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축제’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주지역에서 진보의 깃발을 내건 후보들은 단 한 명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 득표율은 지난 선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공고한 거대양당체제에 기반한 여러 요인이 먼저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 외적 요인들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인 상수입니다. 시선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내부로 돌려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제주투데이는 지역 시민들이 직함과 대표성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으로 얘기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제주지역 진보정치 및 진보정당의 한계를 점검하고, 진보진영의 현실정치 참여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에 참여했던 진보정당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담고자 합니다. 그렇게 ‘축제’를 이어가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공동 전술이 부재하다" 부장원(그래픽=김재훈 기자)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공동 전술이 부재하다" 부장원(그래픽=김재훈 기자)

제주지역 진보정당 혹은 진보정치는 이번 선거를 통해 현재 서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지난 네 차례의 제주도 지방선거 역사에서 진보정당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왔다. 2006년 민주노동당이 20%를 득표한 이후 2014년을 제외하곤 매번 15%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직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진보정당 전체 득표율 합계가 비록 소수점 단위이긴 하나 20%를 넘기도 했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는 정의당과 진보당, 녹색당을 다 합해도 정당 득표율은 10%를 겨우 넘겼다(기본소득당도 출마했으나,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4년 전에 비해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치열했던 대선 직후 치른 선거라 보수양당으로 표가 집결되는 경향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유가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그동안 진보정당은 주로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대중들이 호응하면서 성장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그중에는 무상교육처럼 실제 대중의 삶을 변화시킨 성공사례도 있다. 반면 정책 제시만으로는 진보정당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진보정당도 이를 알고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주장하며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거대양당 독점 구도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안으로 진보정당은 비례대표제 확대와 실제 당선을 목표로 당력을 쏟기도 했다.

6.1지방선거 제주지역 정당득표율(표=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
6.1지방선거 제주지역 정당득표율(표=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지역과 현장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경험적으로 알 수 있듯이 진보적 정책들이 사회적 동의를 얻는 순간 거대양당이 그를 수용하고 지지율까지 덤으로 가져가 버린다. 공중전도 중요하지만 지역 내 안정적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을 외면하다 선거에 임박해서 자의든 타의든 후보로 나서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며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에 기반해야 좋은 정책도 나올 것이고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지역활동을 오래 해 온 후보가 있는 곳에서 정당 지지율도 높게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지적을 뻔한 얘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거꾸로 보면 ‘뻔하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는 말이다. 당연한 것을 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진보정당들에게 아쉬운 지점이 또 하나 있다.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공동 전술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한국의 진보정당은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성장해왔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내분 등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거대보수양당 체제 속에서도 진보정당은 각자의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무기로 선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노동과 복지, 환경 등 대중의 삶과 직결된 의제들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여러 진보정당이 출현하면서 오히려 선택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다.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가치를 이유로 각자 활동하면서 지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원적인 현대사회에서 가치를 중심으로 각자 다른 정치를 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진보정당의 장기적 목표가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각 세력들의 입장 차이가 크지 않다면 정세에 맞춰 다양한 정치적 연대나 연합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 구체적인 방식이 진보진영 선거연합이든 후보 단일화든 다른 무엇이 됐든 간에 중요한 것은 보수양당 영역이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지역 대중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선거공학에 매몰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진보정당이니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중정당으로 서고자 한다면 계몽만 할 게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 호응하는 정치도 해야 한다. 작년에 어떤 자리에서 들은 말이 떠오른다. “(진보정당들이 저마다) 자기 입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지금 고통받고 있는 민중을 생각해야 한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예상대로 집권 내내 헛발질을 했던 야당은 완패했고, 그 헛발질 덕에 대통령을 당선시킨 여당은 희희낙락하고 있으며, 진보정당은 여전히 선택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진보정당들이 함께 지역과 연대하는 날을 벼려봤으면 좋겠다. 제주지역의 진보정당들이 천하삼분지계의 전략을 세워 공고한 보수양당 구도에 균열을 내는 그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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