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한겨레’에는 「나는 왜 NGO」라는 투고란이 있다. 한겨레는 이 투고란에 대한 의미 부여를 이렇게 해놨다.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를 얘기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 얘기를 제주투데이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각자도생이란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얘기되는 시대에 공익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특이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끌을 해서 이른 나이에 경제적 성취를 이뤄내 노동으로부터 일찍 물러나 건물주 또는 자산가의 삶을 사는 것이 청년층이 바라는 가장 흠모하는 미래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동체가 살아 숨 쉰다고 강하게 느끼던 시기도 있었다. 불과 6년 전이 그러했다. 촛불혁명이라 불리던 그 시기(2016년 말부터 2017년 봄까지) 우리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동체를 논했고, 진보적 의제를 토론했으며 진보의 감수성으로 서로를 대했다. 그런데 고작 몇 년 만에 공동체라는 관념이 희미해지고, 개인의 풍족한 삶을 위해 무리하게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는 일들이 횡횡한다. 무리한 투자가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그래서 더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활동가의 삶을 주목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한 번 정도는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칼럼을 일종의 자전적이 이야기로 채운다는 것이 공적인 공간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공익활동가가 사회의 공적영역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고, 어떤 소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내가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서른 살(만 나이로 따지만 스물여덟) 대학 졸업 후 직업을 선택하기에 거의 막바지 즈음에 일이었다. 물론 직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물아홉 살 나는 도내 모 축산업협동조합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노동 강도는 버틸만 했지만 사람이 힘들어서 그곳을 나오고자 했고, 마침 단체에서 일하던 활동가로부터 공채소식을 전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크던 시기, 파도에 휩쓸리는 삶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삶으로의 변화에 마음이 쏠렸다. 그래서 서른 살 나는 제주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가 되었다.

갑자기 활동가가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드물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활동가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 디딤돌봉사단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본의 아니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은 2001년 4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자행한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주식회사)노동조합 폭력진압 사태와 관련된 영상이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폭력진압 사태를 간단히 얘기하면 이렇다. 대우그룹이 IMF로 부도상태에 들어가면 대우자동차 역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0년 3월부터 이에 대한 저항으로 파업이 시작되었지만 기업과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탄압으로 일관했다. 공권력의 물리력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회사는 노조 조합원, 산업별 연합단체(금속산업연맹) 또는 총 연합단체(민주노총) 소속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근거로 공장 내 노조 사무실에 출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사무실 출입을 봉쇄하고 물리력을 동원한 폭력진압을 감행했다.

이때 40여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마침 폭력진압의 현장이 영상으로 남았다. 이 영상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다.  당시 언론과 시민사회의 비판은 당연한 것이고, 외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고 진압 관계자들이 징계와 더불어 폭력진압에 전면에 섰던 인천경찰청 1002중대가 해체되기도 했다. 국가폭력을 여과없이 보여준 정말 참혹한 일이었다.

2001년 4월에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2002년 5월에 대학 새내기인 내가 영상으로 보고 말았다. 이래서 선배를 잘(?) 만나야 한다고 했던 모양이다. 만약 이 영상을 보자 한 선배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나는 활동가로 살아가지 않았을 터다. 운명론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필자가 운명적으로 믿는 삶의 몇 장면을 반드시 꼽으라면 이날 이 영상을 본 그 순간이라고 답할 것 같다. 그렇게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인연은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녹색발광]사랑하는 아이의 미래를 지킬 수만 있다면-②로 이어집니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