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mas Is You'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mas Is You'

올해도 어김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또다시 겨울을 맞이한다. 이미 무척이나 차가운 공기로 인해 옷장 속에 묵혀두었던 두꺼운 패딩을 꺼내고, 온수 매트와 히터를 구매해 미리 월동 준비를 마쳤다. 카페나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그 공간에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조만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차트에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mas Is You'는 당연하듯이 상위권에 자리를 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겨울의 절정이 왔음을 음악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절에 대한 어린 시절 제주의 기억을 더듬는다면 겨울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얗게 쌓인 눈,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새하얗고 평평하면서 두터운 길을 찾아 뽀득뽀득 선명한 소리와 발의 감각을 느낀다. 그러다 마주한 가파른 오르막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갔던 초등학생 시절 등굣길의 모습은 지금 나에게도 유효하다. 자정에 제사를 지냈던 시절 성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와중 '길이 얼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친척들의 모습도, 중산간 길에 열린 눈꽃축제를 가고 눈썰매를 타던 모습들은 아직 바래지지 않은 제주 어린이의 재미있는 추억들이다.

산 중턱에 있던 고등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했을 때의 제주의 겨울은 흡사 소설 속 설국의 모습이었다. 무릎 가까이 쌓인 눈과 하얀 옷을 입은 설산들은 한 겨울 아침에 종종 마주할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선명하게 보이는 오리온자리를 출발로 많은 별자리를 감상하며 잠시 졸 때의 차가운 공기는 여태까지도 인상적인 감각으로 남아있다. 이 많은 추억들 속에는 대부분은 거센 바람을 따라 휘몰아치는 눈발이 있다. 그렇기에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속에서의 억센 제주의 겨울은 전혀 과장되지 않은, 그야말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표현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육지로 올라와 경험한 겨울의 눈은 고요함에 가까웠다. 콧구멍 속으로 휘몰아치는 따가운 눈발이 아닌 살랑살랑 머리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부드러운 눈송이 같았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는 것을 그저 신기해하는 육지 사람들처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눈 내리는 풍경은 제주소년에게 익숙지 않은 낭만적이고 포근한 겨울날의 풍경이었다.

가수 송창식의 '송창식 1(1975)'
가수 송창식의 '송창식 1(1975)'

작년 이맘때쯤 자주 가는 LP바 사장님과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 송창식의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평생 몰랐으면 후회했을 뻔한 음악 [송창식 1(1975)]의 '밤눈'을 처음 들었을 때 켜켜이 쌓인 취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대치되었다. 저 어딘가 들판에 소복소복 살포시 쌓이는 눈을 상상한다.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화자의 적막한 마음과 단단한 곡 구성, 그리고 결정적인 우아한 송창식의 보컬은 한 겨울 눈이 살랑살랑 내리는 때에 들어야하는 그야말로 한겨울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곡이다. 작년 홀로 걸었던 산책길 속에 우연히 마주한 함박눈 속에서 들었던 '밤눈'은 그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억된다.

Zion.T(자이언티)의 '눈(2017)'
Zion.T(자이언티)의 '눈(2017)'

Zion.T(자이언티)의 '눈(2017)'은 송창식의 '밤눈'과 유사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윤석철의 멋들어진 편곡과 쇼미더머니의 프로듀서인 슬롬의 근사한 작곡이 돋보인다. 처음 시작되는 자이언티의 흩날리듯 불안하면서도 설렘 가득한 보컬은 초겨울 맞이한 뜻밖의 첫눈을 의미한다면, 포근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이문세의 보컬은 한겨울 포동포동 내리는 함박눈같다. 1절의 자이언티는 "약속해요"라고 부르고, 2절의 이문세는 "약속했죠"라고 불렀던 이유 역시 그 의미를 담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음악 막바지에 만나는 둘의 보컬은 겨울이라는 계절에 소복하게 쌓인 눈 속 켜켜이 담긴 추억과 바람을 표현한다.

재주소년의 1집 '제주소년(2003)'
재주소년의 1집 '제주소년(2003)'

제주의 시간을 (누구보다) 적확하게 묘사했던 포크 뮤지션 재주소년의 1집 [재주소년(2003)] 앨범의 수록곡 '눈 오던 날'은 추억 속의 카세트 테잎을 연상시키는 인트로와 함께 시작해  후렴구에 똑같이 불린다. 이 음악은 건조하고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생각나는 짝사랑을 향해 노래한다. 단순하게 기타로만 구성하여 설레고 순수한 마음을 그 마음을 과하게 덧대지 않고 표현했다. 그 시절의 마음을 고이 담았던 카세트 테잎의 음성처럼 시간에 바래지긴 했으나, 눈 오는 날 다시 꺼내어 선명한 소리로 추억되고 불린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제주의 눈은 주로 바람과 섞여 휘몰아친다. 그렇기에 가끔 마주하는 살랑살랑한 함박눈은 너무나도 반갑고 근사하다. 거기에 덧대어 내리는 것은 사랑했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일 수도 있고, 어렸을 적 경험한 눈의 추억도 포함될 것이다. 이번 겨울에도 이따금씩 마주할 우아하고 근사한 함박눈을 기다리거나, 혹은 그것을 직접 경험한 순간에 위 음악들을 들으며 조금은 더 낭만적인 겨울의 한순간을 마주하길 바란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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