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자식 점지를 바라는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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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자식 점지를 바라는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7.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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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 ②김녕 서문하르방당(1)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어릴 적 내 별명은 ‘땅꼬’였다. 연달아 태어난 딸 다음엔 반드시 ‘아들 보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삶 속에서 끝없이 갈망하고 소원하던 것은 바로 ‘아들 기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니어서 아픈 손가락인 나는 게다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쉬 멈추지 않는 소문난 울보이기도 했다. 
 
셋방살이를 하는 우리 식구가 집을 빌리는 데 나는 늘 걸림돌이었다. 딸린 자식이 많으면 집주인이 무척 꺼렸기 때문이다. 내 커다란 울음소리는 실로 치명적이어서 집을 옮길 때가 되면 어김없이 외할머니 댁에 맡겨지곤 했다. 

당시 남아선호사상은 결국 외할머니를 이른바 ‘칠거지악’의 하나를 범한 죄인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뒷방 할망 신세가 되더니 결국에는 분가하기에 이르렀다. 외할머니의 팔자를 이어받으셨는지 어머니 또한 그토록 소원하던 아들은커녕 딸만 줄줄이 낳은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서문하르방당을 정비하기 전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서문하르방당을 정비하기 전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아들을 낳기 위한 어머니의 몸부림은 더욱 간절해져만 갔다. ‘땅꼬’라는 별명의 효험도 별로 약발이 없었는지 다시 딸을 낳았고 그 이후에야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침내 대를 이을 아들을 귀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귀한 아들을 얻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동안의 자괴감과 자책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짐작하건대 두 분은 신통방통 용하다는 곳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면서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돌미륵 앞에서 소원성취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셨을 것이다. 이렇게 돌미륵을 모신 신당 중에서 아들 낳는 데 효험이 있는 당이 있다. 바로 김녕 바닷가에 있는 서문하르방당이다. 

#김녕 바닷가 해신미륵 서문하르방당

2020년 새해 1월, 겨울철인데도 화창하게 햇살이 밝은 날, 서김녕리 서문하르방당의 미륵신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좌읍 서김녕리 서문하르방당’은 옥색으로 빛나는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 미륵신당이다. 서김녕리 신호등 삼거리, ‘영등물고개’ 바닷가에 있다. 옛날 김녕마을에 동문과 서문이 따로 있었는데, 하르방당이 서문 밖으로 옮겨지면서 ‘서문하르방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새롭게 정비된 서문하르방당. (사진=김일영 작가)
현재 새롭게 정비된 서문하르방당. (사진=김일영 작가)

2년 전 신당 기행 차 이곳에 들른 적이 있어서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큰 길가에서 내려다보이는 당 주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신당으로 내려가는 길이 따로 없어 답사 일행의 도움을 받으며 잡목과 풀이 무성한 언덕배기를 아슬아슬하게 내려가야만 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계단과 길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누구나 쉽게 방문하여 휴식과 전망을 즐기도록 평상이 있는 정자가 놓여있다. 

서문하르방당 주변 일대를 정비하면서 당의 울타리는 이중 담으로 둘러놓았다. 안쪽에 잘 다듬은 돌담 울타리가 있고, 다시 바닷가 쪽으로 견고하게 더 둘러 쌓아 놓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하고 세찬 바람으로부터 당을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문하르방당 한가운데 있는 미륵돌이 당의 신체이다. 2년 전에 본 미륵돌 모습은 영락없이 사람의 형상 같았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 언뜻 물범이나 바다코끼리의 모양과 비슷했다. 일행들이 저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한마디씩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미륵돌은 파도 소리가 가득한 바다를 향해 평온한 모양으로 앉아있다.

서문하르방당 가운데 미륵신이 바다를 보며 평온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서문하르방당 가운데 미륵신이 바다를 보며 평온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미륵돌 앞에는 자연석을 포개어 삼은 제단이 있고, 그 뒤편으로 뽕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 나무도 역시 이 당의 신목(神木)이라고 했다. 이곳은 돌담뿐만 아니라 작고 둥근 조약돌로 일일이 바닥을 깔아놓아 분위기가 훨씬 고즈넉했다. 

제단 위에 한 세트의 요구르트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걸 보곤 ‘요즘 신당에 바치는 제물은 참 신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는 ‘신당을 잊지 않고 방문하는 것은 좋은데, 제단에 올렸던 음식들은 말끔하게 치워주는 게 도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신당은 성스러운 장소라서 이곳을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일기도 했다.

조금 눈길을 옮기니 제단 아래 종이돈 천 원짜리 한 장도 보였다. 바람에 종이돈이 날아가지 않게 작은 돌 하나 얹어놓았는데 이 또한 누군가의 작은 정성이 아닌가 한다. 제단 옆으론 빨갛고 노란 색의 조화가 곱게 장식된 것으로 보아 우리 일행이 오기 전에 누군가 찾아와서 치성을 드린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답사 일행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제단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는데, 투명한 병 속에 둘둘 말아놓은 유인물 한 다발이 눈에 띄었다. 병 겉면에는 ‘필요하면 한 장씩 가져가도 좋다.’는 친절한 메시지도 적혀있었다. ‘파평 윤씨 제주도 문중회장’이 제공하고 있는 자료인쇄물이었다. 찬찬히 읽어보니 ‘서문윤동지하르방당의 유래와 효험’이란 제목으로 매우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서문하르방당 미륵신은 아들을 낳게 하는 효험이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서문하르방당 미륵신은 아들을 낳게 하는 효험이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김녕 서문하르방당 본풀이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김녕리에 윤씨하르방 부부가 고기잡이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음이 한이 되었다. 어느 날 영감이 다른 어부들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낚시에 고기 대신 이상한 모양의 돌미륵이 걸려 올라오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고, 물이 용솟음치며 물결을 이루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뱃사람들이 함께 그 돌을 올려보니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형상을 달리하는 돌기둥이었다.

그때부터 어부들이 낚시를 드리우면 갈치가 무리 지어 올라오는데, 윤씨 하르방 낚시에는 또 돌기둥이 올라왔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배 한 쪽에 그 돌기둥을 모시고 준비해 간 음식물로 제를 지내고 나니, 갈치뿐만 아니라 고급 어종까지 수두룩 잡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신이 났으나 점차 두려움이 생겨 윤씨 하르방 일행은 조업을 중단하고 한개포구(김녕항)로 돌아왔다. 

그 후 윤씨 하르방은 그 돌미륵을 마땅히 모셔 둘 장소가 없어서 한개포구에 던져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날부터 풍파가 일기 시작했다. 보름 동안 계속해서 궂은 바람이 불더니 고기잡이는커녕 마을에도 막대한 피해를 줬다. 초가지붕이 날아가고 농작물이 물에 잠기는 참사가 잇따라 벌어지는 것이었다.

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윤씨 하르방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이곳은 추워서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 따뜻한 곳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다. 윤씨 하르방은 지난날 은덕을 져버린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빌고 또 빌었다. 

그러자 백발노인은 “내가 있을 곳은 바닷속이 아니라, 뭍(육지)에서 자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산신(産神)으로, 집안에 우환이 있어 평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수신(守神)으로, 재물이 없어 쪼들리는 사람에게는 재물신(財物神)이 되어 잘 사는 마을을 만들어 주고자 너를 따라왔거늘, 나를 이렇게 박대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면서 바다 위를 유유히 걸어 사라져 버렸다.

서문하르방당의 울타리는 안팎으로 돌담이 놓여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서문하르방당의 울타리는 안팎으로 돌담이 놓여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동이 트자마자 포구로 달려가 던져버린 돌미륵을 건지려고 했더니, 드러누워 있으리라 생각했던 돌미륵이 모래 위에 딱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윤씨 하르방은 돌미륵을 양지바른 지금 이곳에 안치하고, 돌로 제단을 둘러 당신(堂神)으로 모시며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

한편, 윤씨 하르방 부인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자주 나타나더니 사십도 넘도록 자식이 없어 시름 하던 그들에게 자식을 점지해 주었다. 이 소문이 곧 마을에 퍼져 마을의 아낙들이 찾아와 자식을 기원하면서 치성을 드리게 되었다. 

그 이후 이웃 마을까지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져 자식, 재물, 집안의 평안을 바라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기도 하고, 육지 상인들도 영등물을 통해 김녕리에 들어오면 제단 밑에 엽전을 뿌리며 소원을 빌곤 했다. 

-파평윤씨제주도문중회장 교육학 박사 윤두호 제공 자료에서 재인용

유인물 말미에는 오늘날의 서문하르방의 돌미륵이 일부 유신론자에 의해 훼손되었으나,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파평윤씨 김녕 자손’들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민간신앙의 성소가 자꾸 사라지는 요즘, 이러한 작은 노력이 한편으론 짠하면서도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기행했던 바닷가 근처에 있는 당과 마찬가지로, 이곳 서문하르방당도 원래 ‘나에게 태운 조상’이라 하여 한 일가에서 섬기던 조상신이었다. 탁월한 효험이 알려지면서 점차 마을 전체로 신앙권이 넓혀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 또한 미륵신앙의 특징 중에서 기자(祈子)와 산육(産育)을 관장하는 원초적인 미륵신앙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문하르방당 돌미륵과 관련된 이야기는 내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눈물 나게 원했던 ‘아들’에 대한 간절함이 그대로 반영되어 더욱 실감을 안겨주었다. (다음에 계속)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2020년 2월에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 단체인 극단 ‘수눌음‘ 회원으로 활동하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독서모임 ‘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 ‘바숨‘의 회원으로 틈틈이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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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2020-07-04 16:28:11
잘 읽었습니다. 신당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기네요. 더 귀하게 느끼게 됩니다

고성돈 2020-07-03 20:21:03
훈훈한 이야기네요. 자식도 주고 재물도 주고 게다가 평안도 주니 얼마나 좋으신 신입니까. 감사합니다 미륵당신. 게다가 삐져서 난리굿 한번 벌이고 다시 바다로 가버리겠다는 투정을 부리다가도 싹싹 빌었더니 못이기는척하고 뒤돌아오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합니다.이런 착하고 좋으신 미륵당신을 일부 유신론자들이 감히 훼손했다는 데 거룩한 분노를 느낍니다. 김녕해수욕장에 가게 되거든 들러서 소주 한병 올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