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겨울에는 북구의 차가운 서정이 느껴지는 실내악풍의 클래식이나 ECM사의 음반을 자주 찾게 된다.

봄에는 자연의 울림이 느껴지는 포크음악 위주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여름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선 레게나 삼바,락앤롤등 역동적 리듬의 음악들이 어울린다.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재즈다. 한여름의 뜨거웠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거무스름하게 색이 바랜 나무들과 길가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들을 볼 때면 불현듯 멜랑꼴리한 음악들이 그리워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죽은 잎새’이라는 원제를 가진 ‘Autumn leaves’다. 애조 띤 멜로디와 선명한 곡 구성으로 재즈 음악가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인데 그중 Cannonball Adderley의 58년작 [Somthing Els]에 수록된 버전이 일품이다.

Ahmad Jamal Trio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도입부는 피아노와 더블 베이스의 반복되는 도리안 모드 벰프(Vamp)위에 날카로운 관악기 섹션으로 긴장감을 높이며 시작한다.

이어서 이 곡의 메인 멜로디가 터져 나오는데 마일즈 데이비스 특유의 꺼끌한 뮤트 트럼펫 연주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드라마틱하다.

이 앨범의 주인공인 캐논볼 애덜리는 관악기 특유의 레가토 연주를 통해 사색적이면서 빼어난 서정의 연주를, 미니멀한 연주의 행크 존스는 헤드 멜로디를 밀집한 독특한 프레이즈를 들려준다. 11분이 넘는 긴 곡이지만 각 멤버들의 미려한 연주를 듣다보면 매번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캐니 버렐이 연주하는 ‘Autumn in Newyork’ 또한 이 계절에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다. 잎을 떨 군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바짝 마른 통에서 울리는 기타 사운드는 드럼과 베이스의 섬세한 음률을 타고 이 가을의 서정을 노래한다.

리버브등의 공간계 이펙터를 쓰지 않고 진공관 앰프와 속이 빈 깁슨 175 할로바디 기타만으로 연주하는데 몽글하고 따스한 음색의 기타톤은 우수에 찬 멜로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사와 목소리만으로 계절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 있다. 박성연의 ‘세월이 흐른 후에’를 듣게 되면 아련한 늦가을의 정서가 주위를 감싼다.

1979년 [클럽 야누스]를 연 이후 쉬지 않고 재즈를 연주했던 그녀는 아쉽게도 20020년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흐른 후에’는 1989년 발매된 <박성연과 Jazz At The Yanus>에 수록돼 있는데 야누스 무대에서 오랜 시간 교감했던 멤버들과 함께한 앨범이다. 직접 쓴 이 곡을 그녀는 거칠고 메마른 목소리로 노래한다. 아니 노래한다기 보단 시를 읽듯이 한 줄 한 줄 진솔하게 읊조린다.

“나는 그 밀밭 오솔길 사이로 조용히 혼자 걷곤 했지/지는 해를 보며 쓸쓸해지는 마음을 달래곤 했지”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통해 그녀가 들려주는 심상은 가을날의 허한 고독감 그 자체이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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