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제주여민회 활동가 안김현정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지난달 27일 제주여민회 활동가 안김현정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대기업 직원은 대해고로 길바닥에 나앉는다. 지방에는 병원에 가도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의료진이 없다. 정치권은 남녀·세대 갈등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에어컨이나 자동차, 비행기 등 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위기는 서서히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다.

제주의 대형 국책 개발사업에 대해 주민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강정마을의 주민은 자신 삶터에 군부대가 주둔하거나 미국의 핵추진 군함들이 드나드는 데 대해 직접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주도 개발주의와 “여차하면 전쟁이 날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미래 청년들의 평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제주투데이>가 만난 제주여민회 활동가 안김현정(30)씨는 '모든 존재들이 제 몫을 누리는 사회'가 진정한 평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극히 이루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이 청년은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그에 다가서려고 한다. 사람들을 모아 행동하거나, 다큐멘터리나 소설을 매개로 세상을 꼬집는다. 기회가 주어지면 단상에 올라 목이 터져라 외친다. 공통의 고통에 대해 소리치고 살자고, 효율 우선주의는 구시대에서 마무리 짓자고.

2013년 12월,  한 고려대 학생이 철도 민영화, 불법 대선 개입 등 사회문제를 다룬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게재해 화제가 됐고 이후 전국 대학으로 확산된 바 있다. 당시 대학생이던 안김현정씨가 성토대회에 참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유튜브 갈무리)
2013년 12월,  한 고려대 학생이 철도 민영화, 불법 대선 개입 등 사회문제를 다룬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 게재해 화제가 됐고 이후 전국 대학으로 확산된 바 있다. 당시 대학생이던 안김현정씨가 성토대회에 참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유튜브 갈무리)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바라보다

‘난 놈’. 그의 10대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연극이나 미술 등 학교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족족 참여했다. 유독 성과가 좋은 학생이었다. 논술·토론대회들에서는 각종 상을 휩쓸었다. 기회는 또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10대 때 2011년 서울시 청소년참여위원회 권리교육분과 위원장을 맡으면서 직접 법률제언을 넣기도 했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일찍 깨닫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던 때다. 북한 포격 도발사건, 천안함 사건, 광우병 사건 등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은 어린 그에게 일상적이었다. 서울시 청참위 위원 활동은 시각의 변화를 일게 했다. 무상급식에 대해 친구와 벌인 논쟁이 결정적이었다.

"빈촌 내 학교에서는 첫 학기 등교부터 짝꿍이 ‘너도 급식 지원서 쓸 거지?’ 이렇게 물어봐. 모두가 받으니까 숨길 필요도 없지. 반면, 부촌과 빈촌 사이에 있는 학교에서는 반에서 누가 급식지원을 받는지 아무도 몰라.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저소득층이라는 것이고, 거기서 이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거든. 후자는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수밖에 없어. 지원받는 가정의 아이들은 단순히 지원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라, 낙인 자체가 주는 위축을 겪지. 이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위축을 일으키고, 많은 가능성을 배제하게 될 거야."

"한정된 예산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급식을 지원하는 게 훨씬 유용하고 효율적"이라는 현정의 주장에 반박하며 친구가 들려준 자신의 경험이다. 개개인의 경험과 그에 따른 결과는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안김현정씨가 대표로 있던 동북아청년평화캠프 '피스스토리'가 2015년 8월 서울에서 아시아 평화와 탈성장 서울의 역사를 주제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김현정 제공)
안김현정씨가 대표로 있던 동북아청년평화캠프 '피스스토리'가 2015년 8월 서울에서 아시아 평화와 탈성장 서울의 역사를 주제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김현정 제공)

목소리 내는 이들 덕에 부당한 세계를 바라보게 되다

"사회 곳곳에서 부당함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전해들은 것이 많아요. 자신들이 겪거나 목격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이죠.”

대한민국은 앓고 있었다. 기업의 구조조정, 구제역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나와 소리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까지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들에게서 억울함을 느꼈다. 사회가 불합리한 원인을 알아내 바꿔내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돌진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약자에 대한 애정이 동력이었다. 

친구들을 모았다. 아시아 평화의 문제가 청년의 삶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생각에 2015년부터 5년간 매년 한 차례 워크샵을 열어 해외 곳곳의 현장을 목격하고, 공부했다. 청년필드빌더허브 ‘미소’ 대표로서 우리 세대가 살아가고픈 미래를 꿈꾸고,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계했다. 가급적 한 명이라도 더 모아 다같이 만들어가고 싶었다. 모일수록 강력해지니까.

물론, 흔들린 적도 적지 않다. 단체를 위해 공들인 기획이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자신도 함께 무너졌다. 그러면서 삶에 뚜렷한 목적을 부여하는 순간, 행복보다 불행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나를, 나의 세상을, 우리의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인해 개인의 인생이 지옥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수록 사회적 연대와 힘으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하고요."

(사진=안김현정 제공)
안김현정씨가 대표로 있던 동북아청년평화캠프 '피스스토리'가 2015년 8월 서울에서 아시아 평화와 탈성장 서울의 역사를 주제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김현정 제공)
안김현정씨의 첫 단편소설집 '세상 끝의 손 배달부'. (사진=텀블벅 갈무리)
안김현정씨의 첫 단편소설집 '세상 끝의 손 배달부'. (사진=텀블벅 갈무리)

평화와 여성 ... 바라본 세상 '소설'로 옮기다

현정에게 소설은 "그동안 배운 것 중 가장 유용한 도구"다.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칭찬보다 날카로운 피드백을 듣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현정은 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묵묵히 썼다. 그리고 여전히 쓰고 있다. 수많은 수필을 쓰고, 독립출판사 ‘사해’ 대표로서 계간문예지도 3년째 발간하고 있다. 소설에는 각별히 힘을 쏟는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타인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상상하고, 동화될 수 있어서다. 그는 허구의 세계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사회를 꼬집는다. '쿵쾅쿵쾅', '둠스데이', ‘손 배달부’ 등 제목부터 강렬하다.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묻자 현정이 호쾌히 웃으며 말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써놓고 읽어보면 그렇더라고요."

평화라는 키워드 속 '여성'이라는 의제는 그에게 중요하다. 현정은 여민회에서 고용평등상담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4·3 생존자에 대한 여성주의 구술채록을 돕고 있다. 피해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항쟁 이후 가려진 여성들의 삶을 듣고 기록으로써 수면으로 떠올리려고 한다.

"지성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요. '지성'은 지식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움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이나 따르고자 하는 신념에 반하거나, 배제하고 혐오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는 그가 성(姓)을 바꾼 이유와도 연결되는 듯했다.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졸업전시회를 연 안김현정씨. (사진=안김현정 제공)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졸업전시회를 연 안김현정씨. (사진=안김현정 제공)

 

김현정에서 안김현정으로

현정은 과거엔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버지 성을 따 김씨로 살아왔다. 현재 법적으로는 어머니 성을 딴 안씨이다. 성본변경을 했기 때문. 미래엔 법적으로도 부모의 성을 합친 '안김'씨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의 성본변경은 2016년, 외할머니의 토로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아들이 없어 대를 이을 수 없다는 설움을 드러냈다. 외조부모와 유난히 친했던 그는 생각했다. '나라도 엄마 성을 물려받아야겠다.' 

가족들에게 성본변경을 선언했다. 성은 나만의 권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의미 없는 짓이라며, 누구는 사서 고생한다며 혀를 찼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아빠가 내비치는 서운함은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그러나 저 깊은 곳에는 해야겠다는 마음도 동시에 자리잡았다. 새살이 돋기 위해선 상처가 필연적이었다.

"성은 가족과 후세대를 구성하는 등 재생산을 확대한 범위잖아요. 여성은 단순히 아이만 낳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의 주체가 됐으면 했어요. 남성만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차원의 구시대적 문법을 해체하고 싶습니다."

행정법에 따르면 부모의 성을 동시에 쓸 수 없다. 성씨로 쓰이는 한자를 이름에 넣을 수도 없다. 안씨로 바꾸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보통 성씨개명은 부친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청구한다고 한다. 보통에서 벗어난 그의 사례는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그는 이같은 과정을 담은 영상을 7년간 차곡차곡 모았다. 이는 올해 다큐멘터리로 탄생할 예정이다.

"다큐를 통해서 여성도 남성처럼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문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이상한 길을 가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아무렇지 않은 길이 될 거고, 그래야 또다른 '이상한' 길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2015년 청년필드빌더허브 '미래와소통하다(미소)' 대표로 활동하던 안김현정씨의 모습. (사진=안김현정 제공)
2015년 청년필드빌더허브 '미래와소통하다(미소)' 대표로 활동하던 안김현정씨의 모습. (사진=안김현정 제공)

여성 정치력-경제력-문화력 약한 제주를 보다

제주 이주 3년차, 그 간 데이터를 쌓아온 현정은 여성인권 관점에서 제주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정치력과 경제력, 문화력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마을 내 여성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대표성을 띄지 못한 점이 첫 번째다.

"제주만큼 지역정치가 활발한 곳이 없어요. 하지만 그 많은 마을 중 여성 이장은 단 5명 뿐이죠. 향약 내 여성은 권력이 없습니다. 1가구 1투표인 곳이 90% 이상이고, 대표는 대부분 남성이죠. 성평등 마을 규약을 만들고, 도내에 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을 발굴해야 하는 이슈도 있고요."

제주의 임금 수준은 전국 최하위이다. 제주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43.1%에 달한다. 여성 노동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다시 말하자면, 제주여성들은 비정규직으로 제일 적은 돈을 받으면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 돼요.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재산 대부분을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경우도 많은 시스템이고요.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일해서 번 돈도 적은 상황에서 과연 재산을 불릴 수가 있을까요?” 

제주도가 여성에게 특별히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도 않고, 타 지자체보다 출산지원금이나 주거 시설·비용을 지원이 많이 이뤄지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누군가의 희생 즉, 여성의 희생으로 제주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제주도민 및 전국 농·어민 생존권 사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안김현정씨가 참여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도민 및 전국 농·어민 생존권 사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안김현정씨가 참여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현정에게 어떤 미래를 바라는지 물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다소 아둔한 답으로 대신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한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지구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그 간결한 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그런 미래를 위해 '실천'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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