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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탐구생활]재즈 혹은 존재의 증명, 팻 마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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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탐구생활]재즈 혹은 존재의 증명, 팻 마티노
  • 양진우
  • 승인 2021.11.30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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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한 남자는 랭보를 떠올리곤 그의 비극적 삶에 대해 생각하다 순간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증명할 기록들을 찾지만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다만 마시고 있던 커피가 ‘이디오피아 하라’인 것과 커피 잔이 진품인 것, 자신이 앉은 의자가 파리의 카페의자로 불리우는 토넷 No.14에 대해선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정지아 작가의 단편 <존재의 증명>에 대해 간략한 후기를 노트에 적고는 인터넷 창을 열었다. 오랜만에 재즈기타 커뮤니티에 접속하니 게시판에는 한 음악가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올라왔다. 노년의 나이에도 절정의 기량을 보여 주던 기타 연주자 팻 마티노(Pat Martino). 그 역시 한창 음악 활동을 하던 시절에 기억상실을 겪었다.

1944년에 태어난 팻 마티노는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7살 때부터 기타를 잡았고 15살에 프로뮤지션으로 데뷔했다. 그러다 67년 존 핸디 퀸텟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인 기타연주를 시작했고 실력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몇 몇 기타리스트들은 짐을 싸고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방안에 틀어 박혀 연습만 해야 했다고 한다. 그의 진취적이며 비범한 비밥라인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연주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완벽한 연주를 위해 섬세하게 연습해야 했고 자신의 연주에 대해 무척이나 예민해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 뇌동정맥 기형(AVM)이라는 병에 걸렸고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가족은 물론이고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치명적인 기억상실증은 무기력과 절망만을 남겼다. 어느 날, 친구가 들고 온 자신의 앨범을 듣고는 다시 기타를 잡아 기초부터 연습해나갔다.

고통스러운 사유의 시간과 치열한 연습의 과정 끝에 10년이 지난 1987년 <The Return>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화려하고 직관적인 연주가 그대로 담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은 <The Return>앨범 이후로 10년 동안 칩거해 있던 팻이 1997년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All Sides Now>다.

여러 장르의 기타리스트들을 초대해 기획한 이 앨범은 그의 전매 특허인 소울재즈를 기본으로 다양한 편성의 색깔 있는 연주를 담고 있다. 록 기타리스트들의 선생으로 유명한 Jo Satriani, 독보적인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Michael Hedges, 전설적인 기타영웅 Les Paul과 독자적인 스타일리스트 Mike Stren, 현란한 솔로기타 테크닉을 지닌 Tuck Andress등이 참여해 팻 트리오를 중심으로 각자만의 개성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더불어 정통 재즈 연주를 들려주는 Kevin Eubanks와 7현기타의 독특한 연주법을 지닌 Charlie Hnter등 (지금은 대가가 된) 신예들의 연주도 좋다. 무엇보다 독보적인 음색의 보컬리스트 Cassandra Wilson의 참여가 눈에 띠는데 팻과 듀오로 조니 미첼의 명곡 “Both Side Now"를 담백하게 들려준다.

"재즈는 삶의 방식이지 음악의 한 형태는 아닙니다. 당신이 어디론가 정처 없이 걷게 된다면 그저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즐기세요. 그러면 즉흥연주를 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기타는 단지 악기일 뿐이지요."

Pat Martino(1944-2021). 그의 명복을 빈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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