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영화포스터.
故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영화포스터.

얼마 전 차귀도를 방문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섬 속의 섬이자 사람의 손이 오랜 기간 닿지 않은 무인도이기에 너른 초원과 탁 트인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아직까지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기에 더욱 좋다.

이번에 그곳을 방문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기인이자 괴인 故김기영 감독의 작품 <이어도(1977)>가 차귀도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2021년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소감으로 故 김기영 영화감독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하녀(1960)', '화녀(1971) '라는 한국 영화의 기념비 적인 작품을 남긴 김기영은 '화녀'에 신인이였던 윤여정을 캐스팅했다. 그가 세계적인 배우가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된 것이다. 김기영은 박찬욱, 봉준호와 같은 거물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죽은 후에 고통이 없는 섬 ‘이어도’로 간다는 전설이 있다. 이 영화는 이를 모티브로 한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의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 소설의 전개와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故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영화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갈무리)
故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영화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갈무리)

고립되고 험난했던 제주라는 공간적·시대적 배경으로 오랫동안 이어졌던 이어도의 전설과 (육지에 비해 강력했던) 제주의 모계사회의 강렬한 혼합, 그리고 그를 극대화 시키는 무속적인 색채와 과감한 연출은 뛰어난 작품으로 완성됐다. 그 끝에는 (지금 봐도 굉장히)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장면과 반전이 존재한다.

또 난개발을 포함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서사에 주요하게 작용해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에서 발생되는 거대한 혼돈을 야기한다. 이 모든 소재의 조합, 탁월한 촬영의 기막힌 연출은 김기영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1970년대 차귀도와 제주 바다 마을의 모습 그리고 당시의 제주 도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역시도 인상 깊다. 영화를 찍을 당시 차귀도는 사람들이 거주하던 섬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았던 집의 형태는 현재 지붕이 없는 생가터로만 남아있다. 걸어서도 큰 바위나 섬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이는 낮은 해수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기영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이 역시 호불호가 굉장히 갈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기엔 내공이 부족하지만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다. 단순히 제주를 배경으로 한 김기영의 작품이라는 것 이상의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OTT를 통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김기영과 제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 영화포스터.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 영화포스터.

지금은 수십억 제작비가 우스운 영화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5억이 넘는 제작비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참고로 1999년 개봉한 <쉬리>가 30억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그런데도 1998년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제주를 배경으로 한 대작이 있었으니, 바로 <이재수의 난>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동문시장의 영화관(아마도 시네마하우스)에 가서 봤었는데 그것이 아마 내 인생의 첫 영화관 관람으로 기억한다.

소설가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를 영화화한 <이재수의 난>은 1901년 일어난 '신축민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 '칠수와 만수(1988)'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를 연출한 박광수가 감독이다. 주연은 무려 이정재와 심은하다. 

'신축민란'이라는 소재를 갖고 영화를 '잘' 만들고 '흥행'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손꼽히는 영화감독이 연출을 한다고 해도 10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아직 제주도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신축민란'이 일어났던 배경과 과정을 압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제주사투리는 대중이 서사를 이해하는 과정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 영화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갈무리)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 영화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갈무리)

그래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제대로 망했다. 주관적인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흥행에서 망했다. 기록상 서울 관객 5만이라는 저조한 수치는 35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채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드라마로 제작됐다면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아직도 제주도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제주의 참혹한 과거를 영화화한 감독과 제작자의 결단에 고마웠다.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이정재의 부단한 노력이 인상깊었다. 또한 제주의 자연 풍광을 제대로 담은 부분도 그러하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특별한 문화와 가슴 아픈 역사는 새롭고 흥미 있는 이야기를 찾고 만드는 작가들에게 재미있는 식재료일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은 이를 다채롭게 표현하도록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밑반찬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신선한 식재료를 얼마나 잘 구워삶고, 정갈한 밑반찬으로 훌륭한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위 두 개의 영화는 평단의 평가와 개인적인 감상에 있어서 꽤나 만족스러운 밥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밥상들이 차려질까?

최근 우매한 사람들의 제주의 아픈 역사를 더럽히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 바다 건너 여기까지 들리고, 제주 본연의 모습과 문화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과소비하고 오남용하는 모습들 역시 종종 보인다. 한정된 식재료를 잘못 요리해 버려지지 않았으면 하고, 밑반찬 수와 그것이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다 맛과 조화보다는 그저 구색맞추는 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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