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아들낳기’에 효험이 있다는 또 다른 돌미륵이 회천마을에 있다. 동회천의 화천사 오석불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까지도 그 효력이 남았는지 화천사를 찾아오는 불교 신도 이외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오석불 앞에서 아기 낳기를 빈다고 한다. 이따금 입시를 앞둔 수험생 부모님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새해 정초, 겨울바람에 귀가 얼얼했지만 제법 햇볕이 비춰 그런대로 화사한 날, 화천사 오석불을 답사하기로 했다. 오늘 기행은 도련에 사는 친구와 신화를 연구하고 있는 후배와 함께하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친구의 집에서 남편이 손수 만든 떡국을 맛나게 먹은 후에 기행 길을 나서니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졌다. 친구의 집에서 차를 타고 수다를 떨 새 없이 10분이 채 안 되어 동회천 마을에 도착했다. 

도로 옆으로 동회천 마을 입구임을 알려주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곳 회천마을은 제주시 봉개동 다섯 개 마을 중의 하나로 봉개동과 와흘리의 중간에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동회천인 ‘새미’와 서회천인 ‘가는새’라는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회천동은 제주 시내와 매우 인접해 있고, 각 마을을 잇는 도로가 여기저기 생겨나 중산간 마을이라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이다. 몇 해 전 도련으로 향하는 도로가 개설될 때,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면서 신석기 유적과 집터가 발굴된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오석불을 만나기 위해 화천사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뜰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탄성이 나올 만큼 우리를 압도한 것은 오래된 ‘폭낭(팽나무)’들이었다. 실로 웅장하고 늠름한 거목의 자태가 이곳이 ‘신령이 깃든 영험한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고목인 팽나무와 고풍스런 돌담을 배경으로 오석불이 앉아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오래된 고목인 팽나무와 고풍스런 돌담을 배경으로 오석불이 앉아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오석불

당집(신당)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옛 돌담의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당집 안 가운데 돌미륵들이 나란히 좌정해 있고 그 아래에 잘 정돈된 제단을 볼 수 있었는데 평소에 마을 사람들이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다섯 개의 돌미륵에 가까이 다가갔다. 돌미륵 군데군데에 풀이끼가 끼어 있었고, 그 위로 콩짜개란이 발을 뻗고 있어 시간의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다섯 개의 돌미륵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능한 인공을 덜 가미한 모습과 유머러스한 표정들이 마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개구쟁이의 형상을 하고 있어 푸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돌미륵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 제주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뭉툭한 코와 꾹 담은 입술로 정면을 응시하는 미륵, 어수룩한 시골 노인의 모습을 한 미륵, 비스듬한 자세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미륵,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미륵, 커다란 눈을 내리깔고 반성하는 자세로 다소곳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륵 등 보이는 인상 그대로 흉내를 내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사람들은 기이하게 생긴 제주의 현무암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 넣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선의 모습을 간단하고 절제된 손길로 다듬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돌미륵들의 크기는 높이가 65cm 정도로, 그 모습이 작고 아담하나 강단 있어 보였고, 비록 투박하나 인간적인 모습에 더욱 정감이 갔다. 오석불은 서민적인 제주인들의 토속적, 해학적 모습을 잘 담아내고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게 되어 현재 제주시 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보호되고 있다. 

화천사 당집 안에 좌정한 돌미륵 ‘오석불‘. (사진=김일영 작가)
화천사 당집 안에 좌정한 돌미륵 ‘오석불‘. (사진=김일영 작가)

#오석불의 유래와 석불제

신화학자 문무병의 책 <미여지벵뒤에 서서>에 의하면, 400여 년 전 회천마을이 형성되기 전인 고려 시대부터 이곳 절동산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 인근에서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나 도자기 파편 등이 출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가 제주의 당과 절을 파괴할 때, 이 마을에 있던 큰 절도 불타 없어졌다. 그 이후 마을 청년들이 계속해서 죽자,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절이 파괴된 탓이라고 여기고는 사찰에 남아 있던 자연석인 ‘오석불’을 가져와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현재의 화천사는 60년 중반 무렵에 세워졌는데 ‘절동산에 절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의 대부분 미륵불은 민간신앙으로 신당 안에 모시고 있지만, 회천동에서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미륵신앙을 다시 사찰 안으로 들여와 불교화한 특이한 과정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불교 사찰이 민간신앙을 잘 포용하는 사례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천동은 고려 시대부터 목축을 주업으로 삼았는데, 오석불을 모신 석불단에는 수렵·목축신에 해당하는 산신미륵, 잠수·어업신인 요왕미륵을 동시에 모시고 생업의 풍등을 기원했다고 한다. 특히 옛날 전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하던 때에 오석불이 지켜주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무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정신적 수호신이었음이 분명하다. 

오석불 앞에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고 입시를 앞둔 수험생 부모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오석불 앞에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고 입시를 앞둔 수험생 부모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오석불이 영험한 돌미륵이라 소문이 나서 개인적으로 찾아가 기도드리는 경우가 많고, 특히 득남을 원하는 사람이나 행방불명자를 찾는 사람들이 기도를 드린다. 이곳은 여느 마을의 미륵신앙과도 같은 효험을 가진 것으로 기자(祈子·자식 낳기를 비는 일)신앙과 마을공동체 신앙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곳에선 해마다 새해 첫 정일(丁日)에 포제를 지낸다. 일반적으로 마을 포제는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생업의 풍등(豊登)을 기원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확인하는 유교식 제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석불제는 다른 마을의 포제와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우선 석불제를 지내기 전에 석불에 백지로 만든 송낙을 씌우고 종이옷을 입혀 무명실로 허리를 감싸 치장을 하고, 제사가 끝날 무렵에는 석불에 입혀 놓았던 종이옷을 벗겨내어 불에 사른다.

다른 마을에서 제를 지낼 때 통돼지를 제물로 삼는데, 여기에서는 돼지고기를 절대 쓰지 않고 떡, 메, 과일, 채소만으로 제물을 올린다. 유교식 마을 포제이나 돼지고기와 같은 육류를 부정한 음식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아 불교식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석불제 이름 또한 석불열위지신(石佛列位之神)이라 하여 형식적으로는 유교식 마을제이지만, 민간신앙적 요소를 동시에 지닌 불교식 마을제임을 알 수 있다. 이곳 마을 남성들이 불교 의식에 따라 이 석불단에서 마을제를 열어 주민안녕, 무병장수, 오곡풍등, 육축번성을 빌고 전염병이 범접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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