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 서귀포시 황우치해안과 화순금모래해변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막을 내렸다.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인류와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실천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네 명의 활동가 및 연구자와 수십명의 참여자들은 '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접 걸으며 10곳의 기후위기 현장을 목격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나가야 할까.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투데이>가 동행취재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 단체는 1년여의 시간 동안 △‘개발과 저항’의 역사를 지닌 강정 △ 들불축제 개최 지역인 새별오름 △제2공항 후보지인 성산읍 신산리 △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에 위치한 레이더 기지 △도시생태계를 파괴하는 서귀포시도시우회도로 △ 축조공사로 훼손되고 있는 화순 △ 제주의 물 순환 체계에 중요한 숨골이 있는 수산리 등을 답사한 바 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한 가운데, 엄문화 활동가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한 가운데, 엄문화 활동가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기후위기를 '기후재난'으로 표현한다. 기후에 대해 예측할 수 없어 인간이 대비를 할 수 없는 재난이라는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엄문희 활동가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대비돼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엄 활동가는 "기후는 특정 장소에서 반복되는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대기 상태로, 최근 그 변화 폭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재난은 단일 사건이 아닌 서서히 전개되는 과정으로, 비가시화돼 있기 때문에 파국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모습이 드러난다. 그 결과는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며 기후재난의 정의를 설명했다.

이어 "인류는 예측이 어려운 지구환경 변화에 맞서 싸우게 된 시대에 봉착했다.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를 구분할 때도 최후의 시대로 인식되지 않았나"며 "이번 행진을 통해 현장에 직접 방문, 환경권과 생명권의 관계성에 대해 주목했다"고 말했다.

기후재난의 원인은 긴밀히 연결돼 있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둘의 관계성에서 찾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엄 활동가는 "로자 룩셈부르크 '자본의 축적', 아마티브 고시 '대혼란 : 기후변화와 상상도 못할 일들' 등 여러 학자들은 저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있다"며 "IPCC 3그룹 6차차 보고서에서도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식민주의를 지목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보고서가 각국으로 전달될 때는 조율을 거쳐서 각국이 마지못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됐다"며 "그 요약본의 문구를 선택할 권한은 IPPSS 회원국 정부 대표에게 있다. 체제 전환을 주문하고 있지만 자원과 수단은 전면에서 빠졌다. 이게 국제 기후정치와 기후체제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엄 활동가는 식민지에 대한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과 문화를 재단하며 타자화하는 것, 상대를 나와 동일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 것 등이다.

그는 이같은 정의가 인간과 자본이 자연을 착취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행진을 통해 제주에서 식민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숨골·동굴·지하수, 공동체, 바다, 제주 제2공항 등이다.

그는 "제주도민에게 중요한 지하수와 관련, 상수도 시설이 완비되면서 지하수와 도민과의 관계는 이전 사회보다 약해졌다"며 "자신이 사용하는 식수가 자신에게 오는 경로를 망각한다는 점은 위기에 대응을 가로막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정해군기지 건설도 마찬가지다. 군사주의 안보논리에서 공동체는 특수 구성원이 다수 상대를 대상화하며 불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재난의 원리를 제공한다"며 "바다를 빼놓고 식민지성을 말할 수 없다. 인간이 행하는 농업, 가축의 대량사육, 오폐수는 이미 근해를 오염시켜 조류와 물고기, 다른 바다생명체들에 위협이 된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엄 활동가는 이미 생명다양성은 계급적이고 계층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상화되고 당연시 되는 피해와 불평등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폭력에 대한 무감각함에 따라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우리가 해야할 논의는 결과적 현실만이 아니라 어떻게 이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며 "결국 해양과 하천, 생명다양성 논의도 기후, 재난, 불평등, 식민지 논의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72년 출간된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를 인용했다. 무한한 양적 성장은 가능하지 않고 지구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다. 그는 저자들이 주문한 꿈꾸기, 평등한 네트워크 만들기, 배우기, 사랑하기를 강조했다.

그는 "출간 당시에는 배척받고 비난받았지만 현재 로마클럽의 예상은 현재 거의 들어맞았다. IPCC가 지난해 보고서를 발간할 때 참고한 중요한 책 중 하나가 이 책"이라며 "이 책에서는 해법으로 지속가능성 혁명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수단으로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내 골프장, 축산업, 양식장 등 여전히 들여다봐야 할 곳은 많다"며 "제주 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각 기후재난 현장에 대해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한 가운데, 윤여일 교수, 최성희.황용운 활동가가 사회 및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한 가운데, 윤여일 교수, 최성희.황용운 활동가가 사회 및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어 최성희 '비무장평화의섬제주를만드는사람들' 활동가와 황용운 '천막촌사람들' 활동가 토론을 이어나갔다.

황 활동가는 "첫 답사지였던 강정천 방문 이후 '제주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꾸려졌고, 전북 군산에서도 기후평화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전시에 우리의 활동이 소개되기도 했다"며 "우리가 함께 행동하고 걸음으로써 새로운 소통의 장이 형성되는 경험"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이것이 어떤 일이 될지는 모른다"며 "지난 10차례의 걸음들이 씨앗을 뿌렸다면 앞으로 새로운 걸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23일 오후 3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의 매듭을 짓는 보고회를 개최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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