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블루스 2집(1989) 앨범. 
신촌블루스 2집(1989) 앨범. 

여름이 끝났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이 한번 쏟아지면 멈출 줄 모르는 체질 때문에 싫어하는 계절이다. 정말 힘든 기간이었다. 괴로운 여름날 속에서 기다렸던 것은 그래도 결국에는 다가올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청량하고 맑은 공기다.비로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바야흐로 운동과 나들이, 등산을 뽀송뽀송한 마음과 몸으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몇 년 전부터 MZ 세대 사이에서도 등산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에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물론 있었겠지만, 멋진 풍광이 펼쳐진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캠핑이나 나들이에 비해 짐이 적고 난도도 낮다는 점도 주요할 것이다. 나는 주로 하산하고 친구들과 술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세 차례 선정되기도 한 신촌블루스 2집(1989) 앨범의 수록곡 '산 위의 올라'. 대한민국 포크·블루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정선'이 작사·작곡한 곡이자 직접 보컬로 참여한 곡이다. 기타 깨나 쳐봤다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전설의 교본 <이정선의 기타교실>의 그 주인공이 맞다. 산 위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지는 훵키한 사운드의 키보드 인트로로 시작하는 이 곡은 직선적으로 뻗어나가는 시원한 보컬에 교차로 연주되는 기타, 그리고 곡의 주요한 감정인 외로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기타솔라가 일품인 곡이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 반복적으로 불리는 "대답"은 외로움에 외친 큰소리가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그것은 원하지 않았던 "대답"으로 다가와 그 감정을 더욱더 부각시키는 듯하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5집 앨범 'MONO'.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5집 앨범 'MONO'.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5집 [MONO(2018)]에 수록된 곡 '등산은 왜 할까'는 익살맞은 기타와 어차피 내려올 텐데 왜 등산을 하는지에 대한 뜬금없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힘든 역경을 이겨내 정상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해방감으로 비롯되는 행복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등산을 삶의 굴곡에 대입한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어차피 다시 우리는 그 정상에서 내려올 것이고, 그 저점에 돌아오는 순간에 더 크게 돌아오는 허무함과 슬픔의 감정에 주목한다. 굴곡 없이 평탄한 감정이 지속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드렁한 정서를 등산에 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하'라는 뮤지션의 천재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5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장기하의 얼굴들'은 공식적으로 활동을 접는다고 선포했다. 그들은 밴드로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앨범이자 이 이상의 훌륭한 앨범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2008년 '싸구려 커피' 신드롬으로 인해 한국 인디씬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이른바 '인디계의 서태지'로 불렸던 그들. 10년 동안의 활동을 산에 대입하자면, 그 커다랗고 높은 산 정상에 도달한 채 대중에게 '최고'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으로 생각된다.

제주를 대표하는 밴드 '사우스 카니발'의 앨범 '몬딱도르라'.
제주를 대표하는 밴드 '사우스 카니발'의 앨범 '몬딱도르라'.

나의 외가는 제주 동부 성산읍 수산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 용눈이오름을 왼편에 낀 채 차로 달려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측에 보이는 '높은오름'을 '노꼬메오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노꼬메'라는 이름이 '높은 뫼'라는 의미고 이것은 '높은오름'의 이름에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 약 25년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이 사실은 올해 초 친구와 노꼬메오름을 처음 올라가면서 알게 되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밴드 '사우스 카니발'의 [몬딱도르라(2013)]의 수록곡 '노꼬메오름'은 서부 애월읍에 있는 노꼬메오름을 노래한다.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 설렘을 표현한 피아노 인트로가 끝나고 터지는 브라스와 밴드 사운드는 정상에서 펼쳐진 멋진 풍광에 빗대었다. 이전의 서술한 두 곡은 산 정상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삶에 대한 심드렁한 자세를 각각 이야기했다면, 이 음악은 우리가 등산을 하는 주된 목적과 부합하는 해방감과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사우스카니발' 특유의 정겨움과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의 이 곡은 맑은 날 제주의 오름을 걷고 올라가면서 상쾌하고 청량하게 듣기에 아주 적합할 것이다.

나에게 산과 바다는 오르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눈으로 보는 대상에 더 가깝다.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고 만족감도 있지만 따라오는 활동의 대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주도에 갈 때면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가 늘 운동을 시켜주는 감사한 친구가 있기에 오름과 한라산을 오르는 경우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그 친구와 같이 맑은 하늘 아래 물이 넉넉히 고인 백록담을 보는 데에 성공했다. 출발이 늦어져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정상을 앞둔 힘든 시점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났다. '소주' 한라산과 '산' 한라산의 공통점은 '빠르게 정복하고자 하면 구토를 유발한다'라는 것. 이것 역시 삶에 비유해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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