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탕]“주어진 ‘날개‘로 할망 옆에서 ‘조잘조잘‘…앞으로 10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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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탕]“주어진 ‘날개‘로 할망 옆에서 ‘조잘조잘‘…앞으로 10년 더”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0.08.06 23: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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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 목요일에 만나는 뜨겁고 내밀한 제주인 인터뷰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하나뿐인 그 꽃이 내겐 너희들 모두보다 더 소중해. 불평을 해도, 자랑을 늘어놓아도, 심지어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나는 다 들어준 꽃이니까. 그건 바로 내 장미꽃이니까.”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문학동네 펴냄) 중에서

우연히 오천 송이의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에 들어선 어린 왕자는 자신이 떠나온 별에 두고 온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물을 주고 벌레를 잡으며 들인 시간 때문에 그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이 소중한 존재가 됐음을 깨닫는다. 

가족보다 남의 할망(‘할머니’의 제주어)을 더 자주 만나러 다니는 인터뷰 작가가 있다. 정신지(39)씨는 8년째 할망들이 ‘불평을 해도, 자랑을 늘어놓아도, 입을 다물고 있어도 다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낮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정씨의 집을 찾았다. 딱히 대문이랄 것도 없이 트인 집 앞마당엔 서로 닮은 하얀 개 두 마리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놀고 있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정씨가 커다란 거실 탁자 쪽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의자에 앉고 보니 눈앞엔 찻잔이 놓여있다. 집에 손님이 온다고 미리 준비한 모양이었다. 정씨는 “이번에 맛있는 걸 구했다”며 커피 원두를 갈아 내려 따라주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에게 송가인으로 알려진 

정씨는 제주지역 어르신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지난 2012년 제주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기 시작했고 만남을 기록한 글을 한 인터넷 언론 매체에 연재하며 입소문을 탔다. 4년 전부터 제주도 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소개하는 TV방송에서 리포터를 하다보니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다. 2년 전엔 연재했던 글을 엮어 <할망은 희망>(가르스연구소 펴냄, 2018)이라는 책도 냈다. 

그는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기인 것 같다. 예전엔 할머니들 사이에서 ‘약장수‘라 불리다가 요즘은 ‘송가인‘이라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지금보다 덜 알려졌던 예전엔 할머니들에게 말 걸기 자체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많이들 알아보시니 말 걸기가 편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분들을 만날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직업을 묻자 “조잘조잘”이라고 소개했다. 새처럼 찾아와서 지저귄다고 할머니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칼럼니스트, 방송리포터, 인권활동가 등 지금의 정씨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현재만큼이나 그의 과거 역시 단순하지 않다.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제주, 일본, 인도네시아, 미국 거쳐 제주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일본에서 대학교 4년, 대학원 7년을 다녔다. 국제문화학과를 전공하며 사소한 것들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어떻게 자신에게까지 연결되는지 등을 공부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니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 연구 대상을 만나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정씨는 유명 휴양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서핑을 가르치며 돈을 버는 ‘비치보이(beachboy)’ 노동자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자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불편해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이 하는 연구가 이들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할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방황했다. 

그러던 중 다큐멘터리를 찍는 예술가와 연인이 됐고 그가 있는 미국 뉴욕에서 잠시 살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삶은 슬럼프에 빠졌던 정씨에게 큰 위로가 됐다. 그는 “뉴욕에선 우체부들도 자신들을 시인이라고 한다”며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내 직업이 되는 공간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실연 상담에서 시작한 10년의 숙제 

제주에 돌아온 때는 2012년. 단골 동네 미용실 디자이너가 ‘할머니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데 같이 가자’고 권했던 것이 지금 할망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그때 연인과 이별하고 정말 많이 힘들어하던 때였어요. 하루는 혼자 동네 폐가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동네 할머니가 와서 ‘뭐 훔치러 왔나’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실연했다고 털어놓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뭐랬는 줄 아세요? ‘나 남편은 나 눈 앞에서 총 맞아죽었져’ 그러는 거예요. 제 사연과 스케일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순간 찌릿하며 심장이 쿵했죠.”

지난 8년간 이어진 인터뷰의 시작은 그의 ‘실연 상담’이었다. 할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정씨에게 자신의 아픈 삶을 이야기하며 위로했다. 그는 “그 일이 있고 앞으로 10년 동안 숙제라고 생각하며 할머니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러 나선 초반엔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러다 그만의 인터뷰 원칙이 하나 생겨났다. 바로 억지로 묻지 않는 것. 우연히 할망들과 만남이 시작된 것처럼 그들이 내어준 만큼의 이야기만 듣고 나오려 한다. 그는 “제주어에서 ‘듣다’라는 표현엔 ‘묻다’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며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질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할망의 삶은 누구도 묻지 않았던 역사“

정씨가 인터뷰했던 어르신 대부분이 할머니인 이유를 묻자 “할망의 삶은 미처 쓰이지 못한 역사, 침묵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할아버지한테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하면 대부분 시작이 ‘내가 예전에 해병대였는데 말이야~’이거든요. 자신에게 일어났던 큰 맥락들,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고 그만큼 세상에 잘 알려진 말씀들을 하세요. 반면에 할머니들한테 물으면 ‘난 무식쟁이라서 잘 몰라’라는 말부터 해요. 그리곤 알려지지 않았던 자질구레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누구도 묻지 않았고 앞으로도 묻지 않을 이야기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 거예요.”

정씨는 “혼자 멍 때리며 질문이 생길 때마다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만났던 삼춘(‘어르신’의 제주어)들이 던진 한마디, 한마디가 지나간다”며 “그분들 덕분에 예전엔 쉽게 절망도 하고 비관도 했던 내가 그런 걸 잊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춘들이 자주 하시는 말 중에 ‘사람은 누구나 하나씩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가진 능력은 날개”라며 “이 나무 저 나무 날아다니듯 할머니와 아이들 사이를 ‘조잘조잘’ 날아다니며 두 세대를 연결하는 새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달 20일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만난 정신지씨. (사진=김재훈 기자)

#“할망 인터뷰 벌써 8년, 앞으로 10년은 더 하고 싶어”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10년을 생각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우리 할머니들 계속 만나고 싶어서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웃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들 연세가 많으셔서 할머니들 마지막에 존엄하게 가시도록 도와드리는 장의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생을 바꾼 책을 소개해 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씨는 옆방 책꽂이에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어린 왕자> 수십 권을 꺼내왔다. 

그는 “내가 가진 유일한 ‘덕질’이 어린 왕자 번역본을 모으는 일”이라며 “대학시절 인류학 선생님이 책을 한 권 골라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는데 이 책으로 썼다. 어린 왕자가 이 별, 저 별을 다니는 여행가처럼 보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주어진 ‘날개’로 할망들을 찾아다니며, 어린 왕자가 장미꽃에게 그랬듯, “허이고”라는 한숨 뒤에 숨겨놓은 감정들을 살피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 

정신지씨와 함께 사는 꽃분이와 예쁜이. (사진=김재훈 기자)
정신지씨와 함께 사는 꽃분이와 예쁜이. (사진=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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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020-08-07 10:25:51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에 몰두하는 정신지님에게 박수를 보낸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훌륭한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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