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남방큰돌고래나 푸른바다거북, 점박이물범 등의 해양생물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이들 해양생물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만큼 보호가 필요한 해양생물은 많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천연잘피다.

천연잘피는 국제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큼 중요한 해양생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다. 그만큼 홍보도 안되어 있고, 이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한 복원과 서식지 보전은 정부의 해양환경정책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왜 천연잘피가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

천연잘피의 정의와 국내 분포현황

천연잘피(해초, Seagrasses)는 연안이나 하구 등 물속에 잠겨 생육하는 잘피는 잎, 줄기 및 뿌리조직이 뚜렷이 나뉘어져 꽃을 피우고 수정하여 열매를 형성하는 바다에 사는 속씨식물이다. 암수가 구별되는 생식세포에 의한 유성생식을 통해 형성된 종자의 발아와 영양지(열매를 맺는 식물의 건강한 생육을 돕기 위한 가지. 잎과 가지가 발생하는 가지로 열매를 맺진 않는다.)에서 가지들이 지속적으로 뻗어나가며 해초지를 유지한다. 따라서 미역이나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Algae)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천연잘피는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연안에 5과 13속 60여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는 거머리말속(Zostera spp.)속 5종, 새우말속(Phyllospadix spp.) 2종, 하구종인 줄말(Ruppia maritima)과 아열대성 잘피인 해호말(Halophila nipponica) 등 9종이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잘피는 연안의 뻘이나 모래에 자라는 거머리말속(Zostera spp.)의 거머리말(Zostera marina)이다. 거머리말(Z. marina)은 우리나라의 동서남해와 제주 연안의 수심 약 5m 미만의 물살이 느린 만이나 하구에서 비교적 큰 무리를 이루며 살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암수한몸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포기거머리말(Z. caespitosa)도 동서남해에 자생하며 지역에 따라 거머리말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수거머리말(Z. caulescens)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커서 Giant Seagrass로 불리우며 물살의 흐름이 양호한 비교적 깊은 수심(6∼12m)에서 자란다. 왕거머리말(Z. asiatica)은 주로 동해안의 만이나 개방된 해안의 모래바닥에 깊은 수심(9∼15m)에 자라며 포기거머리말과 수거머리말처럼 우리나라와 일본에 한정돼 출현한다.

이밖에 애기거머리말(Z. japonica)은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는 조간대에 서식하는 잘피로 과거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자생했지만 최근 선박의 밸러스트 탱크에 실려가 북미로 유입된 종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온도가 상승해 아열대 잘피인 해호말(H. nipponica)도 우리나라 남해안에 살고 있음이 최근 소개됐다. 줄말(R. maritima)은 낙동강 하구의 세모고랭이 서식처 내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며 나타난다.

대부분의 잘피가 뻘이나 모래 등의 연약지반에서 지하경(땅속에 있는 식물의 줄기)과 뿌리가 퇴적층 속에서 확장되면서 성장하는 데 비해 새우말과 게바다말은 지하경과 뿌리가 암반에 부착해 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우리나라와 일본 연안에 한정해 자생하고 있으며 연약지반에 나타나는 잘피와는 달리 암수딴몸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새우말(P. iwatensis)은 비교적 높은 위도에, 게바다말(P. japonica)은 비교적 낮은 위도의 외해에 개방된 암반지역에서 높은 파도에 노출된 상태로 살고 있다.

제주 연안에는 잘피류중 거머리말(Zostera marina) 1종만이 분포하고 있고, 총 면적 310,567㎡의 면적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시흥리와 오조리로 연결되는 시흥지역 거머리말 서식지가 면적 275,736㎡로 88.79%를 차지하여 도내 최대 서식지로 제주의 동북해역에 치우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김정도 제공)
(표=김정도 제공)

천연잘피는 왜 보호해야 할까?

연안생태계에서 잘피군락은 일년내내 광합성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가진 일차생산자로서 잘피가 만든 유기물질과 잘피 잎에 부착해 생활하는 미세조류들은 다른 물고기들의 직접적인 먹이원이 된다. 물 속 잘피의 잎은 조류의 속도를 감소시켜 부유물질을 가라앉히고 지하경과 뿌리는 퇴적층을 안정화해 재부유를 방지하므로 잘피군락으로 이루어진 해역은 바닷물이 맑아진다. 또한 잘피는 육상식물과는 달리 뿌리뿐만 아니라 잎으로 연안으로 유입되는 무기영양염류를 흡수해 부영양화를 방지하는 환경정화의 기능도 수행한다. 이러한 잘피군락은 많은 수산어족자원들에게 서식지, 보육장 및 산란장을 제공해줘 토착 동식물의 군집 형성에 도움을 주는 생물자원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 연안은 남획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하여 수산자원이 고갈되고 생산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또한 연안해역의 매립, 간척, 골재 및 모래채취, 준설 및 부영양화 등에 따른 생태계 변화는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으며 이는 수산자원의 고갈과 연결되어 현재 연안의 생태환경은 심각하게 훼손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연안생태계의 훼손과 더불어 과거에 풍부했던 잘피군락의 서식지가 매우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잘피군락의 생태학적 역할을 고려해볼 때 훼손된 연안 생태계를 환경친화적으로 정화하고 종 다양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또한 연안의 수산생산성을 높힐 수 있어서 잘피 서식지의 절대적인 보전과 복원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 하나 최근에 잘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다. 바로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효과적인 생물이 바로 잘피다. 연안 또는 연안 습지에 분포하는 식물과 퇴적물을 포함하는 생태계가 격리 및 저장하고 있는 탄소를 ‘블루카본(blue carbon)’이라고 하는데 이 블루카본의 대표생물이 바로 잘피다. 잘피는 바다 면적의 약 0.2%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바다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약 10%를 흡수하여 저장한다. 현재 전 세계 잘피에 저장된 유기 탄소는 약 19.9기가톤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게다가 10ha 규모의 잘피 서식지는 자동차 2,800대가 매년 배출하는 양의 탄소(5천 톤)을 흡수하여 저장한다. 최근 기후위기가 극심해짐에따라 자연기반해법이 각광을 받는 가운데 이 잘피 서식지의 보호와 복원이 기후위기가 파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흥리 앞바다 거머리말 서식지(사진=김정도 제공)
시흥리 앞바다 거머리말 서식지(사진=김정도 제공)

제주도 거머리말 최대 서식지 성산읍 시흥리 앞바다

앞서 설명했듯 성산읍 시흥리 앞바다는 제주도에 서식하는 거머리말의 88.79%가 서식하는 제주도 내 최대 서식지다. 그만큼 보호의 필요성이 큰 곳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2012년 이후 명확한 조사가 이뤄진 바 없다. 기존에 알려진 면적만 27.6ha로 매년 탄소 1만톤 이상을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우리 단체에서 해양환경 전문조사업체와 협업하여 조사를 진행해 본 결과 기존자료의 면적보다 확대된 약 360,000㎡에 잘피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존 면적 대비 23.4%가 증가한 것이다. 특히 여름철은 잘피의 서식이 쇠퇴하는 시기이니만큼 이 시기에 면적이 늘었다는 것은 면적이 확대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머리말 군락이 번성할 수 있는 토대를 잘 마련하게 되면 제주바다 특히 연안은 생태적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최근 바다 오염에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인과 질소에 의한 부영양화를 경감시키는데 거머리말은 탁월한 역할을 하게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극심해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거머리말의 서식지 보호와 나아가 복원은 시급한 과제다. 제주도 최대 거머리말 서식지에서 최대 약 2만톤 가량의 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잘피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제주도내 거머리말 최대서식지인 시흥지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 지정된 3곳의 해양보호구역 중 추자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과 토끼섬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은 천연잘피 보호를 위하여 지정되었다. 그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천연잘피의 보전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흥지구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철저히 보전·관리한다면 제주지역 거머리말 보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정기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서식지의 밀도, 형태적 특성, 생체량 등의 생물학적 요소와 빛, 수온, 영양염 등의 환경적 요소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한다면 거머리말 서식지를 보호함은 물론 나아가 더욱 확대하고 훼손된 서식지를 복원하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조사, 연구가 가능하려면 행정과 연구기관, 민간단체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소통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에는 잘피를 포함해 해양생태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반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설, 인력, 연구예산 등 전반을 들여다보고 이에 대한 기반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흥지구 거머리말 서식지의 경우 주변의 오염원에 대한 조사와 관리가 이뤄진 바 없다. 현재 시흥지구 거머리말 서식지 주변에는 성산항 등의 항만시설 3곳과, 양식장 2곳, 성산하수처리장 등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서식지 주변 육상에는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개발행위에 따른 오염부하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실제 서식지에 번성한 파래류에 의해 거머리말의 뿌리가 썩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서식지를 보다 건강하게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오염원에 대한 관리는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시흥지구 거머리말 서식지에 대한 오염원이 서식에 어떤 부정적 요인을 발생시키고 있는지 또한 이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등을 면밀하게 조사 연구하고 보전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거머리말(사진=김정도 제공)
거머리말(사진=김정도 제공)

그리고 현재 제주도에는 해양환경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 거머리말 서식지에 대한 중요성을 정책으로 반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보전과 복원 전체를 다루기 위해서는 이를 전담한 해양환경 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양환경과 해양생태계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해양환경을 전담할 부서가 없다면 이에 대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제주도가 충분히 자각해서 해양환경부서를 신설하고 적정한 인력과 예산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바다 속에 푸르게 넓게 펼쳐진 거머리말 군락이 조류에 의해 물결치듯 일렁이는 모습을 직접 보게된다면 경탄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름다움에 더해 해양환경과 생태계 나아가서 기후위기 대응에 막대한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천연잘피 거머리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라진 자리는 해양오염과 해양생태계 파괴가 대신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천연잘피 거머리말이 제대로 홍보하고 또 보전해서 제주도의 서식지가 줄지 않고 더 넓어진다면 이들은 제주의 바다를 건강하게 만드는 촉매로써 충분히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천연잘피 거머리말의 가치가 조명되고 나아가 수많은 이들이 보호운동에 동참하는 원년이 되길 소망해 본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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