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정규 2집이자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된 앨범 '한 다발의 시선(2013)' 자켓.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정규 2집이자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된 앨범 '한 다발의 시선(2013)' 자켓.

국내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지역의 재래시장을 꼭 한번 들러본다.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물(특히 해산물)을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 그 지역의 색깔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주변 식당 안의 손님들을 쓱 훑어보면 나이 든 어르신들이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곳을 하나둘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되어 보이는 간판과 얼굴이 벌겋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내공이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난다. 오랜 시간 그 공간에서 동네 단골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곳, 그곳을 우린 보통 (정확히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의미하지만) '노포'라고 부른다.

지역의 특색있는 식자재에 내공 있는 주인장의 손맛이 더해진 이곳을 애주가가 쉽게 지나칠 리가 없다. 음식이 다소 늦게 나오더라도 위생에 철저하지 않아도 주변이 다소 시끄럽더라도 심지어 주인이 약간 불친절하거나 카드 결제가 불가해도 괜찮다. 왠지 몰라도 그냥 오래된 그 가게가 좋고 거기서 내주는 술안주가 그저 맘에 들 뿐이다.

최근 노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푸짐한 안주의 비주얼과 오래된 내부 인테리어가 SNS에 공유하기 아주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유명 유튜버와 셀럽들이 다녀갔다는 소식이 퍼지면 많은 사람이 줄을 서 기다리는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노포의 특성상 그 많은 사람을 대접하기엔 시간과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어주는 음식 맛의 훌륭함은 뒤로하고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불편함은 위에 서술한 노포의 특징에서 온다. 그걸 미리 고려하고 방문한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평점테러까지 하면서 본인이 느낀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갑작스레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 중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제주의 맛집 추천'이다. 요즘은 워낙 검색이나 SNS로 널리 알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제주 맛집에 대한 데이터가 육지 친구들과는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숙소 근처나 먹고 싶은 종목을 말해준다면 내가 갖고있는 데이터 안에서 (제철 해산물까지 고려해) 추천을 해준다. 예쁜 곳을 많이 다녀보진 않아서 주로 알려주는 곳이 '노포'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곳이다. 관광객보다는 동네 단골들이 주로 가고, 제주 특색이 느껴지고 시간이 오래 머문 공간으로. 육지 친구에게 이러한 추천은 꽤 성공적이다.

그러나 제주에 오래 생활한 친구들(특히나 형님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을 종종 찾았던 이들에게는 '예전 같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비슷한 메뉴를 다양한 곳에서 접해본 이들에게는 '그곳보다 다른 데가 더 낫지'라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종 제주에 갈 때면 이 고마운 사람들은 같이 그곳에 동행해준다. 그들은 막상 그곳에 가면 정말 오랜만이라며, 옛날 생각이 난다며 옛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놓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술병은 하나씩 추가가 된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정규 2집이자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된 앨범 '한 다발의 시선(2013)'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과 일화의 소재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듯 풀어낸 수작이다. 그 앨범의 수록곡 '한결같은 사람'은 오랜 기간 그 자리에 있는 한결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사처럼 많은 이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동안 몇 해가 지나가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혹은 지키는) 주인에게 '아 이 한결같은 사람'을 반복하며 노래한다. 그리고 음악의 마지막 "그러나 왜 그라고 한결같았겠는가"라는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음악이 끝난다. 각자 조금은 다르겠지만 공간과 그 안에 남겨둔 사람들의 추억을 지키고자 하는 의무감이 '한결같음'의 생명력이 아닐까. 그 생명력에 있어서 잊지 않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추억 젖은 이야기들은 따스한 햇볕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간에 남겨둔 추억과 수 많은 사람이 머문 시간의 역사를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런 '노포'를 사랑한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맛이 조금 변했더라도, 예전과 같지 않아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 내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었을 때도 그 자리에서 꾸준한 생명력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나도 언젠가는 그곳에 가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오니 너무 좋은걸"이라고 누군가에게 호기롭게 얘기하며 진득한 추억에 젖게끔 말이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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