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만큼 세상은 움직인다’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기후위기 현장을 선정, 답사를 통해 기후재난의 현주소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모색한다. 제주투데이는 행진에 동행해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주>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김수오 작가)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김수오 작가)

“아빠, 저 사람들은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여기서 들불축제를 하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거야.”

“왜?”

제주를 대표한다는 들불축제 개최를 일주일 앞둔 지난 4일 오후. 새별오름 일대에선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름 윗부분엔 ‘2023제주들불축제’라는 커다란 글씨를 따라 초록색 비닐 방수천인 일명 ‘갑바’를 둘러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맞은편 넓은 공터엔 몽골 텐트들이 설치돼 있었다. 

지난 4일 제주들불행사장 일대에 설치된 몽골 텐트 모양의 부스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제주들불행사장 일대에 설치된 몽골 텐트 모양의 부스들. (사진=조수진 기자)

유난히 파랗던 하늘과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제주들불축제를 취소하라”고 쓰인 손피켓을 든 시민 10여명이 눈을 감고 침묵 속에 시위를 펼쳤다. 

앞을 지나던 분홍색 옷을 입은 서너살 정도로 보이던 아이가 아빠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이 광경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물음에 아빠는 “글쎄”하며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잠깐 쳐다보다가 다시 딸의 손을 잡고 지나갔다. 

피켓 시위를 하는 이들은 제주기후평화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행진이지만 이번엔 들불축제를 막기 위해 긴급히 이날로 앞당겨 사람들이 모였다. 시민들이 들불축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1. 들불축제는 자연 학살이다. 

강정 주민 최성희씨는 들불축제를 “자연 학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강정에서 이미 경험한 ‘학살’을 언급했다. 군 기지를 들여놓기 위해 강정 주민, 나아가 제주도민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구럼비를 폭파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인간의 무지와 욕심과 이기로 오름에 있는 생태계 모두를 불태워버리는 들불축제 역시 그때의 ‘학살’ 행위에 크게 다르지 않다. 
 

2. 들불축제는 제국주의 문화다. 

강정 주민 엄문희씨는 들불축제를 “제국주의 문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4월 IPCC(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6차 평가보고서 중 제3실무그룹의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이 그룹은 보고서에서 ‘식민주의’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명시했다. 

제국주의란 자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 또는 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정책이다. 다시 말해 지배권력이 계속해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는 패권주의다. 

엄씨는 “우리 삶 곳곳에 식민주의가 있고 제국주의 문화가 존재한다”며 “제국주의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아픔이 없는 마음’이라고 한다. 오름을 불태우며 보이지 않는 생물체가 불에 타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프지 않는 것 또한 제국주의의 한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존재를 착취해가며 단지 즐거움을 위해서 큰불을 놓는다”며 “타오르는 불을 보며 인간들이 환호하는 사이 우리가 태워버리는 것은 불타 죽는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행위를 멈출 수 있다. 들불축제를 당장 멈추는 건 제국주의를 막는, 기후재앙을 막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 제주들불축제 때 불을 놓을 짚단들이 설치돼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 제주들불축제 때 불을 놓을 짚단들이 설치돼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3. 들불축제는 기괴한 캠프파이어다. 

한림 주민 황용운씨는 들불축제를 “기괴한 캠프파이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오름을 불로 태우는 광경을 축제라고 하는 자체가 기괴하다”며 “이 시대에 맞지 않은 캠프파이어 같다”라고 따졌다. 

이어 “들불축제의 유래라는 비석에 보면 ‘세계인의 사랑 받는 글로벌 축제’, ‘제주 관광의 꽃’, ‘제주다움의 정체성’, ‘생명, 평화, 만사형통 기원’ 등 많은 미사여구가 써있다”라며 “한마디로 관광 상품 수단으로 개발한 축제에 불과하다. 어떤 생명체가 여기 살고 있는지 모르는데 누가 어떤 권한으로 새별오름을 불태울 수 있는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앞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향해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들불축제를 보러 오지 마세요”라며 “이 반대 목소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호소했다. 
 

제주들불축제 중 메인 행사인 오름에 불을 놓은 광경. (사진=제주시 제공)
제주들불축제 중 메인 행사인 오름에 불을 놓은 광경. (사진=제주시 제공)


4. 들불축제는 역사에 대한 무지다. 

오라동 주민 송기남씨는 들불축제를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비판했다. 제주들불축제의 의미를 두고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목호(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던 몽고인)를 무찌른 전적지가 바로 이곳 새별오름이라는 기록을 홍보하곤 한다. 

이 역사에 대해 송씨는 “최영 장군이 제주도민 수와 맞먹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전투를 벌이며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들이 죽어나갔겠는가”라며 “제주를 초토화시키려 온 셈 아닌가. 우리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위령비는 세우지 못할망정 꽹과리 치고 불구경하는 축제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이 역사를 두고 제주들불축제가 ‘탐라의 역사’라느니, ‘제주의 역사’라느니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그때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6. 들불축제는 기름냄새다. 

강정 주민 이광희씨는 “지난 2002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불축제를 왔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름 냄새가 확 났다”며 “얼마나 많은 기름을 쏟아부었길래 새별오름이 저 멀리 있는데도 냄새가 났겠느냐. 그 후로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떠올렸다. 

이어 “제주 오름들은 그 자체로 산이다. 이 말은 곧 각 오름에 독립적인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그런 하나의 생태계 전체를 단순히 돈벌이를 이유로 태워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주도가 내거는 슬로건이 무엇인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한다는 거다. 어떻게 들불축제가 자연과 사람의 공존이라 말할 수 있느냐”며 “제주도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가장 먼저 파괴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7. 들불축제는 생명을 부정하는 행위다. 

아라동 주민 김선씨는 들불축제를 “생명을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는 “오름 전체에 불을 지르는 것은 모든 생명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자리에 있는 생명과 함께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했다. 한 편에선 새들이 오름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왼편에선 '제주들불축제'라는 글씨를 비닐 방수천으로 덮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했다. 한 편에선 새들이 오름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왼편에선 '제주들불축제'라는 글씨를 비닐 방수천으로 덮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8. 들불축제는 재앙을 앞당기는 행위다. 

서귀포 동홍동 주민 서신심씨는 들불축제를 “재앙을 앞당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날씨엔 기름을 마구 부어서 일부러 불을 붙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며 “기후위기 시대 화석연료를 쓰지 말자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분개했다. 

이어 “오름을 삶 터로 삼고 있는 생명체가 있는데 마구 불태운다는 것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코로나 팬데믹이, 기후위기가 왜 왔느냐. 인간이 자기 영역을 너무 많이 넓혀서 맞이한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9. 들불축제는 평화에 반하는 행위다. 

오라동 주민 숲정이(활동명)씨는 “제주 사람들은 예로부터 오름을 신성시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함부로 오르지도 않았다고 한다”며 “오름의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공존해야 제주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들불축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0. 들불축제는 그린워싱이다. 

시민들은 들불축제가 그린워싱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한다. 

실제로 제주시는 올해 들불축제를 두고 ‘친환경 축제를 지향한다’고 보도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그 근거로 축제장에서 쓰레기 줄이기와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홍보하는 에코관을 운영하고 행사 기간 나무 묘목을 나눠주고 플로깅(쓰레기 줍기) 프로그램도 준비한다는 것. 

이날 시민들은 “오름 전체를 불태우고 엄청난 탄소배출을 하면서 나무 묘목 나눠주고 분리배출을 홍보한다는 명목으로 ‘친환경’이란 수식어를 붙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얼마나 모순적인 행사인가”라고 한탄했다. 

이들은 들불축제 취소를 위해 온라인으로 연대 서명을 받고 있다. 이날까지 2200여명이 연명에 참가했다. 또 국가신문고를 통해 제주시에 대한 민원도 제출한 상황이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수오 작가)
지난 4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수오 작가)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나가던 한 관광객(충남 부여에서 온 조규옥씨)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나가던 한 관광객(충남 부여에서 온 조규옥씨)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제주기후평화행진이 '제주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한편 제주들불축제는 지난 1997년부터 시작됐다. 애월읍 어음, 구좌읍 덕천을 거쳐 4회째부터 새별오름에서 불을 놓았다.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전면 취소, 2021년엔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 지난해엔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3월에 발생한 강원도 산불로 인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취소된 바 있다. 

올해 들불축제는 오는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다. 행사에 소요되는 예산은 17억원이며 불을 놓는 면적은 38만㎡로 오름 전체 면적 52만㎡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오름에 불을 놓는 행사는 11일 오후에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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