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우주. 어떤 이에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또 어떤 이에겐 공상과학 영화를, 누군가에겐 존재에 대한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상상’에 가까운 공간이었던 ‘우주’가, 그 무엇보다 ‘현실’적인 단어 ‘산업’과 합쳐진다면?
“우주산업. 너무 생소하죠. 지금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우리가 우주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죠. 그런데 우리는 매일 우주를 주머니에 넣고, 손에 들고, 잠잘 때도 옆에 두고 24시간을 끼고 살고 있어요.”
지난 14일 오후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일곱 번째 현장 제주시 구좌읍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를 찾았다. 이에 앞서 시민들은 인근 동백동산습지센터 교육실에서 만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서의 우주산업이 지속가능한지, 기후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날 최성희 평화활동가는 멀게만 느껴지는 우주산업이 이미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는 풍경을 설명했다.
일상 장악한 우주산업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전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전화’의 기능을 넘어 실시간으로 해외 현장을 보여주거나 길을 안내해주고 물건 주문이나 금융 거래도 손안에서 이뤄지게 한다.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인터넷)가 만들어졌고 현대인의 일상을 장악해 가고 있다. 인터넷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본은 국경 없는 시장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기업들은 대중에게 ‘편리=행복’이라는 등식을 주입하며 소비자를 확보해 나갔다. ‘편리’라는 달콤함을 맛본 사람들은 ‘더 편리함’을 욕망한다. 우주산업은 그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최 활동가는 “우주라는 공간이 식민지로 활용될 때 발생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자본이 지구상에서 그랬던 거처럼 우주에서도 집약적으로 개발과 착취를 되풀이할 경우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주산업의 핵심은 결국 인터넷을 더 잘 연결시키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인공위성을 더 많이 쏘아올리자는 것”이라며 “과연 인공위성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주산업 또는 인공위성을 이야기할 때 ‘저궤도’라는 용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저궤도란 지상으로부터 고도가 160~2000km인 궤도를 뜻한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곳이 이곳이다. 이는 곧 우주산업의 핵심 공간이자 국가 간 또는 기업 간 논쟁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업용 인공위성, 언제든 군사적으로 남용 가능하다
최 활동가는 “우주에서도 개발로 인한 신음이 있다”며 “인공위성을 많이 쏘아 올릴수록 ‘인터넷이 빵빵 터지고 좋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만에 하나 다른 위성과 충돌을 일으켜 파괴된다면 갑자기 휴대폰이 안 터지고 인터넷 뱅킹도 안 되고 일상생활이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순히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지난해 10월 다음 카카오 서비스 장애로 인해 인터넷 마비가 어떤 피해를 낳는지 경험한 바 있다. 이는 국가 간 공격의 방식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최 활동가는 “상업용으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은 언제든지 군사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미국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줬다”며 “지구상에서 진행되던 패권 경쟁이 우주로 확대됐다. 우주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로켓 1회 발사, 비행기 하루종일 운항 연료 맞먹어”
우주산업은 기후위기를 가속할 우려도 안고 있다.
최 활동가는 “발사체 연료로 고체 연료와 액화수소 등이 있는데 차이는 비용이다. 쌀수록 환경오염을 많이 시키고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환경오염을 덜 시키는 건 비싸다”며 “군사적으로 많이 쓰이는 연료는 싸고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고체연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치 꿈의 여행처럼 말하는 우주여행 한 번은 인구 10억명이 평생 쓰는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며 “미국 우주프로그램 연구기관의 한 분석가에 따르면 보통 로켓 한 번을 쏠 때 쓰는 추진체는 비행기가 하루종일 운항하면서 쓰는 연료의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우주 난개발과 군사적 이용을 제재할 수단은 없을까. 있다. 일명 ‘우주조약’으로 불리는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의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이다. 유엔 총회의 승인을 거쳐 1967년 채택, 발표됐다. 대한민국은 1967년 서명했다.
해당 조약 4조엔 “핵무기 또는 기타 모든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를 설치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기를 외기권에 배치하지 아니할 것을 약속한다”라고, 9조엔 “유해한 오염을 회피하고 지구대권외적 물질의 도입으로부터 야기되는 지구 주변에 불리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중략) 연구를 수행하고 적절한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주산업 비판하는 연구·언론 보도 왜 없나
이날 최 활동가의 설명 이후 시민들은 대중이 가진 우주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제로 우주산업이 우리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선 학계와 언론매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제주시 아라동 주민 윤여일씨는 “오늘 설명을 들은 우주는 평소 매스컴에서 접하던 이야기와 많이 달라 놀랐다”며 “국내 학계에서 우주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말하는 학자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에서 우주산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발 논리와 맞물려 어떤 일이 터질지 걱정이 된다”며 “많은 사람들은 낙후된 지역에 고도화된 산업을 유치한다고 하면 근사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림 주민 황용운씨는 “제주도가 추진하는 우주산업이 기업 특혜로 흐르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며 “여기에 대해 도민사회가 어떻게 목소리를 낼지 지금 당장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덕 주민 김순애씨는 “우주산업이란 게 긍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닐텐데 국내 학자뿐만 아니라 진보 언론매체에서도 관련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기사만 본 것 같다”며 “시민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기울어져 있는 데 대해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강정 주민 오두희씨는 “‘우주’라는 이미지가 워낙 포장이 잘 돼 있어서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며 “군사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을 거 같은데 우주산업을 이해하려면 전문지식도 있어야 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일반 시민들은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국가위성운영센터를 찾기도 했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라 담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센터는 지난해 11월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인공위성을 통합 운영하고 이를 통해 얻은 위성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설립 당시 사업 부지 내 제주도가 소유한 구역에서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된 제주고사리삼 서식지와 곶자왈이 발견되면서 지역 환경단체가 도를 상대로 토지 매각 반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는 해당 서식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지를 매각했으며 현재 그곳엔 안테나 등 관련 시설이 들어섰다.
오영훈 제주도정, ‘제주형 우주산업 육성 비전’ 발표
한편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 2월 “제주도를 대한민국의 우주경제 혁신 거점으로 만들겠다”며 ‘제주형 우주산업 육성 비전’을 발표했다.
제주도에 상업용 소형 로켓 발사체 기지를 만들고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 관련 산업을 유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5대 추진 전략은 △J-우주 거버넌스·제도 구축 △생태계 조성 △산업 육성 △민간 우주 인프라 구축 △우주체험 산업화 등이다. 오 지사는 이를 구체화하는 방안으로 △위성정보 활용 △지상국 서비스 △소형큐브 위성 △우주체험 △민간 소형 발사체 등 5대 가치사슬을 제시했다.
우주산업의 특성상 막대한 사업비 확보가 필수인 상황에서 오 지사는 “민간기업에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1~2년 안에 1조원 이상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중 관련 기업들과 MOU 등 협력 방안을 제시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도는 지난 8일 우주기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아이옵스, SIIS, 컨텍 등 4개사와 우주산업 육성 및 혁신 거점 조성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도에 따르면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있으며, 컨텍은 우주 지상국을 구축해 위성정보를 수신‧처리하는 서비스를 제공, 아이옵스는 위성 관제 및 위성 영상처리, 위성 테스트 등을 수행하고, SIIS는 초고해상도 위성영상을 수출·공급하고 있다.
도는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제주 우주산업 육성을 위한 우주 거버넌스 구축 △제주 우주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수립 △지역인재 채용, 교육과정 신설 등 인재육성 △우주기업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덟 번째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오는 6월25일 서귀포 중문색달해수욕장에서 진행된다. 이곳은 해양수산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내 유일의 바다거북 산란지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네 차례 바다거북 산란이 확인된 바 있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해수부가 바다거북 방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