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참가자 중 어린이들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황용운 제공)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참가자 중 어린이들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황용운 제공)

폭우주의보가 발효된 16일,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여덟 번째 현장으로 서귀포시 동홍동 서귀포학생문화원을 찾았다. 본관 앞 널찍한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옆에는 소나무가 비를 머금는 중이었다. 이곳은 평소 어린이들의 학습·놀이 공간으로 쓰인다. 종종 시민들이 돗자리를 펼쳐 도시락을 먹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어린이와 학생, 시민 등 하루에 2000명이 찾는, 말 그대로 '시민광장'이다.

하지만 몇년 내에 사라질 풍경들이다. 최근 탄력을 받은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 때문이다.

제주도는 이 사업을 통해 서귀포시 도심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서귀포시 호근동 용당삼거리부터 토평동 삼성여고사거리까지 잇는 4.2km 구간에 왕복 4~6차선 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개설 구간 중 일부는 이 잔디광장을 관통하게 된다. 교육환경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이석문 전 교육감도 재임 당시 일대 녹지를 도로부지로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서홍동·동홍동 지역구 도의원들은 도로개설을 지속 요구했다. 후보 당시 우회도로 개설과 학생문화원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광수 현 교육감은 문화원을 삼매봉공원 내 1만5000㎡ 부지로 옮기기로 했다. 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2019년 4월부터 서명운동 및 기자회견 등을 벌이며 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서신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 소속 활동가는 해당 사업이 기후위기 가속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서귀포시 우회도로 개설 사업에만 한정되지 않은 문제로도 봤다. 모든 도로 개설·확장 사업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서신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 소속 활동가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서신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 소속 활동가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 주거환경 악화와 지구온난화

우회도로는 학생문화원 일대를 비롯한 녹지를 잠식시킨다. 서 활동가는 이로 인해 도로나 건물이 차지하는 불투수층이 늘어 우천 시 이중섭거리 아래에 위치한 태평로가 침수될 위험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도로 건설시 쏟아붓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도 문제다. 그는 "한여름 낮 아스팔트 도로와 나무그늘 아래를 비교하면 10도 이상의 온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면서 "도시열섬화로 열대야 일수도 늘어난다.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냉방가전을 가동시키면 탄소는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른바 '숲세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녹지가 풍부한 도시의 가치가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경제적 측면만 따져도 도로개설은 소수의 부동산 소유자가 단기적 이득을 보겠지만,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곳의 대다수 시민들은 주거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은 서홍천. (사진=황용운 제공)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은 서홍천. (사진=황용운 제공)

#. 생물 서식지 훼손 ... 맹꽁이·원앙·무태장어까지

그는 사업 구간인 서홍천 주변이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지인 점도 주목했다. 생태계는 치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다. 서 활동가는 하나의 생물종이 멸종하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겨 생물종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에는 도로건설도 일조하고 있다. 흙과 풀숲, 물웅덩이를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곳에는 맹꽁이가 살지 못한다. 이 영향은 인간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는 "어느 곳이든 그곳의 생태환경에 적절한 개체 수의 생물이 산다. 서식지를 옮기거나 이동통로를 마련한다고 해서 해초 개체 수는 보존할 수 없다"면서 "저감대책을 이야기하는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생태파괴를 막는 장치가 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피력했다.

또 도로개통으로 주변 난개발이 가속화되고, 차량통행이 늘면 도로를 통해 배출되는 오염물질(비점오염원)도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타이어와 브레이크패드 마모물, 배기통에서 유출되는 기름 따위다. 서 활동가는 서홍천에서 흘러내린 천지연 폭포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원앙과 무태장어 서식지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자료=서신심 제공)
(자료=서신심 제공)

#. 지역구 도의원들의 욕망

이 사업의 명분은 교통체증 해소였다. 도민들의 편의였다. 그러나 서 활동가는 근본적 이익을 얻는 극소수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유지'인 도내 정치인이다.

서 활동가는 "민선 7기 서홍동  도의원이었던 이경용 전 의원과, 김대진 의원(동홍동), 강충룡 의원(토평동) 등은 도로개설 추진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면서 "왜 도로사업을 빨리 추진하지 않느냐는 발언들을 2021년 도의회 회의록에서 매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속한 사업 추진을 적극 요구해 온 이경용 전 의원은 서귀포시내에 2020년 말 기준 공시가격 기준 36억원 가량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면서 "도로가 새로 생기면 그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극소수가 개발이익을 탐한 대가는 막중하다. 단기적으로는 시민 전체를 불편하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줄여버린다"면서 "그러나 정책결정권을 가진 자들이 미래세대에게 책임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녹지를 넓히고 보행자 중심의 걷기 좋은 도시를 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도로 면적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줄이고 차량 수 역시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제주의  가치 보존에도 걸맞다는 것.

서 활동가는 "제주에는 도로가 너무 많다. 차로가 아닌 보행로, 아스팔트가 아닌 녹지 산책로가 절실해진지 오래"라며 "지금이라도 흙담솔길, 서홍천 학생문화원 앞 녹지 동홍초  앞  차선  도로를  그대로  두고 그 외 공사부지를 도시텃밭과 녹지공원으로 만들어 쾌적한 생활환경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면, 서귀포 도시 가치가 오르고 기후재앙을 막는 데도 이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서신심 활동가의 발제를 토대로 참여자들이 소감을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서신심 활동가의 발제를 토대로 참여자들이 소감을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날 행진에는 28명이 참여했다. 대부분 자녀가 있는 서귀포시민이었다. 아이들 8명도 함께했다. 이들은 어느 참가자가 준비해 온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비건버거를 나눠먹으며 소감을 나눴다. 

서귀포시 주민 허미숙씨는 "최근 도시계획을 다룬 덴마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 차량 운행을 불편하게 하자는게 기조"라면서 "나무를 베지 않아 도로는 굽이지고, 시야 확보도 안돼 오히려 차량 운행자가 불편해서 자전거를 많이 타더라. 그래서 자전거도로가 활성화 돼 있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현재 개인 차량을 처분하고, 도보로 생활한지 7~8년이 지났다"면서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 기준을 세워두고 행동해야 한다. 환경과 미래세대를 위해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A씨는 "10대 시절 중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초등학생 때는 문화교육을 통해 제공되는 체험활동을 하고, 중고등생 때는 시험공부나 책 대여를 위해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공간과 잔디광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어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참가자 중 어린이들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기후평화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용운 제공)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한 가운데, 참가자 중 어린이들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광장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기후평화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용운 제공)

한림읍 주민 황용운씨는 "전국적 이슈인 양평 고속도로 논란만 봐도 일반 시민들의 생각보다 별다른 검증 없이 도로계획이 수립된다고 느꼈다"면서 "도로 계획은 타당성 검토 등 객관적인 검증보다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려는 도의원 등 개인이 도로 계획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이야기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윤여일씨는 "제주에서는 '도로 개설이 곧 발전'이라는 관념이 있는데, 이는 제주가 낙후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충분히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는 땅이지만 이러한 정서가 강하다"면서 "게다가 개발된 곳을 실제로 향유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오늘처럼 의사결정자나 정책입안자가 아닌 지역주민으로부터 발언권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기후평화행진은 지난 16일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8번째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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