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관광객 규모 등 현 상황이 지속된다고 했을 때도 이 섬의 환경수용력이 될까 싶은 불안함이 있거든요. 여기에 제2공항이 들어서면 제주도가 아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 강정마을 주민 이상

"공군에서 7년 동안 항공관제를 했습니다. 제2공항 공군기지 계획은 지난 1996년도, 제가 군 생활할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었죠. 이 곳은 장애물이 많아 공항입지로도 좋지 않아요. 사업은 철회돼야 합니다." - 조천읍 주민 김명환

"공항이 지어지면 안되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는데, 국토부는 온갖 이유를 붙여다가 억지로 지으려는 것 같아요.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행진에 참여했어요." - 조천읍 주민 이광균

지난 9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위치한 오름 '독자봉'. 5분 남짓 걸어올라가니 금세 정상에 다다랐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제2공항 후보지가 한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사람들은 누군가 챙겨온 쌍안경을 돌려 써가며 구석구석 살폈다. 꽃가루를 머금은 소나무는 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송화가루를 털어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이하 기후행진)은 기후재난의 최전선 제주에서 난개발·환경파괴의 현장들을 직접 방문, 지역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 이날은 신산리사무소와 독자봉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을 진행했다.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참여자들이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을 오르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참여자들이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을 오르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 정산에서 참여자들이 제주제2공항 후보지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 정산에서 참여자들이 제주제2공항 후보지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 제2공항 사업에 대한 논의 열기는 수년 전 달궈졌지만 여전히 뜨겁다. 수년간 찬반갈등으로 지지부진 하던 사업은 최근 환경부가 국토부의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조건부로 협의 통보를 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국토부는 환경부가 협의 통보를 한 지 이틀만에 제2공항 건설 기본계획안을 공개하고, 의견 제시를 요청했다. 제주도는 이에 도민경청회를 4차례 열기로 했고 현재까지 2차례 이어졌다. 하지만 경청회장에서는 찬반 간 비난·욕설이 오가고 학생인권침해 논란까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 측인 도내 시민사회단체는 국토부에 "도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달라"며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 제주지사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를 사실상 거부한 상태다.

기본계획안이 발표되면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오영훈 현 지사는 도 차원의 검증 작업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시민사회가 검증에 나서고 있지만, 상당한 근거 자료가 담기지 않아 어려움까지 따르고 있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한적하고, 이웃간 사이도 좋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의 600년간 역사가 끊기는 것과 다름 없어요. 공항 문제로 시끄러워지면서 진작 마을을 떠나간 사람도 많아요. 그 자리를 투기자본들이 채우고 있고, 미래에는 이 지역의 주류가 되겠죠. "

신산리장 출신 강원보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임공동대표가 제2공항 반대 운동에 뛰어든 것은 나와 '우리'가 살던 공동체가 사라진다는 위협감이었다.

그로부터 수 년이 흐른 지금, 강 대표와 시민사회는 공항이 들어서면서 잃게 되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제2공항 후보지가 한 눈에 보이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 정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제2공항 후보지가 한 눈에 보이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 정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 소음과 분진

신산리는 국토부가 정한 제2공항 후보지 중 하나다. 주위 온평리·난산리·고성리·수산리 일대도 마찬가지다. 강 대표는 그 중 이착륙이 이뤄지는 수산·신산리 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역에도 소음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국토부는 하도·상도·종달 쪽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으니 수산·신산리에서만 이착륙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면서 "바람이 북서풍으로 불면 항공기는 바람을 안는 형태로 이착륙해야 안전하다. 소음 수치를 줄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또 "이 부근은 해녀들이 조업하는 곳인데, 지금도 빗물이 쏟지면 까맣게 흙탕물이 생기는 게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공항이 들어서면 분진 등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 제주공항처럼 제대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다면 찬성 측에서도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을 오르기 전 모여 있다. 
지난 9일 '제주기후평화행진 : 성산편'이 진행된 가운데,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소재 독자봉을 오르기 전 모여 있다. 

#. 오름 절취

앞서 기본계획안을 설계한 용역진은 바다 쪽으로 주 이륙 방향을 설계해 공항 소음을 줄이고, 비행고도를 높여 장애물 영향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수산봉 오름 절취는 없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날 행진에 참여한 박찬식 도민회의 정책위원은 추후 오름 절취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다 좌우로 선회를 해야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왼쪽(한라산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면 오름 10개를 잘라내야 한다"면서 "다만, 우리나라 지형은 산이 많아 실제로 선회로를 한 방향만 만드는 경우가 많긴 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오른쪽만 사용한다고 해도 대수산봉을 없애야 한다. 애초 오름에서 나온 흙을 활주로 설치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서 "국토부는 이 계획도 철회해 선회시 각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조종사의 숙련도에 따라 위험 발생 여지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설치된 공항은 작은 군사공항이 많았기에 큰 문제가 안됐지만, 현재는 민항기에 항공기 기체도 규모가 커졌다"면서 "만약 공항이 지어진다면 추후 대수산봉을 하는 수 없이 절취해야 한다. 수평을 맞추려면 제주 지형 특성상 암반을 파야하는데, 만약 무수한 동굴과 관로가 존재한다면 물길도 막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 농지는 사라지고, 도로는 확장되고

고원석 현 신산리장은 제2공항이 생기면 농지도 사라져 대부분의 임차농들이 갈 곳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52만평의 농지를 일구던 임차농들은 공항이 생기면 생업을 잃게 된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농민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던 사례가 똑같이 반복될까 걱정된다. 저 역시 농민으로서 제2공항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들' 사무국장은 제2공항 사업이 실제 이뤄질 경우, 현재 예상되고 있는 환경파괴 규모보다 클 것으로 봤다. 공항 설치는 배후도시, 기초시설 등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가 끝난 뒤 도로계획안을 통해 제2공항연계도로로 예산이 확보가 돼서 금백조로에 대한 새로운 공사가 같이 따라올 것으로 본다. 예상되는 길이는 약 16㎞로, 비자림로의 5배"라면서 "양쪽에 오름군락과 곶자왈이 어우러진 곳인데, 4차산으로 확장된다면 비자림로보다 환경파괴가 심각한 공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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