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일이다. 우선 당근씨앗을 받으려면 2월이나 3월 당근수확을 할 때 한켠에 씨앗 받을 당근을 충분히 남겨둬야 한다. 

밭을 갈아 정리할 때 트렉터를 운전하는 이들은 모조리 갈아엎기를 선호한다. 밭 가장자리라 하더라도 “요만큼은 남겨서 갈아주세요”라고 요구하면 화를 버럭 내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분명 표정은 좋지 않다. 

언제적 구시대적인 농사를 하느냐고 핀잔도 들어야한다. 자신이 그리 농사 짓지 않는다고 나의 농사법은 순식간에 구시대적인 농법이 되고 특이한 농사법이 되고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비아냥의 대상이 되곤 한다. 

밭을 갈 때부터 걸리적거리는 씨앗받기용 당근은 장마철 즈음 씨앗을 받아 갈무리할때까지 밭 한켠에 자리 잡아 애물단지 역할을 제대로 한다. 

당근 후작으로 감자농사를 짓는다고 해보자. 감자를 파종하기위해 골을 만들어야 하는데 남겨놓은 당근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감자골이 자꾸만 잘린다. 그렇잖아도 울퉁불퉁해서 감자골이 길고 가지런하게 나오지 않는 제주의 밭에서 더 잘려 볼품이 없다.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당근은 봄이 되어 기온이 오르면서 꽃대를 올린다. 4월이 되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유채꽃사이로 벌과 나비가 윙윙대며 꿀을 모을 때 즈음이면  당근의 영양은 초록색으로 잎을 키우고 잎의 키도 키운다. 

좀 더 태양과 가까이 태양의 에너지를 더 받으려고 키를 키우고 몸집을 키운다. 감지는 이제 싹이 트고 북주기 작업도 한다. 그 사이 태양빛을 받은 풀들이 왕성하게 자랐으므로 풀뽑기 작업도 한번 해 준다. 물론 씨앗 받을 당근밭에도 말끔하게 검질매기 작업을 해준다. 

감자는 하지 즈음에 수확한다. 3월이면 심고 6월이면 수확을 하니 그 큰 알을 키워내기에 석 달정도, 100일이면 충분하다. 식물이 태양빛을 모아 양분으로 저장하는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당근도 몸집을 키워, 키워 5월 중순 즈음에는 해바라기처럼 둥글고 큰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는 하나하나의 꽃이 넓은 판 위에 둥글게 둥글게 열매를 맺고 자라지만 당근은 작은 꽃다발이 수도 없이 여러 개가 또 하나의 큰 꽃다발을 만들어 씨앗을 만들어 키운다.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이제 더 강렬한 태양빛으로 씨앗을 튼실하게 영글어 내년을 약속할 수 있게 된다. 흰색으로 꽃을 피우고 순간 분홍색이나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점점 갈색으로 에너지를 저장해둔다. 나의 미래가 보장되는 순간이다. 

씨앗이 잘 영글어 수확이 충분하면 벌써 내년농사는 든든하다. 동그란 꽃다발을 잘라 수확하고 잘 말려 두었다가 씨앗을 잘 털어 갈무리해두면 내년 당근농사에서 씨앗은 확보된 것이다. 씨앗을 먼저 털어 넓은 대야에 두고 바짝 말려도 된다. 

작년 여름에 뿌려 당근을 수확하고 씨앗을 감무리 하는데 까지는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씨앗을 받지 않았다면 길어도 8개월이면 충분하다. 씨앗을 받기 위한 시간이 오롯이 석 달이 더 필요하다.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적어도 3개월의 시간을 더 필요로 하고 그 시간동안 농민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시간이 따로 더 걸리지 않는 작물들도 더러 있다.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콩 종류는 수확과 동시에 씨앗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별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배추나 유채, 당근 무 등 여러 가지 작물들은 씨앗을 얻기 위해 수확마무리 한 후에도 긴 시간동안 씨앗이 영글기 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는 그만큼 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간동안 씨앗으로 자랄 작물이 자라는 공간에 감자를 심으면 바로 환금이 가능하다. 더 효율적으로 밭을 쓸 수 있고 덜 번거롭다. 씨앗이야 내년 파종시기가 되어서 한 캔 사면 그만이다. 당근농사가 주 인 이 동네에선 당근씨앗을 원하는 품종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토종 흰당근 씨앗은 그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여러 가지 품종의 당근씨앗을 구미에 맞게 구입할 수 있지만 때로는 전혀 구할 수 없는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목화생산 농민들은 GMO목화를 재배하다가 염소가 죽어나가고 빚더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이 많아지면서 토종목화씨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여러 당근 씨앗 중에도 요즘 농민이 가장 선호하는 씨앗은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상자에 담았을 때 고르게 담기는 것, 마트에 진열했을 때 색이 고운 것, 저장이 오래도록 잘 되는 것 등등이 농민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다양하게 종자가 개량되어 농민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소득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시장에 유통되는 당근은 이것 아니면 저것 정도로 제한적이다. 그 다양함속에 토종씨앗도 한자리를 차지하면 더 좋겠다.  

토종 토마토 농사를 올해 처음 지어봤는데 씨앗을 많이 받아두었다. 내년에 토마토를 심는다 해도 그리 많은 씨앗이 필요하지는 않을텐데,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물었다. 올해 심은 토종 토마토씨앗을 준 곳으로 보낼 씨앗이다.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 흰당근. (사진=김연주)

토종토마토 농사를 짓지 않던 내가 토종토마토 씨앗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토종 씨드림에 문의하고 대량으로 씨앗을 구했다. 한 해동안 토종토마토 농사를 짓고 수익도 얻었다. 

그 소중한 씨앗을 한 푼 주지 않고 나눔을 받았으니 내년 내후년 토마토 농사를 지을 여러 농민들을 위해서 씨앗 곳간을 채워둬야 하지 않겠는가? 토마토 씨앗을 채종하고 잘 마르도록 두었다가 습하지 않게 종이에 싸서 잘 마르도록 더 둔다. 한 두달 후 잘 말랐는지 확인하고 보관해둔다.

씨앗이 왔던 토종씨드림으로 보내고 조금은 나눔용으로 남겨둔다. 내년에도 내 밭에는 토종 토마토가 노랗게 익어갈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토종토마토 씨앗은 여기저기서 대를 이어 살아 있을 것이다.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5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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