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은영 제공)
(사진=김은영 제공)

‘1817년 10월 21일. 관청 창고지기(官廳庫子)를 곤장 9대, 색리(色吏)를 곤장 3대로 다스렸다. 순무씨 기름을 참기름 대신으로 쓴 것이 발각된 죄이다!.’

주로 대민행정을 곤장으로 다스린 대정현감 김인택의 관아일기에 등장하는 음식 관련 죄목의 처벌 내용 중 한 가지이다. 다른 날 기록에 남의 말을 훔쳐 팔아버린 죄인에게 내려진 죗값이 곤장 10대인데, 이 참기름 사건을 비롯해 음식 관련 사건에 내려진 곤장의 수가 다른 범죄에 비해 특히 셌던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중국은 땅콩을 비롯한 여러 열매의 기름을 썼지만, 조선의 조리용 기름은 참기름이다. 조선시대 조리서 정조지에도 기름이라고 지칭되는 것은 전부 참기름이다. 진유(眞油)라고 했다. 한 종류의 기름을 썼으니, 어느 한 해에 기후가 좋지 않아 깨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면, 그해에는 당연히 기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참기름은 어디 두고 색깔이 비슷한 순무의 씨를 써서 곤장을 열두 대씩이나 맞아야 했던 것일까? 발각이라고 했으니 몰래 빼돌린 것이었을까?

(사진=김은영 제공)
(사진=김은영 제공)

제주의 깨는 지역에 따라 달랐는데, 성산 수산리에서는 대부분 검은 깨를, 동복에서는 흰깨를 키웠다고 한다. 누런 깨는 늦게 보급이 된 종자이다. 검은깨보다 흰깨가, 흰깨 보다는 누런 깨가 기름이 많이 난다.

검은깨를 제사음식에 쓰면 자손에게 주근깨가 생긴다는 터부는 기름이 많이 나는 흰깨를 준비하지 못한 집의 속상함이었을까, 준비한 집안에서 퍼뜨린 우월감이었을까? 희고 고운 피부의 자손이라도 얻어야 어렵게 장만하는 제사의 공덕이 있는 것이라 여긴 누군가의 한 서린 바람이었을까.

제주인들은, 흙의 깊이도 깊지 않은 돌밭인데다 생산성이 낮은 척박한 화산토의 작은 밭들에 식구들이 먹을 몇 가지 작물을 심고 거두기도 빠듯해서, 깨만 심기 위한 밭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한 해 먹을 식량인 조나 산듸 같은 것을 심은 밭의 가장자리에 특별한 날 음식의 양념으로 쓸 요량으로 몇 줄 심었던 귀한 작물이었다. 깨뿐만이 아니라 울타리 콩 같은 것들도 땅을 차지하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알뜰한 작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깨를 거두면 그것을 기름낼 수 있는 집이 큰 마을에 하나쯤 있었던 모양이다. 큰 통나무 속을 깎아 막대기로 지렛대 삼아 위에서 누르는 기름 압착기를 가진 동네 기름집에 가면 불 지핀 커다란 솥에 각자 가지고 온 깨를 볶는다.

기름 틀 차례가 올 때까지 절구가 있는 방에서 두런두런 모여 각자의 깨를 빻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겠다. 그렇게 뽑아낸 귀한 참기름을 팽(병)에 고이 담아 집에 와서는 기름에 있는 습기를 없애기 위해 다시 한번 끓여 떡이나 반죽 같은 것을 한두 개 튀겨 준다. 그러면 기름이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이 되었다.

보통의 살림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 음식에 기름이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고기나 생선 흰쌀, 참기름 같은 특별한 재료들은 집안에 제사나 있어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날의 음식 호사였다. 조금이라도 깨를 뿌려 먹을 수 있던 날의 나물 반찬은 얼마나 고소했을까. 그나마 조금 심은 깨는 익는 시기가 항상 태풍의 계절과 맞물려 있어서,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거나 말리는 작업을 못하면 한 해 먹을 참기름을 놓쳐 버리기 쉽다. 

깨 말리는 모습. (사진=김은영 제공)
깨 말리는 모습. (사진=김은영 제공)

그러니 제일 아래 꼬투리가 익기 시작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을 잘 택해 깨를 베어내, 깨가 떨어지지 않도록 세워서 일주일 정도 바짝 말려 주고 난 후, 방망이로 한번 먼저 익은 것을 털고 다시 일주일 말렸다가 남은 꼬투리들을 마저 털어 내기를 몇 번 반복해야 된다. 

그것도 꼬투리가 햇빛을 먹어 바삭한 뜨거운 낮 시간에 털어 주어야 하니 농사 중에 깨농사가 제일 힘이 든다고 하시는 것이다. 꼬투리가 더덕더덕 많이 붙어나서 이름이 던덕 깨, 꽃이 핀 지 40일 만에 거둔다고 40일 깨, 60일깨, 90일 깨가 있다. 

(사진=김은영 제공)
(사진=김은영 제공)

늦게 거두는 깨일수록 기름이 고소하다고 하지만 태풍을 만나 꼬투리 여무는 때에 비라도 맞으면 콩나물처럼 깨에 뿌리가 내려 못쓰게 된다니, 그런 고단한 노동으로 얻은 참기름을 허투루 썼다면 치도곤을 내릴 만도 했겠지만, 곤장 한 대의 위력이 얼마큼인지 모르니 과한 것인지 적당한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참기름과 찹쌀, 두 가지로 만드는 죽은 단순하면서도 향이 좋고 쌉싸름한 찹쌀의 맛이 고급스럽다. 참기름의 풍미를 함빡 느낄 수 있는 진유찹쌀죽.
1. 찹쌀 두 컵을 깨끗하게 씻어 하룻밤 물에 불려 물을 빼 둔다. 
2. 물 1200cc정도 팔팔 끓여 한쪽에 두었다가
3. 참기름을 듬뿍 두른 뜨거운 솥에다 쌀이 꼬들해질 때까지 볶고.
4. 뜨거운 물을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부어가며 한쪽 방향으로 저어준다.
5. 간은 제일 나중에 소금으로 마무리한다.

진유찹쌀죽. (사진=김은영 제공)
진유찹쌀죽. (사진=김은영 제공)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

우리는 현재에 산다. 과거에서 발원해 끊임없이 흐르며 미래를 향한다. 잊혀져 가는 일만 가능한 흐름 속에서 음식도 그렇다. 냄비 안에서는 늘 퓨전이 일어난다. 잊어버린 현재의 것들을 통해 현재 음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의미있겠다. 최근 출간된 서유구 선생의 <임원16지> 중 '정조지'에 수록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맛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오래된 미래의 맛을 통해서. 

 

김은영 요리연구가.

코삿헌 음식연구소 운영. 뉴욕 자연주의 요리학교 NGI 내츄럴고메 인스티튜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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