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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유람]제주북초등학교와 김영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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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유람]제주북초등학교와 김영수 도서관
  • 고봉수
  • 승인 2021.05.28 20: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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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북초등학교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북초등학교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제주북초등학교는 제주교육의 발상지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통감정치가 본격화되던 이듬해 ‘보통학교령’이 공포되면서, 1907년 5월 19일 ‘제주관립 보통학교(4년제)’가 개교하였다. 바로 이곳이 현재의 제주북초등학교 터전이다.

“1895년 7월 2일 ‘소학교령’ 공포로 ‘제주목 공립소학교’가 1897년 4월 신학기에 맞춰 개교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 공립소학교는 소규모 학교로 1학급의 극소수 학생으로 1896년 11월 10일 전석규가 교원으로 임명되었고, 제주 관찰사이며 제주목 재판소 판사였던 이병휘가 학교장을 맡았다. 1906년 ‘소학교령’이 폐지되고 1906년 8월 27일 ‘보통학교령’의 발표로 1907년 5월에 ‘제주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일도일동 역사문화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원 연합회)

위의 사료에 따르면, 제주 근대교육의 시작은 1907년이 아닌 1897년으로 10년이 앞당겨진다. 단지 개교일이 10년 앞당겨지는 것만이 아니라 제주교육의 주체가 일제가 아닌 조선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것이다. 도 교육청과 학계가 하루빨리 고증을 거쳐 제주교육의 역사를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제주북초등학교는 192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초등학교 학생들이 독립 만세운동을 벌인 학교다.

“1920년 5월 25일 제주관립 보통학교 전교생이 석가탄신일을 기념해 관음사로 원족(소풍)을 가면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 창가를 함께 불렀는데 경찰이 이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취조했다.”
-매일신보 1920년 5월 31일 자

1947년에는 제주 4.3의 시발점이었던 ’제28주년 3·1 기념 제주도대회’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 군중 수는 대략 2만 5천~3만 명으로 제주도민 10명 중 1명꼴로 참가한 셈이다. 이래저래 제주북초등학교는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우리 가족은 제주북초등학교 3대 동문 가족이다. 할아버지가 제주관립 보통학교, 아버지가 제주북공립학교, 그리고 나는 제주북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가족사가 북초등학교 역사와 많은 부분 함께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는 베이비붐 세대라 한 학급당 70~75명 정도로 마치 교실이 콩나물시루 같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교실이 부족하여 저학년 때에는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등교하기도 했었다. 

전교생이 2500여 명이 되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학교였다. 그래서 행정구역상 입학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도 부모들의 노력(?)으로 편법입학을 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은 똑같은 것 같다.

지금은 모든 초등학교가 남녀 혼합반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3학년으로 진급할 때 남·여를 구분하여 반 편성을 했다. 나는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남녀 혼합반에 배정되었다. 6개 학급 중 남자반 3개 반, 여자반 2개 반, 혼합반 1개 반으로 운영되었다. 

우리 반을 제외하고는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매 학년 반 편성을 하였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우리 반은 졸업 때까지 4년을 함께 지냈다. 혼합반이 꾸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남녀 인원이 애매하게 남아서 혼합반을 만들었다거나, 교육청 차원에서 실험적으로 혼합반을 운영했다는 등 얘기가 분분하다. 

6학년 때는 1박 2일로 도일주 수학여행을 갔었다. 1박을 서귀중앙초등학교 교실에 하게 되었는데 다른 반 친구들이 유독 우리 반을 주시하였다. 아마 남녀 혼합반이라 어떻게 자는지 궁금해서일까? 교실 중앙에 책·걸상을 높게 쌓아 성벽(?)을 만들어 남녀 구분해서 잤었다. 4년을 함께 지내서 그런지 우리 반 친구들 간의 우애가 좋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중·고·대학 시절 내내 반창회를 가졌으니.

김영수 도서관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김영수 도서관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원도심의 명소가 된 제주북초등학교 ‘김영수 도서관’

1930년 제주북초등학교 졸업 후 1932년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중소기업을 육성한 기업인 김영수 동문이 1968년 모친의 90회 탄신을 기리며 고향 모교에 신축 기증하였다. 

 “모교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고,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 
-김영수

도서관 벽면에 새겨진 글은 어려웠던 시절 김영수 선생님의 고향과 모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내가 다닐 적에는 도서관보다는 과학실로 사용했었던 기억이 있다. 동기동창인 나의 아내는 이곳에서 합창 연습도 했었다고 한다.

김영수 도서관은 지난 2018년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학교와 지역이 함께하는 마을 어린이도서관이자 돌봄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2019년 생활SOC 아이디어·우수사례·홍보영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모’에서 대상에 선정되었다. 

애초 사업예산의 2배를 넘긴 계획안이었지만 계획안이 마음에 무척 들어 부족한 예산을 확보한 교장 선생님의 행정력, 부족한 설계·감리 비용에도 불구하고 애들을 위한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학부모이자 지역 건축가의 창의력과 열정, 자재 구매·시공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었던 현장 여건을 잘 이행하고 구현한 시공자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좋은 건축물의 탄생에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안목 있는 건축주, 창의력 있는 건축가, 건축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화해낼 줄 아는 시공자. 김영수 도서관 프로젝트는 이 삼박자가 잘 만난 결과라고 본다.

김영수 도서관(왼쪽)과 제주목 관아가 보이는 2층 열람실(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김영수 도서관(왼쪽)과 제주목 관아가 보이는 2층 열람실(오른쪽). (사진=고봉수 제공)

왼쪽 사진을 보면 좌측에 도서관, 중앙에 숙직실, 우측에 창고로 분리되어 있던 공간이 도서관은 열람실, 숙직실은 소 모임방, 창고는 돌봄 공간으로 연결되었다. 도서관 2층의 열람실에서는 바로 눈앞에 망경루 등 제주목 관아의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다. 주중 오후 5시까지는 제주북초등학교 학생들의 도서관으로, 5시 이후와 주말에는 마을 어린이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설계단계에서 나는 건축가에게 기와 울타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기왓장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을 가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준공 후 지금까지 깨진 기왓장이 한 장도 없다니? 

그 궁금증은 곧 해결되었다. ‘김영수 도서관’ 글씨체와 상량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김영수 도서관의 글씨체는 병설 유치원 원아들의 작품이다. 원아 전체가 ‘김영수 도서관’이라는 여섯 글자를 쓰고 하나하나를 모아서 만들어진 글씨체다. 그리고 상량문에는 당시 제주북초 6학년들이 참여하여 글을 남겼다. 어른들이 만들어서 준 도서관이 아니라 아이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자부심 때문인 것 같다. 

개관 후 나와 아내는 회원 가입을 하여 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저녁 식사 후 ‘마실’을 나와 2층 열람실에서 제주목 관아의 ‘망경루’를 마주한다. 독서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다. 

제주목 관아가 야간에도 개방한다면 그 분위기는 한껏 고조될 것이다, 원도심에 마을도서관으로서 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초등학교와 인연이 없는 이들도 한 번쯤 들려보기를 권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원도심 탐방 중 김영수 도서관을 찾았다. 그때 동창 녀석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나의 학창 시절에 이런 도서관이 있었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

고봉수.
고봉수.

제주 성안(원도심)에서 태어나 5대째 사는 토박이. 고교 졸업 후 30년만인 2012년 한짓골에 있는 생가로 돌아와 보니, 과거 제주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한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관덕정 광장 주변 활성화 사업’의 주민협의체 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에는 제주목 관아를 사적공원(시민공원)으로의 개방을 요구하는 주민청원을 도의회에 제출한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의 대표를 맡았다. 한짓골에서 건축 관련 사무소 ‘이엠피 파트너즈’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한라대학교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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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영 2021-09-21 15:54:27
지금도항상생각나는모교인북국민학교옛친구들은만날수업어요
내마음속에항상그리운추억으로남는다
75회동창생들모두보고싶어요
찾고싶은 사람이 있지만 못찾아서 그리움만 쌓이네요

김현석 2021-05-30 11:19:18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