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늦으리 '92' 앨범 커버.
'내일은 늦으리 '92' 앨범 커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다가온 무더위를 몸소 느낀다. 절정에 다다른 무더위와 이를 견뎌내야 하는 이 계절이 두렵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리쬐는 햇볕, 이로 뚝배기처럼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푹푹한 열기 그러다가 지겹도록 매섭게 쏟아지는 폭우들과 습도 등은 이미 지구가 아프고 병들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매년 겪어야 하는 이 여름은 더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에 더 두려울 뿐이다.

2년 전이었을까. 개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LP <내일은 늦으리 '92>를 구매했다. 말 그대로 92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음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넥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윤상, 신승훈, 이승환, 봄여름가을겨울 등 당시 인기뿐만이 아니라 음악성까지 인정받은 (당시) 젊은 뮤지션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발매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은 곡들이 있기도 하다.

<내일은 늦으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네 차례 열린 "환경보전 슈퍼 콘서트"이며 그것에 비롯돼 발매된 앨범이기도 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환경보전'이라는 메인 기획의도에 맞추어 각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곡을 선보였다.

1992년 이전부터 환경에 대한 우려와 이에 비롯된 시도들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것은 국내 최초였다. 이미 30년 전부터 서울 한복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은 늦으리"라 말했고, 이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로 송출됐다. 1992년 "내일은 늦으리"라 외친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1996년 조선일보의 <내일은 늦으리> 관련기사(link)를 보면, '환경보전'보다 '톱스타 총출동', '신세대 스타', '인기절정' 등 키워드들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연 피날레를 놓고 아티스트들 간 기싸움이 벌어진 해프닝도 전해진다. 장발이라는 이유로 특정 가수의 무대는 편집되기도 했다 결국 '환경보전'의 <내일은 늦으리>는 '톱스타 총출동'의 <평화콘서트>로 변형(이라 하고 변질이라 하겠다) 되는 것을 웃픈 끝맺음을 하였다. 그야말로 용두사미다. 그러나 그 당시의 '용두'에 해당하는 기획의도는 큰 가치를 갖고, 거기에 더해진 92년도의 참여 뮤지션과 음악은 그 가치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SAVe tHE AiR GREEN CONCERT' 앨범 커버. 
'SAVe tHE AiR GREEN CONCERT' 앨범 커버. 

그 이후 환경을 위해 음악인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그중 하나는 2011년, 2012년 두 차례 발매된 <SAVe tHE AiR GREEN CONCERT> 앨범이다. 당시 인디신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참여로 진행된 환경 캠페인이다.

'GREEN'은 자연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지만 이 캠페인을 주최한 항공사의 대표색이기도 했다. 인디음악이 다시 젊은 대중에게 널리 들려지는 시점과 자연을 위한 젊은 항공사의 의도는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캠페인 자체는 오래가지 못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캠페인의 실제 앨범이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고 종이 케이스를 이용해 달력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시 환경을 위함이다.

K-POP, 특히 아이돌의 음반은 감상을 위한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포토카드 소장과 팬사인회 같은 이벤트 참여를 위한 목적에 가깝다. 이는 한 사람이 수십장(많게는 백장 이상)씩 음반을 구매하는 현상까지 다다랐다. 마땅히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 자연히 음반이 버려지는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발생됐다. 이러한 팬덤 활동(타 팬덤과의 경쟁)과 더불어 최근 빌보드차트 입성을 위해 음반판매량이 중요해지는 시점이 되면서 문제는 도드라진다.

이는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들로 발매가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이다. 심지어 CD가 없는 QR코드나 NFC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음반(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까?)의 시장도 커지고 있다. 환경을 위한 음반을 고민하는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지난 최근 이야기이다. 이러한 흐름에 위 캠페인이 조금이나마 일조를 했다면 '용두'는 맞고 '사미'는 아닐 것이다.

'바라던 바다' 앨범커버. 
'바라던 바다' 앨범커버. 

2019년에 발매된 앨범이자 프로젝트인 <바라던 바다>는 제주바다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우며(비치코밍) 느낀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최종 목표는 음악들을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LP에 담는 것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재미있고 의미있는 아이디어로 비롯된 시도는 앞으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과정에 작지 않은 부분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의 지양과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소재의 활용이 아닌 재활용된 소재로 음반이 발매가 되는 순환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주바다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해양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화두로 기획되고 시도한 이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용미'의 결말을 맞을 미래, 이 프로젝트는 좋은 예시로 남게되길 바란다.

<내일은 늦으리 '92> 메인 테마곡인 <더 늦기전에>의 후렴구 가사는 아래와 같다.

그 누구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 이젠 느껴야 하네 더 늦기전에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 밤하늘을 바라 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저 아이들 중 하나는 필자다.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의 두 눈에 반짝이는 별들을 담는 것은 드물다. 이미 오늘도 늦어버렸을까. '사두'의 현실이지만 미래에 맞이할 '용미'에 희미한 희망을 기대한다. 기대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30도 실내 온도의 집에서 웃통을 까고, 냉수를 삼키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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