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과 청국장. (사진=픽사베이)
콩과 청국장. (사진=픽사베이)

토종 푸른독새기콩을 수확하고 판매를 고심한 적이 있었다. 한 알에 100원씩 받아도 내 인건비는 안 나올 만큼 적은 양이었다. 첫 농사에 첫 수확물이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책상 위에 펴 말리면서 콩이 다 마를 때까지 어찌 팔아야 될까를 한참 고민했다. 

씨앗을 심고, 밭고랑 사이를 누비며, 검질을 매고, 콩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은 컸으나 막상 수확을 하고 나니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그렇다고 콩 한 알에 100원씩 팔 수는 없는 노릇. 

그 후로도 며칠을 고심하다 청국장을 띄우기로 결정했다. 물론 나는 청국장을 먹어본 적이 없었으며, 띄워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만든 청국장을 어찌 팔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내가 먹지는 않았으니 누군가에게 판매했을 테고 지금도 청국장은 만들어 팔고 있으니 시작이 그때부터였다. 

지금도 청국장을 가끔 띄운다. 콩 농사가 어려워 해마다 청국장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토종콩 농사를 지어 콩이 생산되면 어김없이 청국장을 띄운다. 어려운 콩 농사를 지어 홀랑 판매를 하면 나의 뼈를 갈아 넣다시피 힘들게 농사지어 생산된 콩에게도, 나에게도 미안하단 생각에 조금이라도 단가를 올려 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비품 당근으로 만든 당근주스. (사진=김연주 제공)

어디 콩만 그러한가. 당근으로도 주스를 만들고, 미처 판매하지 못해 빨갛게 익어버린 고추를 따서 고춧가루를 빻았다. 작두콩을 심어 여린 작두콩 깍지를 따서 썰어 말리고 덖어 작두콩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워낙 소량이니 언니네텃밭 온라인 장터에 내서 판매한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내가 집에서 무허가로 조금씩 만든 작두콩차, 청국장, 당근주스, 고춧가루는 판매할 수 없다. 지역에서 조그맣게 열리는 장터에서조차 맘 놓고 판매할 수 없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지고 말리거나 빻거나 짜거나 했을 뿐인데 가공품이라는 이유로 농민이 판매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위생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인 듯한데, 우리는 매일 우리 집에서 밥을 지어 먹고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그런 행위가 위생적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우리는 모두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소규모로 소농들이 자기 농산물을 가지고 가공하는 가공품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판매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당근주스를 몇 해 판매하다가 이제는 하지 않는다. 처음 당근주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역시나 비품 당근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너무 크게 자라버렸거나 수확 중에 잘려버린 당근, 혹은 너무 작게 자란 당근들을 밭에 그냥 버려두기가 안타까워 모두 다 세척하고 당근주스로 만들었다. 

비품 당근들을 모아오고 큰 대야에 수세미나 솔로 깨끗이 세척한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주서기를 돌려 짠다. 적당한 크기의 병에 담아 냉동실에 하루나 이틀 저장한다. 냉동이 잘 된 당근주스는 아이스백에 담아 아이스박스에 얼음팩과 함께 포장한다. 소비자에게 택배를 보내고 안내 문자를 보낸다. 받으시는 대로 드실 만큼만 냉장보관하고 바로 냉동보관하시길 당부 드린다.

판매되지 못한 비품 당근들. (사진=김연주 제공)

당근 생산하는 소농 몇 명이 모여 공동 작업장을 만들어 보자고도 했었다. 값이 많이 나가는 주서기(과일이나 야채를 넣어 즙을 짜내는 기구) 등 여러 가지 장비를 함께 쓰고, 공간도 좀 더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당근주스 짜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근을 수확하고, 월동무를 수확하고 밭고랑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저녁에 집안에서 다시 당근주스를 짜는 일은 정말 고되고 힘들었다. 비가 오는 날도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소농이 나서서 만들기 전에 지역 기술센터나 농협에서 적당한 수준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소농이 농산물을 생산해서 원물 그대로 판매하는 것은 생활에 보탬이 되기 어렵다. 농산물 가격이 달라진다면야 모를 일이나 이런 문제는 소농의 경작 규모를 키우는데도 한몫한다. 해가 갈수록 경작 규모는 늘어나고 그로 인해 더더욱 농지를 약탈하는 방식의 농사를 키워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농법이 되어간다. 

경작 규모를 늘리고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계수입을 늘려줄 것 같지만 규모만 커지고 더 오랜 시간 농업 노동에 시달릴 뿐 농민의 생활 수준은 그대로이다. 농지의 지력을 유지하면서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농사를 소농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6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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