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있다는 것과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국악, 스페인의 민족음악인 플라멩코고를 크로스오버했다는 소리께떼의 미지의 사운드가 말이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당장에 카메라를 챙기고 공연 현장으로 향했다.

(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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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림풍악. 2023 제주목 관아 야간개장 정기공연 귤림풍악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5월 06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9시 30분까지 제주목 관아 망경루 앞마당에서 이뤄지는 정기공연이다(link).

구도심의 상징인 제주목관아, 관덕정에서 이뤄지는 저녁 야외 공연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기획인가. 

더운 여름날의 습기 가득한 저녁시간이지만 꽤 많은 관람객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동안 펜데믹 기간에서 강제 결핍되었던 문화에 대한 갈망과 해소의 자리일 것이다.

약속된 공연 시간이 되니 소리께떼는 그들이 준비한 음악이라는 소품을 하나둘씩 풀어 냈다. 내가 미치도록 궁금해했던 그들의 미지의 사운드에 대한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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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국악과 플라멩코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흥이 절묘한 리듬과 멜로디로 변주돼 시너지를 방출했다.

리듬감 넘치는 스패니시 기타와 퍼커션, 한과 흥을 가득 머금은 국악 보컬, 그리고 최근에 합류했다는 재즈보컬리스트의 소울풀한 음색에 더해 플라멩코 무용수의 정렬의 발구름과 춤선은 관객들로 하여금 경탄의 박수갈채를 이끌어 냈다(공연영상 link1, link2).

전혀 다른 서양과 동양의 재료 두 가지를 섞어 지금까지 경험치 못한 신메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소리께떼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이 엿보였다.

소리께떼는 크로스오보 밴드로 △기타리스트 박석준 △소리꾼 정애선 △플라멩코 무용수 최유미 △퍼커셔니스트 임진혁  4인조로 시작했다. 최근 재즈보컬리스트 김수정이 가입, 5인조 체계로 개편됐다.

소리께떼라는 이름은 국악의 ‘소리’와 플라멩코의 'Soniquete(소니께떼)'를 합친 합성어다. 소니께떼는 박수와 발구름 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하거나 춤을 춘다는 뜻이다.

소리께떼는 제주음악에 다양성과 이채로움을 가져다 준 보석같은 팀이다. 우리가 밴드음악에서 예상할 수 있는 상식을 파괴한 팀이기 때문이다.

(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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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칼럼을 연재하며 계속 이야기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숨겨진 보석 같은 제주의 인디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그 뮤지션들의 육지부 못지않은 세련됨과 독창성에 대해 전하고 싶었었다.

소리께떼에서 내가 알리고 전하고 싶었던 바로 그 모습이 보였다. 과거 90년대 제주의 인디음악 세계를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지금의 제주인디음악은 신세계인 것 같다.

2020년대의 제주인디씬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자연색처럼 자기만의 개성과 자기만의 분명한 색채로 채워지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 어떤 뮤지션들이 독특하고 기발한 음악적 실험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날 구도심에서의 야외 음악 공연이 가져다준 낭만 가득한 매력과 소리께떼가 관객들에게 선물한 신선한 바람은 기분 좋은 관덕정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락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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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음악을 하두 좋아해서 

락하두라 스스로를 자칭하는 

평범한  중년의 제주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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