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희 기자)
(사진=박소희 기자)

4월 30일 영업 종료가 예고된 제주칼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5성급 호텔 명성에 맞는 내부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쓸고 닦아서다. 

A(65) 씨는 10년을 일했다. B(63)씨는 6년을 넘게 일했다. C 씨(75)는 무려 25년을 일했다. D(62) 씨는 1년을 일했다. 이들은 모두 제주칼 청소노동자들이다.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칼과 서귀포칼 호텔 ‘전 직원’ 191명을 대상으로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회사는 전 직원 50%인 96명만 고용유지를 하겠다고 했고, 희망퇴직자가 100명을 넘어서며 제주칼 내부 매각 반대 투쟁은 일단락됐다.

많게는 25년을 제주칼로 출근해 일했지만, A·B·C·D 씨는 ‘전 직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라서다.

칼호텔 내부 하청 노동자 직무는 크게 객실청소(룸메이드), 건물청소, 세탁, 주방, 시설, 사우나, 휘트니스 등으로 나뉜다. 직무마다 하도급 업체가 다르다보니 어떤 업무 환경에서 몇 명이 일하고 있는지 서로 모른다. 도급계약이란 세탁 등 호텔 내 특정 서비스를 통째로 외부 업체에 맡기는 형태다. 파견, 아르바이트 등 기간제 근로와 함께 대표적인 비정규직 고용 형태로 제주칼 노동자 300명(노조 측 추산) 가운데 카지노 직원을 제외하면 90여 명(노조측 추산)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4월 30일이면 호텔영업은 중단되지만, 90여명 손에는 퇴직위로금도, 다음 일자리도 쥐어져 있지 않다. B 씨는 “제가 늙어서 일을 더 못하는 날은 올 줄 알았어도, 여기(제주칼)가 없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면서 “사는 게 근근하니, 막막하다”고 했다. 

칼호텔을 도급운영하는 항공종합서비스 측은 제주투데이와 통화에서 “하도급(노동자)은 서귀포 칼호텔 등 해당 업체가 다른 일을 알선해 줄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하청 업체 쪽에서든 칼호텔 쪽에서든 고용보장을 약속받은 적이 없다. 일흔 살을 훌쩍 넘긴 C 씨가 “나이가 많으니 딴 데나 갈 수 있겠냐”고 읊조렸다.

제주칼 건물 청소 노동은 3교대로 이뤄지는데 1교대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2교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3교대는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한다. 연차에 상관없이 이들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

지난해 9월부터 제주칼 매각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진행 과정에서 칼호텔 측은 이들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본인들 거처는 어떻게 되는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맡은 일을 했다. A 씨는 “말해주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제주칼 영업종료는 현실화했고, 이달 초 희망퇴직 신청자를 받기 시작했다. “똑같이 일했는데 왜 우리는 챙겨주지 않을까” A 씨는 그제야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비정규직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고용보장 없는 매각은 반대한다고 할 때는 300명 노동자 내세우더니…” 잠시 말끝을 흐린 D 씨는 “부산 그랜드 호텔은 정규직 직원뿐 아니라 우리 같은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들었다”고 말을 다시 이었다. 

제주칼호텔(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칼호텔(사진=김재훈 기자)

부산 대표 특급 호텔인 해운대 그랜드 호텔은 23년 영업을 끝내고 2020년 폐업 신고 두 달여 만에 부동산개발업체인 (주)MDM에 매각했다. 제주칼 역시 부동산투자회사인 ‘스타로드자산운용㈜’과 3월 중 매각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칼 매각 공시금액은 687억 원. 해당 금액은 그동안 호텔을 쓸고 닦은 이들도 함께 일궈온 기업가치일 테지만 그들 몫은 없다.

B 씨는 “우리가 호텔 허드렛일은 다 했다. 티가 잘 안 나는 일이라 그렇지. 일은 우리가 다 했지”라면서 “사실상 우리도 호끔(조금의 제주어) 받을 자격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건 우리 희망 사항”이라면서 C 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회사나 사회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자, C 씨가 “칼호텔이요. 아님 하청 업체요” 라고 물었다. 옆에서 듣던 D 씨가 “복지”라고 말했다. 호텔 내 복지를 말하는 것이냐고 되묻자 C 씨가 “명색이 호텔인데 직원 휴게실 같은 건 괜찮았던 편”이라고 거들었다. “명색이 호텔이 왜 망했냐”고 묻자, 다들 웃다가 이내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입을 연 C 씨. “명색이 호텔에서 일하니까 종업원(노동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했다. 잘했는데, 식구(경영진)들이 (경영을) 잘 못 해서 이런 파동이 온 것이지 노동자는 할 만큼 했다”면서 “책상머리에 앉아서 볼펜만 그럴 게(끄적거릴 것이) 아니라, 호텔에 와서 객실도 둘러보고, 손님도 만나보고 해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애썼으면…”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칼 자산매각 이유로 8년 간의 경영악화를 들었다. 

C 씨 말문이 막히자 D 씨가 다시 복지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사회복지를 말 한 것이다. 이렇게 회사가 없어져서 거리에 나 앉게 돼도 사회복지만 잘 돼 있으면 이렇게 막막할까”라고 한탄했다.

다른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함께 매각 대금 일부라도 ‘호끔’ 달라고 해볼 수도 있지 않냐고 묻자 A 씨가 “우리가 그런 걸 어떻게 하냐”면서 언감생심이라 했다. 이날 만난 이들은 자신의 노동권을 위해 한 번도 조직적으로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최근 민주노총 제주본부 측에서 찾아와 힘써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에 작은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